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도저 소녀
사춘기는 대단하다. 중2병은 제일 무서운 병 중의 하나다. 무서울 것이 없고 두려울 것이 없다. 중학생이 되면서 사춘기를 겪을 때 쯤 나는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내 몸집이 엄마와 비슷하게 커졌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나를 지독히도 사랑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난 늘 그들 사이에 섰다. 처음엔 작고 떨리던 양팔이 어느새 두려움 모른체 막아서고 그 다음엔 소리쳤다.
"나한테 사과해!"
부부의 싸움이 동의 없이 내 앞에서 벌어진 것에 대해 난 당당히 사과를 요구 했다. 그리고 화해를 하거든 나한테 고백 하라 다그쳤다. 나는 싸울 땐 내 앞에서 거침없이 싸우 던 부모가 왜 사과와 화해는 내 앞에서 하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걸 나를 무시 하는거라 생각 했다.
"무슨 소리 하는거야. 넌 또!"
부모 입장에서 나의 행동은 말 그대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이었다. 어른의 일에 새파랗게 어린 것이 눈을 부라리고 같이 덤벼드니 말이다. 하지만 나의 부모는 이내 곧 나한테 수그러 들었다. 이 모습을 보고 나는 확신 했다. 나의 부모는 나를 지독히도 사랑한다. 나를 차마 어쩌지 못하는 구나. 막아서기에만 바빴 던 소녀에게 다른 무기가 생겼다. 사랑 말이다.
엄마는 아빠의 사랑 때문에 싸웠다. 넘겨들은 소리에 따르면 아빠는 그날 그 가족여행에서 만난 여자를 사랑했다. 그게 부부싸움의 원인 이었고, 엄마는 늘 슬펐다. 어느날은 분노에 차 아침드라마 처럼 머리를 쥐어 뜯어 놓고 왔다고 고백 하기도 했지만, 이는 모두 누군가와 하는 전화통화를 엿 들은 것일 뿐 직접 보고 듣진 못했다.
하지만 어느 날, 엄마의 말이 모두 사실 이었을 수도 있겠다.. 짐작하게 된 일이 있다. 이날도 역시 그날처럼 하교 후 알게 된 사실이다. 이번엔 가지고 있는 키로 문을 열고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섰다. 소란스런 통화 소리가 들린다. 조금은 격앙 된, 때론 후련 해 보이기도 하는 그 소리! 엄마다! 회사에 가 있을 줄 알았 던 엄마가 누군가와 열띄게 통화를 하고 있었다.
"엉, 그 년 누구랑 바람 났는지 알아? 보일러 고치러 온 수리공이래! 참 나! 어이가 없어서. 본인도 쪽팔리겠지. 어휴 내가 속 끓인거 생각 하면, 지금도 쫒아가서 아작내고 싶어!"
이번엔 또 누구인가! 숨을 죽이고 발걸음도 죽였다.
"어떻게 알긴! 그 여자 남편이 전화 왔더라고. 자기가 말 할 곳이 없었대. 애 버리고 도망 간 아내 계속 설득해서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애썼는데, 이번에 지네 집 보일러 고치러 온 아저씨랑 바람나서 집 나간거 보고 기가 차서 포기 했대. 이 여잔 아니라고, 나도 듣는데 어이가 없더라"
단번에 알아 챘다. 아빠의 돌침대가 새 주인을 만난 모양이다. 그리고 엄만 조금 통쾌함도 느끼는 것 같았다.
"나 왔어"
뒤늦게서야 내가 집에 들어왔다는 기척을 냈다. 화들짝 놀란 엄마는 서둘러 전화를 마쳤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지만, 전화는 내가 듣는다.
아빠는 자연스럽게 성실한 가장이 되셨다. 설립과 망함을 반복하던 사업도 접고 늦었지만 번듯한 회사에 취직도 하셨다. 하지만 내 마음은 아빠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용서 하지 못했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일이 아니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늘 마음 한켠에 '사과 못 받았어!' 라는 불만이 쌓여 있었다. 나는 나의 부모가 나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 했다.
