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를 꾸준히 하는 비결
내가 가진 장점 중에 하나는 꾸준함이다. 무엇인가를 잘할 자신은 없지만 꾸준히 할 자신은 있다. 뭔가를 꾸준히 하겠다는 다짐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지만, 일단 마음먹으면 중간에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을 본다. 단적인 예가 오늘 끝낸 노동법 챌린지다. 하루 30분씩 최소 주 3회씩 노동법 책을 공부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 약 4개월 만에 원하는 목표치를 채웠다.
도대체 뭔가를 꾸준히 하는 이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목표를 세우고 달성했을 때 오는 성취감, 무엇인가에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함 같은 긍정적인 감정도 분명 동력이 된다. 하지만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면 사실 부정적인 감정이 꾸준함의 동력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일상의 수많은 소음과 장애물을 이겨내려면 긍정적인 감정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다. 사실 뭔가를 하게 만드는 가장 큰 감정은 ‘불안’이다.
내 안에는 다양한 불안이 존재한다. 자주 느끼는 불안은 크게 세 종류이다.
1. 생산적인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 헛되이 시간을 쓰는 것에 대한 불안
2.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잘 수행하지 못하고 부족한 실력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불안
3.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밥벌이를 보장할 수 있는, 즉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실력을 가졌는가에 대한 불안
논리적,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가 속한 현재의 환경은 3가지 불안을 유발할 이유가 전혀 없다. 안정성이 가장 장점으로 꼽히는 회사를 다니고 있고, 회사에서의 입지도 그리 나쁘지 않다. 지금 현재의 환경은 내면에 자리 잡은 불안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불안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는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유년 시절과 취준생 시절로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걸 힘들어하고, 남는 시간에 생산적인 무엇인가를 항상 해야만 하는 강박에 가까운 1번 불안을 만든 사람은 아버지다. 아버지는 평생 자영업을 하며 성실과 근면이 몸에 밴 사람이다. 어쩌다 아버지가 쉬는 날, 거실에서 티비를 오래 보거나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나중에 머리가 크고 나서는 아버지에게 반항도 많이 했지만 생산성에 대한 강박은 이미 내면에 새겨진 다음이었다.
실력과 생존에 관한 2,3번 불안은 길었던 취업준비 기간에 만들어졌다. 방송국 PD가 되겠다며 4년간 흔히 언론고시라 불리는 시험을 준비했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제법 길었고 자아가 여러 번 바닥을 쳤다. 그 기간이 있었던 덕에 여러 방면에서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내가 가진 실력이 보잘것없고 이대로 가면 생존할 수 없겠구나’를 몸으로 느꼈다. 나중에 안 되는 방송국 PD 시험을 포기하고 지금 회사에 취업하며 길었던 취업준비 기간은 끝이 났다. 하지만 실력과 생존에 대한 불안의 씨앗은 이미 무의식 깊은 곳에 심어진 다음이었다.
긴 시간 동안 나이테가 생기듯 켜켜이 쌓인 불안을 단시간에 제거할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하리라. 그보다는 불안의 정체를 잘 살피고 내 안의 어린아이를 다독이며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편이 낫다. 내가 찾은 내면의 불안을 다스리는 나름의 방법은 ‘일단 하고 놀기’이다. 오늘처럼 모처럼 쉬는 날이면 가능한 오전 중에 시간을 정해놓고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생산적인 활동을 한다. 책 읽기, 글쓰기 같은 활동을 30분에서 1시간 정도 먼저 한다. 그러면 이미 생산적인 활동을 했다는,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면죄부가 생겨서 그다음부터는 마음 편히 쉴 수 있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썩 유쾌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불안을 마냥 부정적인 감정으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나처럼 불안을 동력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경우라면 더더욱. 모든 면에는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불안도 잘 다스리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