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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eah Jan 16. 2023

결혼 두달전 파혼했습니다_4

마음을 붙이고 싶었던 신기루들

집에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기에 아직도 나의 집엔 그의 짐이 남아있다. 정리를 했더니 큰 박스로 세개 정도가 나왔다. 그 위에 다이아박스도 올려 놓았다.

저 다이아는 재매입되고 재가공되어, 다른 어떤 남자의 손을 거쳐 다른 여자의 네번째 손가락으로 가겠지.

문득 그 사람보다 저 다이아가 보고 싶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예뻤는데..


몇일 전까지 평생 내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가, 이제는 같은 하늘 아래 있어도 생사도 알수 없어질 정도로 멀어진 현재의 간극이 너무 생소했다.

불타오르진 않더라도 그냥 그렇게 수수하고 평온하게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손을 잡고 밤 산책을 하며, 서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같은 것에 웃고, 같은 것에 고민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가끔은 서로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며, 서로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아래 그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또한번의 실패. 입시도, 취업도 인생의 단계에서 내 스스로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것들에서는 항상 우등생이었던 내가, 남자관계에서는 또 한번의 실패를 마주했다.

나름의 노력이 꽉꽉 채워진 연애들, 한때는 탐스럽게 만개해서 서로 흥분과 환희를 공유했던 각각의 관계들이, 결국 가슴속에 시뻘건 상처만 남기고 하나씩 떠나갔다.

마음을 붙이고 싶었던 신기루들. 허무하고 덧없어서 너무 서러웠다.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안도감이 사라지자 급격하게 공허함이 찾아왔고, 어제밤부터 새벽내내 앓았다.

급성 인후두염이었다. 후두인지 기관지인지 목이 너무 부어서 숨쉬기도 힘들고 침을 삼키기도 어려웠다. 열은 펄펄 나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은 없고. 병원에 가니 의사선생님이 깜짝 놀랄정도로 목부터 전체가 부어있다고 했다.

주사도 맞았는데 평소에 그렇게 무서워하고 아파하던 엉덩이 근육주사의 느낌이 단 하나도 나지 않았다.


깜깜한 세상에 나혼자 떨어진 느낌이었다. 아득한 심연속 오롯히 나 혼자 존재하고 살아내야만 하는 느낌. 누군가가 필요해서 눈물이 났다.

앞으로 이런 과정을 몇번을 더 거쳐야 다시 예전의 내가 될 수 있을까?



엄마에게 처음 헤어졌다는 얘기를 꺼냈을때, 엄마는 “넌 결혼이 장난이니?”라고 했다.

내가 왜 이사람이랑 헤어질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엄마는 “아유 그래 그냥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라, 혼자 살아”라며 그 특유의 단정 짓는 말투로 본인의 서운하고 씁쓸한 감정을 쏟아냈다.


결혼이 장난이니 라는 문장을 파혼을 알리면서 회사 사람 한명에게 들었을때도 가슴팍이 서늘해졌었는데, 엄마한테 들으니 꽤 상처였다.

난 결혼이 장난이 아니라서, 정말 진지하게 내 인생을 생각하기에 내린 결정이었는데, 다른사람이 보기에는 단순히 소꿉놀이하듯 결혼준비를 하다가 지루해지고 심심해지니 엎어버렸다고 생각이 드는걸까.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만, 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는 사람이고, 아마 죽을때까지 모를것이다.

나는 엄마한테 “괜찮아, 엄마는 걔보다 내 딸이 더 소중해. 내 딸이 불행하다면 나는 반대야, 결혼은 꼭 해야하는게 아니잖아 행복해지려고 하는거지” 라는 말을 듣고싶었던 것 같다. 물론 엄마의 속상함을 십분 이해하지만, 당사자인 내 심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테니까.

이럴때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여유와 온기가 있는 쪽에서, 없는 쪽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엄마는 항상 걱정이 많고 내 인생에 대해서 도 넘고 과장된 우려를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의 상황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재수를 할때 원하는 한과목에서 유독 원하는 점수가 안나왔는데, 6월 모의고사에서 또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아 무기력한 절망감에 휩싸여 엄마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어리광부리고 싶은 마음 반, 위로받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점수가 잘 안나왔다고 말하자 엄마는 그걸 어떻하면 좋냐, 왜이렇게 점수가 안나오냐부터 시작해 본인의 걱정과 근심을 한껏 나에게 털어놓더니 결국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니?”라며 반문했다. 말문이 막혀서 전화를 끊었다.

괜찮아. 열심히 하고있으니까 괜찮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아. 라는 조금은 내 마음을 달래주는 말이 듣고 싶었었던 것 같다.


내 존재 자체의 이해와, 마음에 대한 이해와, 결핍에 대한 이해와, 감정에 대한 이해를 이 세상 모두에게 바란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슬픔은 날 세상에서 내동댕이 치는 느낌이 든다.


하물며 날 낳은 사람도 이런데… 생판 모르는 남에게 이해와 공감을 바라는 것이 어쩌면 너무 큰 욕심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서로 너무 많은 것을 바래온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인간은 애초에 완전한 이해와 공감을 받을 수가 없이 고독한 존재인데, 그것을 망각하고 내 외로움을 상대방으로부터 충족시키고자 과한 욕심을 부려서 이렇게 탈이 난게 아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파혼후 날 지탱하는데 도움이 됐던 것은, 정신과약이다.

원래도 가끔 정신과에 가서 우울증약이나 신경안정제를 타먹긴 했었는데, 새로 바꾼 정신과에서는 내 뇌파 측정 검사를 기반으로 나오지 않는 호르몬의 불균형을 맞춰주는 약을 처방해줬다.


아빌리파이와 인데놀.

평소에 짙은 우울성향과, 갑작스러운 극단적인 생각들, 그리고 날 괴롭게 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생각들을 조금씩 차단해 주는데 효과가 좋았다고 느꼈다.

이 약들이 무거운 내 인생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어 줬으면. 그를 더 빨리 잊게 해줬으면..


사람으로 상처받은 마음조차 약으로 치유받아야 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많은 사람들과 헤어져봤다. 다들 사귈땐 영원을 꿈꾸고 평생을 말하다가, 결국 모든 약속이 신기루가 되어 흩어지고, 휑한 흔적들만 남긴채 사라져버렸구나.


이번에 유독 심했다. 결혼 준비를 하고 집에서 같이 지내는 경험을 난생 처음 해보면서 ‘마지막’ 이라든가 ‘평생’ 이라는 단어들을 당연하게 여겼고 거리낌없이 서로 얘기했기에 이별이라는 것을 소화시키는데 어쩌면 더 시간이 걸리는 걸수도..


맞지 않고, 평생 서로를 견디며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 헤어진 우리지만 함께했던 수많은 시간들과 잊어야 하는 추억들이 내 앞에 산더미 처럼 쌓여있어 무기력해진다.


거참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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