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시간의 대화
삶이 내맘대로 안풀리는 것 같았을때, 우연히 한 어플에서 재능기부 사주풀이 일회성 모임을 보게 되었다. 할일도 없겠다, 그냥 커피 한잔 마시면서 내 사주 풀이나 듣고, 풀이하는 방법도 듣고오지 뭐 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모임에 나갔다.
나보다 한 15살정도는 많아보이는 아저씨분이 주최자였고, 사주에 관심이 많냐고 물으시더니, 사주를 봐주는것 뿐 아니라, 타인의 사주를 볼 수 있을 정도 수준으로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평소에도 관심이 있던 터라 혹해서 들었다.
<사주 풀이는 안읽으셔도 됨니더..>
말해준 것을 요약하자면, 사주에 비견이 많아서(비견은 나의 분신, 나와 같은 기운이라고 한다) 주변에 사람이 많으나, 도움이 될수도 있고 해가 될수도 있어서 사람을 잘 관리해야한다. 비겁이 많은(4개)인 사주인데, 식상이 없는(0개) 사주라서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비겁이 재성을 극하여 분탈이 나타날 수 있으니 아는사람과의 돈거래 등을 조심해야 한다. 관은 관직, 명예, 직위를 상징하나 여자에게는 남자운이라고도 하는데, 편관이 배우자를 나타나는 자리에 있어서 배우자 때문에 한평생 고생을 많이 할 수 있다(나쁜남자를 만나 힘들 가능성이 높다). 또한, 월지에 편인이 있어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고 철저한 대비를 하는 사람이며,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다. 사주가 수의 기운이 강한데, 수를 치는 토를 극하는 목의 기운이 없고(?) 따라서 밀고나가는 힘(추진력)이 없다. 연애나 일을 할때도 굉장히 소극적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또한, 사주에 수가 많아 생각이 많고, 상대방이 내마음을 모르고 감추는 경우가 많고, 표현을 못해서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현재(20~40세) 시점에는 외로움, 쓸쓸함을 많이 느끼고, 감성적이며 공감능력과 동정심이 많으나, 수동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시기이며, '병'과 '편인'이 만났을때 외로움이 극대화되는 사주라서, 아마 굉장히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사주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들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걸러서 들으면 되는거고 또 요즘에 이래저래 힘든일이 많아서 마음이 약해진 탓인지 더 쉽게 공감이 가기도 했나보다.
아무튼 공부도 하고싶은 마음에 처음 들은 날 열심히 메모를 하며 들었더니, 개운법을 알려주겠다고 다음에 한번 더 스터디를 하자고 했다. 왠지 스터디라고 하니까 이상했지만, 이참에 취미로 사주 한번 공부해볼까 하는 마음에 한번 더 만났고, 그는 다음에 만날때는 음료 한잔 사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정도 지식을 얻는데 음료 정도야 더 사드릴수 있지 하는 마음에 일주일 후 그를 다시 만났다.
다시 사주풀이가 시작되고, 한시간 가량 흘렀을 무렵 나의 실패한 연애사들을 말하면서 기운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본인이 20대 후반에 사주 공부를 하면서 기운이 아주 크게 바뀌어서, 자기 사주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서 지금 행복하게 연애 중이라고 하면서(근데 20대 후반에 운이 바뀌었는데 왜 40중반에 새로운 사람을 만난거지..?), 사람들이 사주는 절대 못바꾸지만 사실 사주 안에 있는 데이터(업보)는 바꿀수 있다고 했다. 즉, 사주팔자라는 것은 그냥 표면적인 것이며 그 안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업보'이다. 우리의 전생에서든 현생이든, 혹은 부모의 '업보'들이 쌓여서 그것이 현재 인생에 힘듬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누군가 미워하고 탓하고 증오하는 에너지인 '척' (흔히 말하는 척진다 할때의 척, 부정적인 에너지)이 나의 기운을 망가뜨려 내 앞길을 막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그것을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해소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기까지 들었을때 '아 모든것이 내 업보였구나..' 라는 생각에 살짝 숙연해졌을 찰나, 갑자기 개운법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그래, 개운법!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야' 라는 생각으로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제삿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개운법은 해원법이라고도 하는데, 원망을 푸는 예법이라고 한다. '척, 원망'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 양쪽에 초를 올려놓아야 하고..
정성을 들이기 위해 음식을 차려야한다. 음식은 내가 부담해서 차리는 것이고, 만드는 것 까지 총 4시간이 걸릴것이다. 그리고 그 업보를 푸는 정성은 집에서 혼자는 절대 못하고, 어떤 분의 집에서 상을 차리고 24가지 절차를 통해서 해야하는데, 도와주는 분 두명정도가 더 계셔서 그 해원법을 도와줄 예정이다. 해원법을 할때 상에 물을 올려놓는데 그 물에는 내 업보가 떠다닌다. 그 물잔은 랩으로 쌓여져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아무리 내가 그 물을 바꾸려고 해도 안바꿔지는 이유가 그것때문이라고 한다). 해원법은 결국 그 물잔의 랩을 벗겨주는 '시작'역할을 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갑자기 '정성, 상차림, 예법'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뭔가 이 열차가 이상한 곳으로 달리고 있다 싶었다. 하지만 사주풀이를 열심히 들었는데 갑자기 그런거 안한다고 벌떡 일어서서 가기도 뭔가 민망한 상황..
그의 말을 끝까지 듣고, 한번 더 생각해보겠다고 말했으나, 그는 절대 포기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예법이 조금 거부감이 드는것은 사실일 것이다' 등등의 말로 나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찾아온 현타.. 아니 내가 지금 인생이 힘들어서 사주를 좀 공부하러 왔는데 왜 이런말을 듣고 있어야 하지 싶었는데 그래도 한시간정도 더 들어주다가 생각해보겠다고 강경하게 말하고 서둘러 빠져나왔다.
도를 알고싶다는 원래 길거리에 다니는 인상 만만한 사람들 잡고 '인상이 좋으시네요' 혹은 '친척중에 혹시 아프신분 있어요?' 등의 말로 회유하는것 아닌가? 뭔가 코로나라서 그들의 장사가 그런 방법으로는 끊겼는지, 굉장히 다양한 경로로 확장하고 있었다.
정성을 들이러 누군가를 데려가면 커미션을 받는것일까?
갑자기 그동안 들었던 사주풀이에 대한 신뢰도와 느꼇던 감동 일그람도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려서 아쉬웠던 시간. 어이가 없어서 친구들한테 말했더니, 그 아저씨가 해준 통변도 잊어버리라고 한다.
괜히 부정적인 말 많이 들어서 좀 기분이 우울했는데, 오히려 잘됐다 싶기도 하긴 하다.
조금만 더 순수했거나, 조금만 더 인생이 힘들었으면 나 정말 상차렸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