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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eah Jan 14. 2023

결혼 두달전 파혼했습니다_2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계속된 삐걱거림


그는 이기적인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건 자신의 가족 문화고 이걸 이해해 주지 못하면 결혼을 하면 안되는 거라고 했다.

나는 본인도 본인 가족이 불편하면서, 그 이유로 아무런 중재도, 주장도 하지 못한채 나에게 그 불편함을 같이 감수해야한다는 식의 당당한 태도를 취하는 점이 이해가 안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이거였던 것 같다

“ 우리집 사정이 좀 그래서 그런데, 설날이나 추석에 내려가서 하루씩만 자면서 조금만 도와드리자, 그러면 내가 처가에 가서도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도 너한테 더 잘할게 이해해줄수 있겠니?”


그리고 상대방이 듣고싶은 말은 이런말이 아니었을까?

“ 오빠를 사랑하니까 오빠가 가진 그런환경도 난 이해할 수 있어, 대신 오빠도 우리 부모님한테 잘해드려줘” 정도..

하지만 우리는 이런말을 할만큼 현명하고 선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싸우고 나서 식장 취소 메일이 날라왔다. 정리했구나, 싶어서 전화로 잡았다.

내가 노력해 보겠다고. 미안하다고. 그는 헤어지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결혼이 하고 싶었고, 내 목적을 달성하려면 그가 꼭 필요했다.

그렇게 시간을 갖기로 한 마지막날 쯤, 그가 전화가 왔다. 다시 잘해볼 수 있을것 같다고 했다. 화가 많이 풀린 눈치였기도 하고 나도 보고싶은 마음이 들어서 우리는 만나서 술을 마시며 풀어보기로 했다.


그는 전여친들은 아버지가 혼자 사신다고 명절에 반찬이나 음식 만들어서 보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둥, 아버지가 혼자 사시는데 한달에 50씩 드리는 용돈이 부족한거 아니냐, 더 드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는 둥 마치 나처럼 생각하고 주장하는 게 이상하고 특이한 여자라는 식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자기도 가족이나 친척들이 너무 힘들고, 그들이 나에게 화내는게 너무 힘든데 너까지 이렇게 나한테 예민하게 반응하면 자신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화내지 말라고도 했다. 자신한테 말도 막하지 말라고 했다. 잘때 방을 따로 쓰면 안된다고도 말했다.

그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붙여갔고, 자신은 마치 완벽한데 내가 자신에게 잘못맞춰진 퍼즐같다는 식인 양, 내가 고쳐야하고 그를 만나기 위해 내가 바뀌어야 하는 점에 대해서 줄줄 읊어댔다.

그가 한 말중 이해가 가는말이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와 계속 만나고 싶었기에 그런말을 듣고도 내가 고치겠다고 노력해 보겠다고 말하면서 그를 잡았다.

생각해보면, 참 나는 외로움 때문에 나를 버릴 수도 있는 어리석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단지 외롭지 않기 위해, 그의 빈자리가 너무 외로워서 나의 가치관을 버리고 그에게 다 맞춰준다며 자신도 없는 말을 했으니..


그렇게 겨우 봉합된 상처가, 나는 잘 아물어 간다고 생각했는데, 둘다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나는 내 안에 깊은 곳에 묻어서 신경도 쓰지 못한채 곪고 썩게 놔뒀고, 그는 그것을 결국 스스로도 다루지 못하다가 몇 일 만에 터트렸다.


어느날 아침에 내가 커튼 아래에서 누워있는 그에게 커튼좀 쳐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가 계속 무시했다. 내가 커튼좀 쳐달라고 두번 정도 더 이야기 하자 그는 화가나는 듯 발로 툭 밀어서 커튼을 쳐줬는데, 결국 별로 열리지도 않았고 나는 그냥 별말하지 않고 집을 나왔다.


그날 밤, 그 이야기를 다시 했다. 왜 그런거 하나 안해줬냐고, 그랬더니 그가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면서 커텐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내가 그때 잠에서 깬지 얼마안됐는데 이거까지 일어나서 쳐줘야해? 누워서 손에 닿을 거리도 아니고, 몸을 일으켜서 치면 내가 잠이 다깨는데 그럼 뭐하러 내가 거기 누워있어? 잠깻는데 일하러 가지 ? 그리고 그거 꼭 쳐야해? 내가 앞에 있으니까 굳이 쳐달라고 한거야? 평소에는 치지도 않더니?”


