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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May 08. 2024

꾸준함은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꾸준함의 천재가 되는 법> 3화

AM 4:30 : 기상(미라클 모닝)
AM 5:30 : 아침 수영
AM 6:30 : 전화 영어 하기
PM 12:00 : 점심시간 활용해 필라테스하기
PM 7:00 : 퇴근 후 토익 학원 가기
PM 8:15 : 헬스장 운동 가기


보고만 있어도 숨 막히는 일정이다. 친한 친구가 위와 같이 하루를 보낸다면 제발 쉬라고 말리고 싶다. 다행히 앞에 말한 일정은 <하루를 48시간처럼.. 갓생러 회사원 인간극장>이라는 유튜브 영상에서 가상의 갓생러 회사원이 하루를 보내는 예시다¹


갓생은 ‘갓(God)’과 인생의 ‘생(生)’을 합친 단어로 신과 같은 삶을 뜻하는데, ‘결과적으로 성공한 삶’이 아니라 ‘과정적으로 부지런히 사는 삶’을 말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촘촘한 계획표로 채우고, 이를 실천할 것을 선언하고, 실천한 뒤 인증을 한다.² 실제로 개그우먼 강유미 씨가 갓생러로 등장하는 영상에는 끊임없이 계획된 시간별 일정이 좌측 하단에 자막으로 나온다. 4시 반 기상, 5시 반 아침 수영, 6시 반 전화 영어 같은 식이다.  


영상의 마지막은 주말에도 쉼 없이 자기 계발을 하던 갓생러 직장인이 쓰러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강유미 씨의 깨알 고증과 과장된 연기를 웃으며 보다가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의 그늘을 상징하는 마지막 장면에 뒷맛이 씁쓸해졌다.   


갓생러는 자기 계발 담론과 맥을 같이 한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런 자기 계발 담론은 자칫하면 '자기 착취'로 이어진다. 마치 시장에서 더 잘 팔리기 위해 상품의 기능을 개발하는 일처럼, 자신이 가진 능력을 끊임없이 계발한다.(자격증 취득, 영어 공부, 더 나은 외모를 위한 다이어트 등)


이 모든 과정을 스스로 기획한다는 점이 자기 착취의 무서운 점이다. '너는 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해'라는 보이지 않는 압박에 의해 움직이되, 그 압박을 실행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 된다. 한병철은 책 <피로사회>에서 이런 자기착취의 특징은 "한 사람이 동시에 포로이자 감독관이며 희생자이자 가해자라는 점"이라고 말한다.³  


‘나는 왜 꾸준함을 좋아하지? 혹시 내가 하는 꾸준함이 사실은 자기 착취 아니야?’


내가 꾸준히 하는 일은 글쓰기, 운동, 영어 공부다. 표면적인 행동만 놓고 보면 갓생 직장인이 하는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에 자기착취에 가깝게 자신을 몰아붙인 적이 있어서 ‘다시 병이 재발한 건가?’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내가 최근에 꾸준히 하는 일은 스스로를 숨 막히게 했던 과거와는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행동을 하는 이유다. 만약 외부의 시선 때문에, 남이 부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다면 그 행동은 자기 착취다.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묘사되는 근육질의 날씬한 몸을 갖기 위해서 운동을 하거나, 회사에서 승진을 위해서 영어 공부를 하는 경우다. 자기 착취는 외부에서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 자신을 수단으로 삼는다.  


반면에 꾸준함은 행동하는 원동력이 자신에게서 나온다. 꾸준히 운동과 영어 공부를 하는 동력은 순수한 재미이다. 러닝머신을 달리고 근력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리면 기분이 상쾌하다. 우리말을 영어로 바꾸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를 배우면 순수하게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체중을 감량하겠다, 영어점수를 몇 점 맞겠다는 목표 달성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실제로 체중도 빠지고 영어 점수도 좋아졌지만 처음부터 목표했던 일이 아니다. 그저 매일매일 즐겁게 행동했더니 부가적으로 얻어진 결과이다. 처음부터 목표를 높게 잡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달성도에 따라 일희일비하며 스트레스받았을 것이다.


자기 착취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꾸준함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하고 싶지 않은데 등 떠밀려서 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일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먹고살기 바쁜 와중에 스트레스를 부르는 또 다른 요인이 될 뿐이다.    


특히 이렇게 하고 싶어서, 즐겁게, 꾸준하다 보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가능성을 발현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나한테는 글쓰기가 뒤늦게 찾은 가능성이었다. 과거에 내 글쓰기 실력은 정말 형편없었다. 무작정 있어 보이는 글감을 억지로 글 중간에 끼워 넣거나, 소화하지 못한 전문지식을 활용했다. 그래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네 글은 어디서 본 것 같아’였다. 그때마다 내 글쓰기 실력은 발전이 없구나 싶었다.


하지만 내가 쓰는 글의 퀄리티와 상관없이 글쓰기는 그 자체로 순순하게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꾸준히 썼다. 지하철 안, 혼자 있는 카페, 여유로운 여행지, 시간이 생기면 어느 장소에서도 썼다. 그날 있었던 일, 읽었던 책, 사람들과 나누었던 대화, 글쓰기 주제도 다양했다. 그저 쓰고 싶은 말이 내 안에 자라나면 휴대폰 메모장을 켜서 기록했다. 그렇게 자주 쓰다 보니 글쓰기가 점점 나아졌다. 덕분에 글쓰기로 새로운 기회도 얻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만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다만 이 가능성은 겨울철 대지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씨앗처럼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내면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가능성의 씨앗에 싹이 움트려면 햇빛을 쐬어주고 물을 주어야만 한다.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 씨앗이 발아하도록 햇빛을 쐬어주고 물을 주는 일, 그래서 자신의 가능성을 크게 꽃 피우는 일. 나는 꾸준함이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자기개화’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내면의 토양이 비옥해져서 새싹이 움트고 꽃과 열매를 맺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의미입니다. 여러 연구자들은 수년에 걸쳐 에우다이모니아라는 그리스어 단어의 의미를 현대인들에게 재확립하기 위해 용어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바로 Human Flourishing, 즉 인간 개화입니다. 개화는 특별한 과정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내면의 토양과 외부 세계가 만나는 유일한 지점에서 피어나는 고유한 꽃이기 때문이지요.

- 안드레아 콜라 메디치·마우라 간치타노. (2022). <모든 삶은 빛난다>. 시프



*참고자료

1. 강유미. (2023.8.16). <하루를 48시간처럼.. 갓생러 회사원 인간극장>. 유튜브.

https://youtu.be/jS9UaHpdW7w?si=kScuuk8C4knh_86Y

2. 박현영. (2023.5월호). <시대의 트렌드, 갓생&루틴>,빅데이터로 본 생활변화관측기. KDI 경제정보센터. https://eiec.kdi.re.kr/publish/columnView.do?cidx=14322&sel_year=2023&sel_month=05   

3. 한병철. (2012). <피로사회>. 문학과 지성사.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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