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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eah Jan 15. 2023

결혼 두달전 파혼했습니다_3

뚜껑 열어보면 안끓는 찌개 없더라

몸이 아프고 자다가 깨서 우는 날이 잦아졌다. 사소한 것에도 자꾸 화가나고, 깜깜한 터널 속을 마치 나 홀로 지나가는 것 같았다.

혼자 있으면 외로웠는데, 함께 있으니 외롭고 괴로웠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것 같은데,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가끔 엄마가 결혼 진행상황이나 그의 이야기를 물어오면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화를 내고 있었다.


인터넷에 매일같이 ‘메리지 블루, 결혼전 우울증, 결혼전 확신’ 따위를 검색하며 뭇 사람들의 경험이 담긴 글을 읽고 스스로를 위안삼았다.

다른 사람들도 결혼전에 우울감을 겪었다가 결국 결혼해서 잘 산다는 글을 보면, ‘그래 나도 단순히 지나가는 가벼운 메리지 블루일거야’ 하면서.


하루는 친한 친구에게 내 심정을 털어놨다. 사실은 이 오빠의 이러이러한 면이 걱정되고, 특히나 이 오빠의 특이한 집안사정과 그 사이에서 중재를 못하고 힘들어하면서 끌려다니기만 하는 오빠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친구는 자신도 결혼하기 전에 남편에 대한 의심과 걱정이 많아서 혼자서 속을 많이 끓였다고 한다. 특히, 친구도 홀시어머니가 결혼전에 하는 태도나 언행때문에 남편이랑 종종 싸우곤 했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조금만 참으라고 몇개월만 지나서 식이 끝나면 순식간에 가라앉는다고 했다.


뚜껑 열어보면 안끓는 찌개 없더라


내 친구도, 그리고 내 친구의 친구도 수많은 사례들의 이야기를 말해주면서, 결혼하고 아무문제 없는 가정은 하나도 없다면서, 네가 겪고 있는 감정이 정상적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말에 힘을 얻은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결혼준비를 계속했다.




어느날 그가 술자리에 갔는데 스튜디오 일정을 픽스해야 할 일이 있었다. 카톡을 안보길래 자연스레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디 나가면 갤럭시워치를 분신처럼 차고 있으면서 전화를 받지 않는 그에게 너무 화났다. 그가 딱히 딴짓을 한다거나 하는 의심은 없었지만, 결혼 준비를 나 혼자만 애끓이며 하는 이 상황과, 아무리 술을 마셔도 그렇지 여자친구의 전화를 받지 않는 그의 무심함에 화가 났다.


나는 상대방이 잦은 술자리가 있거나, 술자리에서 전화를 받지 않거나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문자나 카톡 정도는 몇시간에 한번씩 할 수 있다고 충분히 생각이 들지만, 전화는 완전 다른 문제였다. 내가 전화를 먼저 하는 상황은 정말 다급한 상황이 아니면 아니었기에, 술을 마시느라 전화를 받지 않는건 나에겐 큰 문제였다.

이 문제는 어쩌면 내 고질병일 수 도 있는데, 나는 어렸을때 아빠의 멀쩡한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월화수목금토일, 매일같이 술에 취해서 새벽 늦게 들어온 아빠는 어느날은 가족들에게 패악질을 부리고, 어떤 날엔 꼬장을 부리고, 어떤날엔 엄마랑 싸우고, 어떤날엔 조용히 잠을 잤다.

연락이 안되는 아빠와- 언젠가부터 연락하기를 포기한 것 같긴 하지만-, 항상 집에서 혼자 모든집안일과 아이들 육아를 도맡아 하던 엄마와, 그리고 오늘은 무슨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맘졸이며 잠을 청하는 나. 그것이 나의 유년기 그 자체였다.


40분만에 다시 연락이 온 그에게 크게 화를 냈다.

분명 싫다고 말했는데, 어렸을적 매일밤 경험했던 끔찍한 감정이 떠오르며 그가 연락이 안오는 40분 내내 불안감이 극도로 치달았기 때문이었다. 내 감정과 트라우마를 못 알아주는 상대방이 너무 서운했다.


