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도 없는 외로움, 살아 있다는 괴로움
누군가 인도에 한번 가보라고 말했다. 죽음에 대해 고민할 때 진짜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을 보면 죽기 싫어질 거라고. 누군가와 비교해 우월감을 느끼며 삶의 의지를 찾는다는 게 가장 비겁한 짓임에도 나는 그 비겁함 마저 필요했다.
과연 인도는 인도였다. 미세먼지 수치 100만 되어도 KF94 마스크를 꼭 챙겨 쓰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세먼지 수치가 기록도 되지 않아 매일 999를 찍어도 그 뿌연 공기를 흠뻑 마시며 릭샤를 끄는 곳이었다. 자욱한 안개에 가려 끝이 가늠되지 않는 갠지스강 한켠에서는 장례를 치르고 시체를 수장시키고 있고, 배를 타고 조금만 더 가다 보면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은 몸을 담가 목욕을 하고 그 물을 마시기도 한다.
바라나시를 지나가다 보면 거적떼기를 입은, 키가 채 50cm도 되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관광객들의 옷과 가방을 잡아끌며 구걸을 한다. 절대 돈을 주면 안 된다기에 가방에 있는 사과와 포카칩을 줬다. 아이는 사과는 제 어머니를 가져다주고 포카칩을 마치 장난감 공처럼 하늘 위로 던졌다 받았다 하며 까르르 꺄르르 웃었다. 그리고는 무어라 말하며 해맑게 나를 졸졸 따라왔다.
갠지스강의 흙탕물을 마시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구걸을 하며 자라나는 아이들, 까만 먼지 속에서 맨발로 거리를 쏘다니며 인력거를 등에 메고 돈을 버는 사람들, 그 옆에서 무섭게 뿌리 내려 똥물을 꿀꺽꿀꺽 빨아들이며 번식하는 갠지스강의 식물들, 사람, 오토바이, 인력거, 그리고 오물이 무질서하게 엉켜있는 그 도로 가운데 하릴없이 앉아있는 소들을 보며 나는 생명이란 참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생명은 지구 어디에나 있고, 아무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냥 던져져 있다. 그 누구도 태어나기를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생명을 얻게 되면 살고자 하는 욕구는 무서울 정도로 강인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 질기고 어찌할 도리가 없는 명을 끌어안고 하루하루의 생을 버텨내고 있었다
나는 내 삶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으로 누군가가 나를 불쌍하다 생각할 것 같아 무서웠다. 그래서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누구도 생이 다른 생을 불쌍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냥 단지 우리는 모두 '이유도 없는 외로움 살아있다는 괴로움'을 등에 짊어지고 사는 동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