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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eah Nov 22. 2021

일상의 별사탕같은 행복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고

"파랑새는 가까이 있어" 라는 소리에 "파랑새 같은 소리하네" 라고 대답하며 살아온 나에게 행복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해준 책이 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것이 좋다>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10초 같은것, 그러한 느낌은 지속될 수 없기에 새해의 계획으로는 적절치 않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 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가 인생의 목표가 뭐냐고 물으면 의심의 여지없이 '행복해지는 것' 이라고 답했던것 같다. 현재가 불행했다기 보다는, 인생에서 내가 발을 들일수 있는 절대적 행복이라는 영역이 존재하고 그것을 추구하는게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행복이라는건 나를 잠식시키는 쓰나미같은 강력한 감정의 물결일테고, 한번 발을 들이면 몇개월이고 몇년이고 행복이라는 감정을 변함없이 누릴수 있을것 같았다.


'~만 하면 행복해지겠지, ~가 되면 행복해지겠지' 라는 행복해지기 위한 나만의 전제조건들이 있었다.

원하던 대학에 입학하고, 가고 싶던 직장에 입사하고, 혼자서 애닳도록 좋아했던 사람과 연인이 되고, 원하는 물건을 소유하고, 동경하던 도시에 여행가서 가서 멋진 사진을 찍고..

그간 정해놓은 조건들을 하나씩 이루어가도 마땅히 점점 채워져서 찰랑거려야 할 나의 행복 항아리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고, 마치 흡혈귀가 피를 탐닉하듯 '난 행복해지고싶어!'라고 속으로 미친듯 외치며 행복에 닿기 위해 갈구하며 허덕였다.  


하지만 행복의 기분은 정말이지 찰나에 불과했고 덧없었다.

가지고 싶은 물건을 갖고, 원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면 너무나도 행복할 것 같다가도, 금새 다시 시들해지고 또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다른 목표를 찾아 헤메고 있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현재를 희생했는데, 결국 과거에도, 미래가 된 현재에도 행복이라고 부를게 남아있지 않았고, 꽉 움켜질수록 손아귀를 벗어나는 모래알처럼 오히려 행복이라는 목표는 더 멀리 달아나는 것만 같았다.


힘들고 불행한 일은 몇일이고 몇년이고 내안에 머무르면서 날 고통스럽게 하는데, 왜 행복이라는 건 그 잠깐의 순간만 지속되고 신기루처럼 금새 사라질수밖에 없게끔 설계되었을까? 이런 부조화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자주 자문했다. 인생은 자주 외롭고, 자주 힘들고 가끔 행복했다.


이게 인간 존재의 한계라고 한다면, 결국 행복의 길로 가는 방법은 미래에 큰 행복이 있을 거라는 거짓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가면 남자친구 생겨, 로또에 당첨되면 행복해져 라는 근거 없는 덕담이자 믿음을 지양해야 한다. 행복이란 무언가를 달성하면 갑자기 썰물처럼 밀려드는것이 아니라 '소확행'이라는 유행어처럼 삶의 과정속에서 가끔씩 때때로 다가오는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과거를 떠올려보자 행복한 순간은 마치 모래알처럼 수도 없이 많았다.

낯선 여행지에서 새로운 풍경을 마주했을때 느껴지는 생경한 감각이 나는 행복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때 죽을것 같이 힘들다가 저 멀리 목적지가 보이고 시원한 바람이 흠뻑 불어올 때 문뜩 행복감을 느꼈던것도 같다.

내 마음을 소름돋게 잘 표현해주는 시나 음악을 만났을 때 나는 행복하다.

무언가를 열정적이게 완수하고 나서 느끼는 성취감이나 만족감, 따뜻한 칭찬의 한마디가 행복으로 다가온다.

 


이탈리아 여행중 행복했던 순간, 아침산책


결국 내 인생에서 행복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하면서도 행복인지 몰랐던 것들에 숨어있었다.


삶의 순간순간 때때로 찾아오는 아주 작은 기쁨과 행복을 현실에 흠뻑 취해서 만끽하고, 그런 찰나의 순간들을 모아서 소중히 주머니 속에 보관해 놓아야겠다. 삶이 가끔 텁텁하고 띵할때 주머니를 열어 꺼내먹을수 있는 행복의 별사탕이 삶의 짜릿한 당분이  것이다.


광할한 자연앞에서 겸허해질때, 감히 상상할수도 없는 우주를 상상해볼때, 내 이전에도 계속 되고 내가 죽은 이후에도 계속될 큰 흐름에 대해 생각해보면 인생이 때때로 장난이자 농담같아질 때가 있다. 이럴때면 특정한 어떤 가치를 위해 아등바등 사는것 조차도 사치스러워진다. 활짝 피었다 금새 시들어 지는 꽃들처럼 한 생명이 스러져갈때 결국 남는것이 '내 인생이 이러이러했다' 라는 한줄 평밖에 없다면, 나의 작고 귀여운 행복들이 옹기종기 모여 반짝반짝 내뿜는 빛 가운데서, '내 인생은 종종 기쁘고 자주 만족스러웠다' 말할수 있을 때 나는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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