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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eah Mar 29. 2022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죽음과 장례를 경험하고 쓴 개인적인 일기

죽음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고, 죽음을 면밀히 계획할 만큼 많이 받아들였다고는 하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을 실제로 살갗에 서늘하게 마주할때면 지금까지 굳게 믿어온 나의 생각들은 모두 오만이자 개똥철학이 되고 만다.


아프셔서 거동을 못하신지 어언 15년, 그 긴 세월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들었을때 처음 드는 생각은 안도였다. 운전을 해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동안에도,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에도 어렸을때 봤던 할머니와의 좋은 기억들을 반추하면서 한국의 장례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상실을 추모하는 자리가 아니라 고인과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추억하는 방법으로. 우리세대의 장례식은 고인의 어렸을때부터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 소개부터 시작해서, 메타버스로 만든 고인의 모습까지.. 너무 엄숙하지는 않게 고인이 떠나는 것을 축복해주는 문화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발인날, 평생을 다니던 성당에 가서 마지막 장례미사를 치르는데 갑자기 그간 쌓아왔던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영원히'라든지 '다시는'이라는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궁극의 소멸. 영원한 이별. 다시는 보고 듣지 못할 할머니라는 인간의 존재. 끝이라는 감각이 차갑게 마음을 찔렀다. 인간은 누구나 유한한 생명의 끝을 가지고 있고, 끝을 마주하는 사람도 그리고 산사람도  숙명을 받아들일수 밖에 없는 한계가 더욱 크게 와닿았다. 어쩔  없는 상실의 여정. 그것이 인간을, 생애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할머니 묘지에서 바라보니 정말 아름다운 동해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진한 코발트빛 바다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할머니를 묻어드리고 내려오는 길에 엄마와 고모들과 걸음을 멈추고 발아래 한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답답한 집에만 15년을 누워계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누워계시게 되었으니 자유롭고 행복하실것 같다며.


평생 시장에서 팥죽 장사를 하며 등이 다 굽어버린 할머니, 60년 동안 일도 안하고 술만 마시는 가장 대신 집안의 가장이자, 어머니로 여섯 남매를 강인하게 키워내신 할머니,

여섯 남매와 그들의 배우자와, 손자손녀들의 배웅을 받으며 가시는길 외롭지 않게 떠나셨으니 이번생은 성공이예요.

슬픈 세상 다시는 태어나지 마시길, 하늘나라에서 내인생좀 잘 봐달라는 자손들의 기도도 아무것도 듣지 마시고, 그냥 한평생 고생한 육신을 벗어나 영원히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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