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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May 09. 2024

꾸준함으로 삶의 중심 잡기

<꾸준함의 천재가 되는 법> 4화

한동안 회사에서 깊은 슬럼프를 겪었다. 계기는 새로운 팀에서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된 상황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바뀐 상황을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항상 새로운 상황에서도 잘 적응해 왔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몇 달 만에 자신만만함은 착각이었음 깨달았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겪어보지 못한 업무를 해야 했다. 평소 자신감이 오히려 독이 됐다. 높이 날수록 추락했을 때의 고통이 크다. 잘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만큼 그렇지 못한 자신을 봤을 때 많이 낙담했다. 한동안 혼자서 어두운 터널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문제는 대처가 어려운 변동성이었다. 내가 담당했던 프로젝트 방향성이 자주 변했다. 비행기를 타고 갈 것인가, 기차를 타고 갈 것인가, 아니면 자동차를 타고 갈 것인가. 수단을 정한 다음에는 그 수단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도 문제였다. 만약 자동차를 탄다면 자동차를 구매할 것인가, 아니면 만들 것인가 같은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변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애초에 통제가 불가능한 면이 있는 프로젝트였다.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어야 하는데 그때의 나는 스스로 능력이 부족해서 변수를 통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통제불가능한 변수들을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쏟아지는 비를 우산 하나 없이 맞고만 있었다.


결국 번아웃이 왔다. 하루는 사무실에서 하얀색 PPT를 띄워놓고 아무것도 적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리에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무작정 회사에 있는 계단을 오르내렸다. 나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런 자신이 놀라서 다시 가슴을 진정시켰다. 혼자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주변의 도움을 청했다. 다른 선배가 프로젝트에 투입되면서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프로젝트 리드는 선배가 맡고 나는 보조하는 역할로 바뀌었다.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물론 여전히 프로젝트는 진행되고 있었고 내가 해야 할 몫이 있었다.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나는 꾸준함에서 답을 찾았다. 우선 프로젝트 수행에 필요한 엑셀부터 공부했다. 당시에 하던 주된 업무가 데이터 정리&분석 업무였다. 프로젝트 투입 전까지는 데이터 다루는 업무를 크게 할 일이 없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잘 쓰지 않던 엑셀로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자존감 하락의 주된 원인이었다. 주말 이틀 동안 하루에 최소 1시간씩 500쪽이 넘는 엑셀 교재를 보며 직접 기능 하나하나를 따라 했다. 주말 2시간씩 2달을 투자하자 정확히 500쪽이 넘는 책 한 권을 뗄 수 있었다. 엑셀 공부의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한 주 한 주 지날수록 회사에서 업무 속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동일한 시간 내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양과 질이 달라지는 걸 느끼자 잃어버렸던 자신감도 회복할 수 있었다.


번아웃을 겪던 시기, 삶의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느꼈다. 그때의 나는 변화구를 쉼 없이 뿌려대는 배팅볼 머신 앞에 선 타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저 눈앞으로 날아오는 수많은 공들을 쳐내기 바빴다. 정신없이 날아오는 공들을 쳐내기 위해 볼품없이 배트를 휘두르다 보니 중심이 무너졌다. 일단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야만 날아오는 변화구에 대응이 가능할 텐데, 중심이 무너지니 안타는 고사하고 헛스윙 한 번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무너졌던 중심을 다시 잡은 건 꾸준함 덕분이다. 엑셀 공부를 꾸준히 하면서 업무에 직접적인 도움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상황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뭔가 한다는 것 자체가 빼앗겼던 삶의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는 행위였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가 모든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고 있다는 감각이 중요했다. 꾸준함은 마음의 닻이 되어 흔들리는 일상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하버드 의과대학원의 임상심리학자이자 크리스토퍼 거머 박사는 저서 <오늘부터 나에게 친절하기로 했다>를 통해, "마음은 닻을 내릴 곳이 필요하다.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정신적 고통의 대부분은 마음이 이리저리 널뛸 때, 또는 불행한 생각이나 감정에 사로잡힐 때 생겨난다. 마음이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것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중립적이고 동요되지 않는 의지할 곳을 마련해 마음을 정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내가 그랬듯, 살다 보면 급류에 휩쓸린 배처럼 마음이 정신없이 흔들리는 때를 겪을 수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 나만의 닻을 만들면 어떨까?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꾸준함을 만드는 것이다. 걷기, 음악 듣기, 좋아하는 카페 가기 등 종류 무엇이든 상관없다. 다만 꾸준히만 하자. 삶이 정처 없이 흔들릴 때 언제든지 자신만의 꾸준함을 통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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