내가 그들의 불쾌한 사실을 알게 된 것. 그리고 전쟁같은 싸움을 기억하게 한 것. 사랑이 지옥 같은 것 임을 너무 일찍 알게 한 것. 그것들에 대해 나의 부모는 나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해야 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어느 누구도 우리의 이 지난 일에 대해 다시 언급한 사람은 없었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 던 것 처럼 서로를 대했다. 당시 나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고 부모가 부모 답지 못하다고 생각 했다. 사랑이 더럽고 너무 치사하게 느껴져 끔찍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게 싫었다.
싫어 하는 짓만 골라 했다.마침 사춘기인 나에겐 '싫어하는 짓만 골라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탈을 일 삼는 친구들 무리에 어거지로 어울리면서 길거리를 배회 해 보았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담배를 저마다 한개비씩 꺼내며 돌렸다.
"야 너도 하나 펴"
나는 담배를 필 줄 모른다. 손에 쥐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 무리에 어울리려면, 멋들어지게 들어 한대 쭉 빨아야 한다. 하지만 그때 하필! 왜?!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난 엄마 아빠가 지독히도 사랑하는 딸이야'
사랑이 싫었다는 소녀는 결국 사랑 앞에 돌아왔다.
"꺄하하하 쟤 저럴 줄 알았어"
대답없이 고개만 도리도리 젓는 나를 보며 한 여자애가 비웃는다. 난 그렇게 정체가 탄로 났고, 결국 그날 이후 그 무리에서 도려졌다.
어쨋든 그 날 밤, 집에 돌아와 괜시리 잠 든 엄마 옆에 누웠다. 다 큰 딸이 침대 한쪽을 차지하면 답답도 할 텐데 엄마는 한쪽 팔을 내어 자연스레 안아준다. 왜 이제 들어왔는지 뭐하다 왔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리곤 나를 좀 더 품에 꽉 안으며 이리 말씀 하셨다.
"우리 딸, 오늘 힘든 하루를 보냈나 보구나. 딸한테서 어울리지 않는 냄새가 나네. 우리 딸은 꽃향이 잘 어울리는데"
우리는 그날 밤, 이 말을 뒤로하고 서로를 꼭 안은 채 잠에 들었다. 오랜만에 깜깜한 밤이 두렵지 않았다. 폭삭한 엄마의 품은 꼭 내 몸 집 만큼 나를 안았고, 그 안은 아쉬울 것 없이 나에게 꼭 알맞았다.
그리고 한 참이 지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날 나의 머리와 발끝은 온 몸으로 담배냄새를 풍겼다. 품에 안긴 어린 딸에게서 담배 냄새를 맡은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더 꽉 안아 줬을지, 나는 아직도 감히 짐작할 수 없다.
그 날 엄마가 건넨 그 말 한 마디는 남은 내 인생의 기준이 되었다. 나는 그 이후로 어떤일이 닥쳤을 때 늘 고민 했다. 이것은 나에게 어울리는 꽃향이 될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답은 늘 쉽게 나왔다.
누구에게도 다 털어 놓지 못한 일을 글로 남기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겹겹이 쌓인 마음을 걷어내고 가장 밑바닥의 마음을 거꾸로 쏟아 부었다. 나를 회복하기로 마음 먹은 일에 누군가 상처 받지 않을까 두려움과 걱정도 함께 들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써 내려갔다. 이 시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막상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하니, 걱정 했던 것보다 마음이 풀린다. 나의 지옥 같다고 느꼈던 시간이 꼭 깜깜한 밤만 있는 건 아니더라. 우리는 어렴풋이 나마 그 속에서 사랑을 지어냈고, 그 마음으로 회복 할 수 있었음이 분명 했다.
병아리 날개 같이 뻗어난 내 양팔을 걷어 내지 않은 나의 부모가 사랑이고, 사랑이 싫다던 비뚤어진 마음을 품어 준 것도 사랑이다. 결국 나는 지독하다는 그들 곁에 다가가 다시 몸을 뉘였고, 그 속에서 다시 어둠이 그리 무섭지만은 않다는 것을 배웠다.
말로 표현 한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그들의 몸짓과 눈빛에 담긴 마음을 한번쯤 읽어 줄 수 있길 바라며, 이 글은 여기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