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asyeah Jan 25. 2023

결혼 두달전 파혼했습니다_6

아빠를 닮은 남자들

스튜디오 촬영 앨범과 액자가 완료되었다고 메일이 왔다.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들어가서 사진을 전부 구경했다. 3시간 찍는데 120만원짜리 사진들이어서 그런지, 군소리 안나오게 보정들은 기가막혔다.

당장 내 얼굴만이라도 잘라서 쓰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느라, 그리고 잠시동안 하얀 웨딩드레스와 까만 턱시도를 입고 있는 두 사람의 실루엣에 취해 멍하니 바라보았다.

진짜 하고싶었던 결혼. 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냥 남들 다 하니까 너무나도 찍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나의 이 모습.


환하게 웃고 있는 나와는 달리 그의 표정과 눈빛에는 피로감이 역력했다.


그는 항상 결혼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아마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만났어도 그랬을것이다.

결혼 = 행복, 결혼하는 것 =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이라는 공식이 마음속에 깊게 박힌 그는 조금이라도 우리가 갈등이 있거나 내가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고쳐주지 않으면 바로 이 길을 통해 행복해 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 암시를 시작했다.

그리고 행복해야 하는 그 결혼과정에서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나를 마치 잘못된 퍼즐조각 마냥 배제하기 시작했다.


그는 행복한 가정을 가지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물론 나의 가정환경도 편안이나 화목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지만, 그의 경우에는 전혀 다른 수준의 이야기였다. 그가 남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만한 어린시절 경험 이야기를 덤덤하게 할때면, 대체 얼마나 상처를 받아서 마음을 닫혀야 저런 이야기를 눈물없이 메마른 얼굴로, 건조한 목소리로 덤덤하게 할 수 있는것일까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결혼을 해서 안정감을 찾고 싶으면서도, 어린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나 자기방어가 매우 강력했던 것 같다.


그런 모든것을 나는 옆에서 느낄수 있었고, 사진을 찍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단 하나도 사진에 대해서 신경도 쓰지 않고, 준비도 하지 않는 그는 도살장 끌려가는 소 마냥 질질 나를 따라와서 억지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촬영이 끝나고 내 차를 타고 턱시도를 반납하러 갈때도, 그리고 밥을 먹을때도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매달렸기 때문에, 상대방은 다른마음인데 어쩔수 없이 끌려가듯 결혼을 해주는 느낌이었다. 잔뜩 움켜쥔 그의 바짓가랑이를 나만 놓으면 우리 모두가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불행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단호하게 메일 답장을 할 수 있었다.

“결혼을 하지 않게 되었으니 데이터 파기 부탁드립니다”


인터넷에서 언뜻 보기로는 스튜디오 사진을 찾아가지 않는 커플이 3커플중 1커플이라고 하는데,

정말 맞는말일까? 그렇다면 이 사람들에게 저런 답장은 굉장히 평범한 일일까 아니면 정말 놀랄만큼 특이한 일일까.





이 사람을 만나면서 종종 연락이 왔던 구소개팅남이 또 내 바뀐 프로필 사진을 보고 연락이 왔다.

sns나 프로필사진에 결혼을 티 내지는 않았지만, 뭔가 색깔이 없어진 내 사진를 보고 아무래도 현 남친과 사이가 좋지 않음을 눈치를 채서 연락을 한 듯 했다.


토요일 저녁에 밥을 먹자길래 나갈까 말까 수십번 고민하다 그를 만나러 나갔다. 오랜만에 만나본 구소개팅남은 그와는 180도 반대인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그를 만들고 그와 모든것이 정반대인 사람을 하나 창조하라면 바로 이 소개팅남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생일이나 기념일에 전혀 생각이 없는 그와는 달리 이남자는 그런건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이라고 했다.

데이트 할때 아무 계획도 없이 나오는 그와는 달리 이남자는 항상 마음속에 먹고싶은 음식, 가고싶은 가게가 있었다.

굉장히 이성적이고 현실만을 차갑게 말하는 그와는 달리 이남자는 말수도 적고 말도 섬세하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무신사에서 세일에 또 쿠폰을 먹인 2~3만원짜리도 티도 몇번을 고민하다가 사는 그와는 달리 이번 겨울에는 눈여겨보던 타임코트 두개를 살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6만원짜리 고든램지 버거를 비싸다고 같이 안가줬던 그와는 달리 이남자는 어딜가든 풍족하게 시켜서 매번 외식 한끼에 그정도를 쓰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투자실패에 여유자금이 하나도 없었던 그와는 달리 이남자는 투자에 크게 성공을 한 사람이어서 여유가 넘쳤다.


기분이 이상했다.

오히려 내가 원하는 스타일에 더 가까운 남자임에 분명한데, 왠지 모르게 끌리지가 않았다.


좋지 않은 아빠를 둔 딸들에게 하는 조언을 어딘가에서 본적이 있다. 아빠같은 남자를 만나면 관성처럼 편하지만, 결국 인생에는 쥐약이라고. 결국 네가 살고 싶은 인생을 그리고, 그 인생을 쟁취하기 위하여 이성적인 선택을 - 즉 아빠와 닮지 않은 남자를 선택을- 해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사랑은 이성의 영역이 아니기에 난 매번 실패만 했다.

전남친도 그렇고 지금까지 만난 남자들이 모두 아빠와 매우 닮아있었다.

아빠는 강하고, 남자답고, 말도 거칠게하고, 웃기고, 술 좋아하고, 다정함과 따듯함과는 거리가 멀고, 가히 이기적이었다.

본능적으로 거칠고 자극적이고 재미있고, 강인한 남자들에게 끌렸고, 결과적으로 옆에 있을때 안정되고 편안한 남자를 선택하면 그게 바로 아빠의 특성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남자는 아빠를 닮지 않았다. 머리로는 옳다는 것을 너무 잘 알겠는데, 마음이, 내 본능이 거부한다.

감정은 없애는 것보다 억지로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




그의 목표이자 소망은 결혼을 해서 ‘행복’하고 싶은 것이었다. 특히 그 행복 이라는 것에 집착이 굉장히 강했는데, 그의 인생에서 결혼은 무조건적이고 반드시 행복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상대방이 자신을 힘들게 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끼게 하면 자신이 생각한 결혼이 아니기에 그 길을 가는 것을 언제든 멈출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해돋이를 볼때도 그는 행복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어렸을때 많이 외롭고 불행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결혼과 행복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가진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서 끈질기게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는 결혼이 행복의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두개를 동일선상에 놓고 필요, 충분 조건으로 생각하는 순간 인간은 이루어지지 않는 기대를 쫒는 대가로 불행해진다. 행복은 혼자 있으나 함께 있으나 언제나 가끔씩 찾아오는 것이었고, 결혼을 하면 한 행복이 다른 행복으로 치환될 뿐이지 이것이 삶 전체의 행복 지수를 늘리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님의 경우를 봐도 싱글에서의 효용이 결혼을 함으로써 다른 효용으로 치환 됐을 뿐 그 효용의 크기는 오히려 싱글쪽이 컸을 수도 있을것이다. 우리는 둘다 아프고 불행했지만, 함께 이뤄갈 결혼이라는 것에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을 붙들고 사는 그와, 희망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나. 불쌍한 반쪽짜리 영혼 둘이 만난 결과는 이렇게 비극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 두달전 파혼했습니다_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