“아니 그날 내가 회사에서 일이 있어서 화장을 하고 가야해서, 빛이 좀 필요해서 쳐달라고 한거야…근데 왜이렇게 화내? 지금 내가 싸우자고 말했어? 나한테 평소에 화내지 말고 말하라며, 난 화안내는데 오빠는 지금 이게 이렇게 소리지를 일이야?”


“너 내가 지금 왜 화내는지 몰라? 너는 이날까지 나한테 화낸거 생각안해? 넌진짜 변한게 하나도 없어!!!이럴거면 그만하자 진짜. 믿은 내가 잘못이지, 너 변하겠다고 믿은 내가 잘못이지!!” 하고

한창 소리를 지르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그만하자고 집에 가버렸다.


그는 자기가 지금 화내는 것은 다 나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그때 명절에 가지 않겠다고 자기한테 화를 심하게 내서라고 했다. 그 이후로 자기 감정이 컨트롤이 안된다고.

대체 몇일이나 지나고 몇번이나 서로 화해를 했는데..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이었다.

바닥을 보고 헤어졌구나 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마음속이 편해지고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할 도리를 다 한 후의 헤어짐이 이런느낌일까?

난생 처음 느껴보는 느낌에 오히려 정리가 빨리 되어서 안하던 소개팅도 잡고, 그의 흔적을 지우며 마음 가뿐히 몇일을 보냈다.




헤어진 지 삼일만에 연락이왔다. 내 생일이었다.

미안하다고, 다시 잘해보자고. 나는 거절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또 연락이 왔다.

그는 헤어진 동안 소중함과 사랑을 너무 크게 느꼈다고, 뭐든 잃어봐야 소중함을 아는것 같다며 빌고 사과했다.

어쩌면 마음속으로는 상대방이 잡아주기를 원했을 지도 모르겠다. 못이기는척 거절 여러번 하다가 잡혔지만, 사실 내가 잡힌 이유는 단 하나 결혼이 하고싶어서였다.


연애였으면 내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단호하게 끊어냈을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해결된게 하나도 없었고, 그가 잡을때 했던 멘트는 100% 자기중심적인 내용이었다.

나랑 이렇게 헤어져버리면 자기가 얼마나 힘들고, 본인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냐는 등..

내 마음에 대한 고려나 배려는 전혀 없었고, 우리가 헤어진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그의 반성이나 개선은 전혀 없었지만 나는 다시 만나기로 했다.


다시 시작하고 나니 결혼준비는 더더욱 박차가 가해졌다. 서로의 부모님을 뵈고, 식장을 다시 예약하고, 신혼여행, 스드메, 웨딩밴드 등..

마치 소꿉놀이를 하는 것처럼 돈쓰는 재미, 행사를 준비하는 재미에 또 한동안 푹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그는 나를 많이 맞춰주었다. 같이 자지 못하겠다는 나를 위해서 따로 자는것을 이해해줬고

스드메나 결혼식 스냅같은 결혼준비를 위한 예산도 예전에 비해 전혀 터치를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상담만 가면 가격이 제일 중요하다고 대뜸 말하던 사람이, 많이 참는게 보였다.

다이아를 원하는 나를 위해 다이아도 흔쾌히 선물해주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확신이 생긴 순간을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아마 다이아를 받은 순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단순이 다이아라는 물질 때문이 아니다. 평소에 100만원 1000만원 정도는 자신을 위해서 흔쾌히 쓰는 사람이 사준 것이었으면 마치 연애중 받은 수많은 선물중 하나라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사람에게 돈이라는건 굉장히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정말 돈을 안쓰는 사람이었다. 내가 본 그 누구보다, 누구나 인정하는 짠돌이라고 불리는 우리 아빠보다 돈을 안쓰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렇게 고가의 물건은 태어나서 한번도 사본적이 없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돈으로 그런 사치품을 살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나를 위해 다이아를 사준다는 결정을 했을때, 그것을 선물해 줬을때, 그것은 그에게 있어 정말 특별한 순간이었을 것이며, 나에게 있어서도 이 사람에 대한 마음의 확신을 갖게 한 순간이었다.




네번째 손가락에 앉은 영롱하고 반짝이는 그 작고 아름다운 보석을 바라보면 세상 모든 걱정근심이 사라지는것만 같아서 집에 있을때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이것만 끼고 있으면 마치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결혼에 한발짝 더 다가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 드디어, 나도 주류가 될수 있구나, 라는 안도감에 인생의 모든 과업을 다 끝낸 것만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마치 다이아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다 괜찮다고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진행하라고.. 너가 그렇게 원하고 바라던게 이거 아니었냐고..

그 빛에 눈이 먼 나는 또 그렇게 삼개월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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