“오빠, 내가 술자리를 가지 말라고 한적 있어? 내가 술자리에서 나한테 연락 잘하라고 한번이라도 말하거나 집착한적 있어? 난 항상 오빠한테 자유를 줬고 이해했어. 근데 전화는 전혀 다른문제 아니야? 내가 급한일이 있어서 전화한건데 시계까지 차고 있으면서 왜 전화안받아?”


“시계 차고있었는데도 너 전화온지 몰랐어. 그리고 너 전화한지 40분밖에 안지났고, 내가 그거 보자마자 너한테 전화해서 무슨일이냐고 물어봤고, 너가 그렇게 급하면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전화를 다시 하든가, 왜 한번 전화한거 가지고 이렇게 화내?”


“아니 시계를 차고 있는데 왜 그걸 몰라? 그리고 그냥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술자리에서 전화 잘 받겠다고 하면 끝날문제 아니야? 왜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어?”


“너가 너무 이런걸로 화를 내잖아, 그리고 난 그런 지키지 못할 다짐은 너한테 할 수 없어”


할퀴고 비난하는 말들을 내뱉으며 싸움을 지속했다. 그리고 그 싸움을 시발점으로 우리는 서로 쌓여온 것이 펑 하고 터져버린 것 같았다.




서로가 서로를 견딜수가 없었다. 애써 화해를 했지만 감정의 응어리가 서로의 마음속에 너무 크게 자리하고 있어 함께 있을때 싸우지 않으려 조심하려고 할 수록 그 긴장이 쌓여서 더욱 예민해졌다.

결혼 날짜는 점점 다가왔지만, 우리의 거리는 하루가 다르게 멀어져가고만 있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단 하나도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싸울때 화내는 것이 너무 싫으며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상대방이 화를 내면 그걸 견딜수가 없어서 자신도 미친듯 화를 내게 되고, 그런 모습이 싫을뿐 아니라 일상생활이 힘들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는 내가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한번이라도 따뜻하게 마음을 어루만져 주거나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준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헤어지자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는데 마치 본인이 선택을 해서 책임을 지거나 후회하기가 무서우니까, 나에게 선택을 전가시키고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화를 많이 내지 않았다. 나는 단 하루 그가 술자리에서 연락이 되지 않았을때 화냈을 뿐이다. 그걸 가지고 ‘매일 화낸다’며 나를 비판하고 몰아가는 그가 너무 싫었다.

본인도 자기 분에 못이겨서 나에게 화를 낸 적이 많았으면서..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은채 강요하고 고압적인 자세로 싸우는 상대방이 너무 힘들었다.

나도 고쳐달라고 할 게 많았지만 하나도 말하지 않았었기에 억울했다. 나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받고 싶었고 내가 어떤 사람이든 내 자체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원했다.




월요일 아침, 눈을 떴는데 더이상 내 인생에 그가 필요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로 식음을 전폐해서 피골이 상접하게 말라가고, 하루종일 우울하고 슬픈데 해결할 방법조차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짐을 떠앉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스스로에게 미안해 질 때 나는 그의 손을 놓고 나를 선택했다.


나도 그도, 우리는 서로를 서로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해 줄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고, 우리같은 약한 사람들은 한없이 강하고 포용력있는 사람을 만나야 했다.


잡을때는 참 쉬웠는데 놓으려니 오랜 기간의 고민과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이 필요했다.


이별을 하다 헤어지면 서로 진심이 담긴 작별의 말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 하지만 파혼은 달랐다. 이별 후에 정리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다.


웨딩홀과 스드메는 두달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보증금 외에 추가 위약금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결혼 마켓의 대부분은 선금 환불이 되지 않는다.

내가 결제했던 신혼여행 비행기도 인당 30 만원씩이나 공제를 하고 환불이 된다고 한다.

헤어짐 만큼이나 속이 쓰렸다. 헤어지고 니가 얼마 내가 얼마 냈냐 라는 돈얘기라니, 정말 알수 없는 일들이 나에게 벌어지고 있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이 무겁게 다가왔다. 과연 이 결정이 몇년 후에 바라봤을때 가슴 쓸어내릴 세상에서 가장 잘한일 중 하나가 되어 있을지, 아니면 모진 후회로 남을지..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결정을 끝까지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지, 막막하고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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