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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Sep 10. 2023

글쓰기 슬럼프를 겪다

몇 달간 글쓰기를 하지 못했던 이유

글쓰기 슬럼프라도 찾아온 것일까. 작년에는 책까지 냈던 사람이 올해 들어서는 글쓰기 자체를 등한시했다. 슬럼프의 시작은 작년과 달라진 상황이었다. 올해는 8월까지 정말 바빴다. 1,2월에는 직무분석 한다고 평균 9시에 퇴근했다. 3월 이후에 팀이 바뀌고도 상황은 비슷했다. 5-7월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7월에 번아웃이 오며 육체적, 정신적 한계가 정점을 찍었다. 회사 다니면서 올해가 가장 바쁘고 힘들었던 해였다. (얼마나 바빴는지는 아직도 쓰지 못하고 쌓여 있는 연차가 증명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글쓰기를 할 여유가 없었다. 평일에는 당장 눈앞에 떨어진 일들을 처리하기 급급했다. 주말에는 평일에 처리하지 못한 일을 하거나, 아니면 업무를 수월하게 수행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들 - 평일에 시간이 없어 보지 못했던 자료 보기, 부족한 엑셀 능력 키우기, 영어 공부하기 등 - 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데 급급했다. 글쓰기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잊혀 갔다.  


물론 '정말 단 한 편의 글을 못 쓸 정도로 바빴냐?'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당연히 그건 아니다. 바쁘다고 했지만 시간을 쪼개서 대만, 제주 여행도 다녀왔다. 글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기간이 분명히 있었다. 글쓰기를 망설이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첫 번째 원인은 '몰입하는 관심사'가 사라진 일이다. 조직문화를 주제로 책까지 낼 수 있었던 건 '조직문화'라는 주제에 흠뻑 빠졌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몇 년 동안 조직문화라는 주제에 미쳐 있었다. 그 기간에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조직문화에 맞춰져 있었다. 그렇다 보니 한 가지 주제로 꾸준히 열정적으로 글을 쓸 수 있었고 나중에는 책까지 내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내고 나서는 스스로 놀랄 정도로 조직문화라는 주제와 멀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조직문화에 대한 모든 말을 털어내고 나니 더 이상 할 말이 남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내가 가진 지식과 역량에서는 책에 담은 내용이 최대치였다. 계속해서 글을 쓰려면 새로운 경험과 공부가 필요했지만 업무가 바뀌면서 조직문화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면 새롭게 시작한 업무를 조직문화 업무를 할 때처럼 몰입하면 되지 않느냐, 반문할 수 있다. 질문에 답하자면 '그게 생각처럼 잘 안되더라'이다. 우선은 당장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말로 떠들기에는 기초적인 이해조차도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생각이 몽글몽글 자라야 하는데 아직은 좀 더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하달까(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생각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글로 옮겨보려 노력할 생각이다) 


그리고 조직문화 때처럼 자연스럽게 지금 하는 업무에 100% 마음이 가지 않는다. 업무 성격과 개인 성향의 적합도 문제라고 해야 할까. 조직문화 업무는 힘들지만 몰입하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지금 업무는 그런 몰입감을 불러오는 무엇인가가 없다. 무엇이 조직문화 업무와 지금 업무의 차이점인지는 스스로 아직 잘 모르겠다.        


두 번째 원인은 '단번에 잘되고 싶은 마음'이다. 사실 처음 글을 쓸 때는 책까지 쓰게 될 줄 몰랐다. 그냥 한 가지 주제에 몰입해서 글을 쓰다 보니 책을 낼 수 있는 기회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아마 처음부터 '나는 언젠가는 책을 내야지!'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면 오히려 책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책을 내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처음 글을 쓸 때부터 책을 낼 수 있는 주제로 글을 써서 나중에 또 다른 책을 내야지'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했다. 책내기를  의식하고 글쓰기를 생각하다 보니 글쓰기 전에 '과연 이 주제가 책으로 적합한가? '같은 고민부터 먼저 하게 되었다. 그렇게 고민하다 보면 여러 글을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들이(이런 주제가 과연 출판 경쟁력이 있을까 같은) 발목을 잡게 되고 결국 글은 쓰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마치 입스(YIPS)에 걸린  투수가 간단한 공조차 던지지 못하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이걸 극복하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다. 지금처럼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아니라 힘 빼고 가볍게 툭툭 글을 쓰면 된다. 이미 쓴 글을 가지고 책을 내거나 하는 먼 미래의 부가적인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말이다. 글쓰기 주제도 꼭 일과 관련되어 무겁게 쓸 필요가 없다. 그냥 아무런 주제를 가지고, 정말 아무 말이나 하면 된다. 스스로 잊고 있었지만 나한테 글쓰기는 결과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글쓰기는  과정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그러니 부담감 따위는 가질 필요 없이 그냥 쓰고 싶은 말을 편하게 쓰면 된다.    


'맞다, 나 그냥 글쓰기 자체를 좋아했지.' 오랜만에 글쓰기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으니 느껴지는 묘한 설렘이 있다. 아직 이런 느낌이 들다니. 여러모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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