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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eah Jan 29. 2023

결혼 두달전 파혼했습니다_7

짐을 가져가고 그는 사라지고 모든것이 마무리가 되었다

아직도 짐을 가지고 가지 않는 그가 야속하기만 하다.

본인은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커다란 세 박스가 이삿짐마냥 집안에 놓여있고 그것을 오며가며 바라보는 내 입장에서는 괜히 불필요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다가도 또 저것들이 아직 자리하고 있기에 내가 아직도 결혼을 완전히 놓치지는 않았다는 희망에(위약금도 다 냈으면서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덜 힘들수 있는걸까 싶어 짐을 가져간다는 연락이 안왔으면 하는 양가적 감정도 든다.


혹시라도 이걸 미끼로 다시 한번 붙일 수 있지는 않을까.

혹시 서로 못이기는 척 다시 노력해서 결혼이라는 인생의 숙제를 함께 마칠 수 있지 않을까.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불문율, 그 견고한 원칙 속에서 낙오되지 않고 충실히 살아가는 모범 시민이 될수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아직 조금은 남아있었다




연락이 왔다

“이번 토요일 12 시에 짐 뺄게”

“불편하면 집 비워줄게”

“그러면 더 좋고 맘대로 해”


라고 대화가 마무리가 되었다. 괜히 다시 짐을 싸는척 하면서 만지작 거렸다.

‘더 좋다’는 말이 괜히 아팠다. 어떤 말을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마지막으로 얼굴 한번 봐도 괜찮지 않을까 했었다.

지극히 이성적이고 현실적이었던 그는 감성적인 의미‘만’ 있는 행동이나 언행은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시 만나지 않을 사이에 얼굴을 본다는 사실은 그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는 일일 것이다.


일부러 집을 비워줬다. 밤 늦게 들어올 요량이었다.

밖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짐은 잘 가져갔을까, 차도 없는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 그 많은 짐을 뺀걸까, 혹시라도 같이 살던 이 공간에 다시 들어오면 다시 옛날 생각이 나진 않을까, 어떤 마음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더니 하루종일 마음이 무거운 돌로 짓누르는 것 마냥 답답했다.


영하16도의 미친듯한 추위가 살을 엣다. 몸을 한껏 웅크리니 마음도 한껏 쪼그라 들었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같이 있을때는 집에 가면 언제나 그가 있었는데..컴컴한 집에 그의 흔적이 싸그리 사라져 있는 모습을 마주하기가 무서웠다. 인생의 실패를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느낌일 것이다.


혹시 또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너져서 울어버리면 어떡하지, 지금도 마치 누군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주저 앉아 엉엉 울어버릴것만 같은데.

현실을 직접 마주하기가 겁이 나서 집에 들어가는 시간을 조금씩 미뤘다.


일요일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온 집. 몇개의 박스와 매트리스 등 그동안 함께 살기 꽤 불편했던 그의 많은 짐들이 다 없어진 허전한 집을 보았다.

짐이 놓여있던 자리가 덩그러니 비어있다. 거실 탁자 위에 같이 맞췄던 웨딩밴드도 올려져 있었다.


끝이구나.

진짜 파혼했다. 아니 진짜 파혼이 마무리 되었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결혼은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상대방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인생의 무거운 고민보다도 서로가 더 무겁고 힘들었었나보다.




아무도 없는 고요와 적막이 숨이 막힌다. 집에는 아무런 생활반응이 없고, 내가 애써 TV를 틀거나 하지 않으면, 내 집은 24시간 내내 고요하다.

20살때부터 혼자 살았지만, 이렇게 나를 집어삼킬듯한 고요함은 아직까지도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 아무에게도 오지않는 연락, 내가 이 집에서 목을 메고 죽어버려도 세상은 아무일 없는 듯 잘 돌아갈테고, 나는 몇일 뒤에 시신조차 다 부패되어서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을때 그제서야 경찰이 찾아내겠지.


인간의 외로움의 끝은 어디일까. 어느정도의 외로움을 견딜 수 있으며, 어느정도까지 인간을 잠식할 수 있을까. 함께 있을때도 고통스러웠는데, 혼자가 되어도 못지 않게 힘들다.




심심하거나 우울해서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유투브나 인터넷에 ’파혼‘ 이라고 치고, 나랑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을 읽고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 며칠전 파혼을 하고 짐을 빼면서도 카메라로 영상을 찍어 씩씩하게 유튜브를 하며 그것 또한 하나의 컨텐츠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블라인드에 파혼이라고 치면 하루에도 몇개씩 파혼을 고민하거나, 아니면 실제로 한 사람들의 글이 올라온다. 나의 브런치도 ’결혼 전 파혼’ 등의 관련 키워드로 검색해서 들어온 사람들의 비중이 꽤 된다.


내 주변엔 없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아픔을 겪고 있음을 알게되는 순간 묘하게 위로가 된다. 참 신기하다. 결혼을 하고 싶은 이유와 동일하지만, ‘평범’ 하게 사는게 제일 가치인 나에게는 어쩌면 나도 ’특이‘ 한게 아니라 ’보편적‘ 이고 ‘평범함’ 감정과 경험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중요한가 보다.


이 글을 혹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누군가가 본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같이 잘 이겨내 보자고, 나만 이 세상에서 이 아픔을 겪고 있는게 아니고 나만 이상한게 아니니, 우리 함께 보란듯 잘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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