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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Dec 29. 2023

큰일 같던 것도 별일이 아닌 먼지처럼

2023년 연말 회고

1. 23년 총평: 업무적, 인간적으로 좀 더 성숙해진 해


최근 몇 년간 변화가 많았는데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팀이 바뀌고, 업무가 바뀌고, 나 자신도 변했다.(물론 좋은 방향으로) 2023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업무적/인간적으로 좀 더 성숙해진 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간적’에 좀 더 방점이 찍힌다. 2023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자면.


2. 새로운 팀, 새로운 리더, 새로운 업무


3월에 조직개편을 하며 팀이 바뀌었다. 전략 본부 산하에 팀이 새로 생기면서 함께 일하던 선배와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인사기획 업무는 같고 소속만 경영지원에서 전략으로 바뀌었다. 인사 조직으로 오면서 더 이상 조직을 바꾸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역시 세상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덕분에 한 회사를 다니면서도 여러 번 이직한 효과를 보고 있다.


팀장님도 외부에서 새로 오셨다. HR컨설팅만 20년 넘게 한 베테랑이다. 업무적으로는 좀 (많이) 빡세지만…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다. 처음에는 헤맸지만 하반기 들어서는 팀장님과 함께 일하는 선배에게 “성장 속도가 빠르다” “몇 개월 전과는 다르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도 처음보다는 업무에 좀 더 감을 잡았다. 여전히 하루하루가 도전적이지만 말이다.


올해 가장 크게 배운 건 ‘문제해결능력’이다. 인사기획 업무 특성상 뭔가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는 일이 대부분이다.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나만의 기준과 원칙을 만들어서 조직 내 이해관계자를 설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가 떨어졌을 때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갈 것인가?’를 연습할 수 있었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어떤 HR과제가 떨어져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한다. 물론 이런 긍정적 결론을 내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3. 반갑지 않은 불청객, 번아웃


5~7월, 3개월이 많이 힘들었다. 어두운 터널을 혼자서 걷는 기분이었다. 나중에서야 이때 겪었던 증상이 번아웃임을 알았다. 이때 힘들었던 이유는


1. 수행 가능한 수준보다 더 높은 난이도의 업무를 맡았고
2. 업무 방향이나 과정의 변동성이 컸으며
3. 동료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느꼈으며
4. 업무 마감기한이 촉박했고
5. 스스로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지만 실제 결과물은 기대치를 밑돌았다.


조직문화 공부를 조금 했다고, 책을 냈다고 어떤 HR 업무를 하든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사기획 업무는 요구하는 지식과 일하는 방식이 달랐다. 아직 걷지도 못하면서 전속력으로 뛰려고 하니 탈이 날 수밖에 없었다. 책 <번아웃의 종말>에서는 번아웃을 “일에 대한 기대와 일의 현실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내가 겪었던 상황이 딱 그랬다.


4. 마음상담을 받고 마음을 다잡다


아내 추천으로 마음 상담을 받았다.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무료 프로그램이 있어 그걸 신청했다. 상담을 받으며 내가 외부의 인정을 바라고 있었고, 스스로 그게 충족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외부의 인정을 쫓다가 스스로 중심을 잃었다.


상담을 통해 외부의 인정이나 성취와 관계없이 스스로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다. 우리가 나무의 가치를 따지지 않는 것처럼 그냥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 외에도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배웠다. 번아웃 극복에 가장 큰 도움이 됐다.


동료들의 도움도 컸다. 한창 상태가 안 좋을 때 다른 팀 동료에게 힘든 상태를 이야기했다. “에이 원래 잘하시는 분이잖아요. 금방 극복하실 겁니다.” 긍정적인 동료 A가 에너지를 불어넣어주었다. 덕분에 조각난 멘탈이 어느 정도 회복 되었다. 좋은 동료와 함께 일하는 건 항상 감사한 일이다.


6. 단단해진 기반 위에서 내년을 기다리는 마음


마음이 힘들던 시기 출근하며 자주 들었던 노래가 조용필의 ‘feeling of you’라는 노래였다. 노래의 시작은 이렇다.

떠나고 나서보면 별게 없었어/큰일 같던 것도 별일이 아닌 먼지처럼/괜히 바둥거렸어/돼야만 한다고 믿었던 일들도/ 멈추고 나서 보면 착각이었어
- <feeling of you>, 조용필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닐 거라고, 그러니 이 시기만 견뎌내자고 스스로에게 자주 이야기했다. 실제로 잘 이겨냈고 정말 노래 가사처럼 별일 아니게 되었다.


그 시기를 거치며 업무적으로도 많이 배웠지만 인간적으로 좀 더 성숙해졌다. 전보다는 외부의 자극에 덜 영향받게 됐다. 실제로 올해 하반기 들어 여러 번 팀장님, 선배에게 좋은 피드백을 들을 일이 있었다. 예전이라면 외부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 자체로 가슴 깊은 곳에서 기쁨이 차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아예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전처럼 외부의 인정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좀 더 초연해졌다. 기쁨의 근원이 외부에 있지 않았다. 긍정적 피드백을 받을 만큼 스스로 노력한 나 자신에 대한 만족감, 보람 같은 감정이 기쁨의 근원이었다. 좀 더 중심이 나 자신에게 있었다.


24년에도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겪을 수 있다.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는 조금 덜 흔들렸으면 좋겠다. 나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내년에는 좀 더 단단해진 내면으로 어떤 어려움이 와도 슬기롭게 이겨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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