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안 May 01. 2023

일하는 새로운 원동력을 찾기

불안(不安)에서 개화(開花, Flourishing)로

불안이라는 원동력

최근 몇 년간 일하는 나를 움직인 동력은 불안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존에 대한 불안. 안정성이 강점인 회사를 다님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대한 나의 가정은 '자의든 타의든 언젠가는 회사를 나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였다. 이런 가정을 가졌다 보니 ‘회사를 나와야 하는 상황이 생겨서 시장에 던져졌을 때, 과연 나는 내 일과 전문성을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업계의 동일 연차들과 비교했을 때 과연 나는 경쟁력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날이 꽤 많았다. 


스스로의 생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나는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없었다. 실력에 대한 자기 확신이 부족했고, 실제로 실력이 없기도 했다.(지금이라고 딱히 실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실력이라는 건 단순히 한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가 아니라 시간을 얼마나 밀도 있게 보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회사 생활의 초반에 해당하는 3년 정도의 시간은 아무리 생각해도 밀도 있게 시간을 보냈다고 하기 어려운 기간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4년 차부터는 조금 다르게 회사 생활을 접근했다. 마침 새롭게 만난 조직문화 일이 생각보다 잘 맞았다. 조직문화 일을 하며 시키지도 않은 일을 스스로 벌리고, 공부하고, 글을 쓰고, 결국에는 책까지 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걸 어떻게 했을까?'싶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많이 절박하고 불안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감사하게도 요즘은 '생존에 대한 불안'을 더 이상 느끼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환경의 변화다. '저 선배만큼할 수 있으면 업계에서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겠다' 싶은 선배들이 주변에 1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생겼다.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하면 함께 일하는 선배들을 '빼먹을까' 궁리하기도 바쁘다.  


과거의 불안은 생존할 만한 실력을 어떻게 갖춰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에서 왔다. 이제는 가까운 곳에 내가 되고 싶은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지니 더 이상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 '이대로 눈앞에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생존에 필요한 충분한 실력을 쌓을 수 있겠다'는 무언의 확신이 내면에 생긴 것 같다.  


더불어 한 달 전에는 팀이 새롭게 세팅되면서 새로운 팀장님과 일하게 되었다. 외부에서 새로 팀장님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반 기대반이었다. 외부에서 리더를 영입했다가 실패한 과거의 사례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장님과 손발을 맞춘 지 한 달이 갓 넘은 지금은 기우였음을 알게 됐다. 새로운 팀장님은 우리 회사의 전통적인 리더십 유형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래서 오히려 배울 점이 많다.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리더상과 가장 흡사한 분이다.


배울 점이 많은 동료,  이상적인 리더십의 팀장님, 도전적이지만 의미 있는 업무까지. 아내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일을 열심히 안 할 핑계가 없다'라고 할 정도였다. 회사 생활을 하며 이 정도의 갖춰진 환경에서 일한 적이 있었나 싶다. 앞으로도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불안(不安)에서 개화(開花, Flourishing)

이런 완벽한 조건에서 일하면 마냥 행복해야 할 텐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또 그렇지 않았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서는 이상한 허전함을 느꼈다. 글도 써지지 않았고 공부에 대한 동력도 떨어졌다.  


알고 보니 불안이 사라진 반작용이었다. 그동안은 불안을 땔감 삼아 내 안의 엔진을 활활 태웠는데, 더 이상 불안하지 않으니까 맹렬히 달리게 했던 동력원이 사라진 것이다.  불안이 썩 좋은 동력원은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그 역할을 해왔던 건 부정할 수 없다. 불안을 대체할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만 했지만 딱히 답을 찾지 못한 채, 헛헛한 마음이 생기면 정신없음과 바쁨이라는 외부의 압력으로 그 마음을 대충 욱여넣으며 지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들린 최인아 책방에서 <모든 삶은 빛난다>라는 책을 만났다. 책을 읽다가 새로운 개념을 알게 되었는데, 이거다 싶었다. 바로 '인간 개화'Human Flourishing라는 개념이다. 


"내면의 토양이 비옥해져서 새싹이 움트고 꽃과 열매를 맺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의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철학자 힐러리 퍼트넘(Hilary Putnam)과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 등 여러 연구자들은 수년에 걸쳐 에우다이모니아라는 그리스어 단어의 의미를 현대인들에게 재확립하기 위해 용어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바로 Human Flourishing, 즉 인간 개화입니다. 

개화는 특별한 과정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내면의 토양과 외부 세계가 만나는 유일한 지점에서 피어나는 고유한 꽃이기 때문이지요. 모든 사람은 공적 공간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세상 속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면서 꽃을 피웁니다." 

 - 안드레아 콜라메디치·마우라 간치타노, <모든 삶은 빛난다> p49-50, 시프, 2022 


인간 개화라는 개념은 내가 평소에 일을 대하는 가치관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일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내가 일을 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나 자신을 탐구할 수 있는 좋은 과정이기 때문이다. 일하면서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ex. 좋은, 힘든, 슬픈, 우울한) 상황을 만나며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가 일하기 전과 비교했을 때 정말 급격히 높아졌다. 일하면서 나 자신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한 적이 정말 여러 번이다. 


무엇보다 일을 하며 많이 성장했다. 일을 하다 보면 '전에는 분명히 못했는데 이제는 이런 것도 할 줄 아네?'라고 스스로 신기할 때가 있다. 다양한 환경에 스스로를 던져보면서 나도 몰랐던 스스로의 능력을 하나씩 발견하는 것. 나는 그 과정을 내 안의 방을 여는 일이라고 말하는데, 이왕이면 죽을 때까지 최대한 많은 방을 열어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지만, 인간 개화는 내가 가지고 있던 평소의 가치관과도 맞고 그래서 새로운 일하는 이유가 되기에 적합했다. 불안이라는 사실은 마이너스한 동력으로 지금까지 움직였다면, 이제는 개화라는 좀 플러스 한 동력으로 움직여도 되지 않을까. 불안이라는 기존의 엔진이 수명을 다 한 지금, 개화라는 새로운 엔진을 마침 운 좋게 찾았다. 


PS. 개화라니, 꽃 피는 5월에도 꽤 적절하지 않나.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을 동력 삼아 나아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