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의 천재가 되는 법> 7화
첫 책 원고의 절반은 회사에서 5년에 1번 주어지는 장기 휴가 때 썼다. 회사에서는 5년을 다니면 3주 연속으로 쉴 수 있는 장기 휴가를 준다. 마침 책 원고를 쓰고 있던 때는 5년 근속을 채우고 6년 차에 접어들던 시기였다. 보통은 해외여행을 가지만 내가 장기 휴가를 써야 했던 때는 슬프게도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였다. 해외로 가는 하늘길은 봉쇄된 상황. 5년에 1번밖에 오지 않는 천금 같은 휴가를 최대한 가치 있게 쓰고 싶었다. 평소에 가기 어려운 국내 여행지를 가볼까, 아니면 그 당시 유행하던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할까. 각종 선택지를 손에 올려두고 어떤 걸 선택할지 고심했다.
‘지금 밖에 못 하는 일을 하자’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그렇게 생각하니 답이 명확해졌다. 바로 책을 쓰는 일이었다. 그해 8월에 출판사와 첫 책 계약을 맺은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평소에 블로그에 써 둔 글을 정리해서 내면 되겠지,라고 쉽게 생각하고 계약서에 사인 했다. 그런데 웬걸. 목차를 여러 번 갈아엎고 수정하니 새롭게 써야 할 글이 전체 원고의 50% 이상이었다. 부족한 원고를 보충해야 할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을 못 가는 건 슬펐지만 책을 쓰기에는 절호의 기회였다. 3주라는 시간은 어쩌면 신이 준 기회일 수 있었다. 과감히 3주 대부분의 시간을 책 쓰는 데 할애하기로 마음먹었다.
문제는 글을 쓰기 위한 공간이었다. 집은 2-3시간이면 모를까, 장시간 글을 쓰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글쓰기 집중력을 흩트리는 요인이 곳곳에 많았다. 우선 침대. 신혼살림을 마련할 때 다른 건 아껴도 잠은 잘 자야 한다는 생각으로 침대 매트리스는 비싼 걸 샀다. 문자 그대로 누우면 몸이 착착 감긴다. 나른한 오후가 되면 침대의 유혹을 참기 힘들었다. 잠깐만 누울까? 했다가 그대로 코 골며 잠든 게 여러 번이다. 벽에 걸려 있는 TV도 글쓰기를 방해하는 주범이었다. 리모컨 버튼만 한 번 누르면 넷플릭스, 유튜브가 바로 연결된다. 그 뒤로는 몇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집에 있으면 원고를 못 쓸 상황이 눈에 훤했다.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마침 집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는 공유 오피스에서 일일 이용권을 판매한다는 광고를 봤다. 하루에 15,000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면 하루 종일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매일 이용하면 금액이 적지 않았지만 그 비용은 5년 근속 휴가비로 충당했다. 3주 간의 휴가 기간 동안 회사 가듯 공유 오피스에서 글을 썼다. 오전 9시까지 오피스에 도착한 다음 6시까지 꼬박 글만 썼다. 평생의 버킷 리스트였던 책을 낸다는 생각에 회사에서 일할 때보다 더 집중해서 글을 썼다. 가끔은 글을 쓰고 건물 밖으로 나오면 하늘이 노란색이었다.
결과적으로 공간을 바꾼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3주 중 5일의 국내 여행 기간을 제외하고(그래도 간만의 휴가인데 글만 쓸 수는 없었다) 모두 글을 쓰는 데 시간을 집중했다. 덕분에 전체 원고의 80% 이상을 완성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공간이 나를 글쓰기로 인도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글쓰기 집중력과 효율성이 좋았다.
공유 오피스는 글쓰기를 방해하는 요인은 적고, 반대로 글쓰기를 유도하는 요인은 많았다. 공유오피스는 일반 가정집이 아니기에 당연히 침대, TV가 없다. 대신 이용자들이 본인의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내가 이용한 곳은 층 전체가 탁 틔어 있는 라운지 형태 공간이었다. 적당한 개방감과 조용한 분위기가 집중력을 높여 주었다. 각자의 노트북에 집중해서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훌륭한 글쓰기 유도 장치였다. 다들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는데, 나만 놀 수는 없었다. 각자의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보면 글 한 편이라도 쓰고 가야 한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적당한 긴장감과 느슨함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그런 특유의 분위기가 3주간 꾸준히 글을 쓰도록 만들었다.
우리의 일상에서 꾸준함을 유지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수많은 장애물이 수시로 등장해서 태클을 건다. 매번 의식적으로 대응하고 통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럴 때는 공간을 바꿔보자. 의외로 공간 하나만 잘 선택해도 꾸준함을 유지하기 쉬워진다. 휴가가 끝난 다음에는 글쓰기를 꾸준히 하기 위해 집 근처 카페를 애용했다. 중요한 것은 일단 집을 나서는 것이었다. 꾸준함을 방해하는 요소가 많은 곳과 일시적인 단절을 만들고, 꾸준함을 유도하는 곳과 연결하는 일. 공간을 바꾸는 행동이 꾸준함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갖는 의미다.
한 번 클릭하면 결제까지 쉽게 이어지는 간편 결제 서비스처럼, 공간을 바꾸기만 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이뤄질 수 있다. 이런 공간의 힘을 활용한 전략은 꼭 글쓰기가 아니어도 적용할 수 있다. 자신이 지속하고 싶은 행동을 방해하는 요인은 적고, 오히려 행동을 유도하는 넛지(Nudge)가 많은 공간으로 가자. 이는 꾸준함을 유지하는 훌륭한 전략이다. 공간이 우리를 꾸준함으로 안내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