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큰 일을 앞두고 오랜 고민을 할 때, 우리 엄마는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고 좋은 게 좋은 거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성격이었다.
소풍으로 놀이동산이라도 가는 날이면 야간까지 꽉 채워 놀아야 만족했고, 친구와 쌍쌍바를 나눠 먹을 때도 정확히 절반이 잘려야 마음이 놓였다.
뭐든 욕심을 부렸고, 내 몫을 충분히 챙겨야만 마음이 편했다. 그게 나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나에게 엄마의 말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좋고 좋은 게 좋은 거라니. 뭐가 좋다는 건지, 누가 좋다는 건지,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애매모호한 말이 답답하기만 했다.
손해 보지 않으려는 내 기준은 연애관에도 그대로 들어맞았다.
나는 이별과 만남이 어렵지 않았다.
텅 빈 연습장을 꺼내 가운데 선을 긋고, O/X로 나눈다.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 좋은 점과 힘든 점을 가감 없이 적다 보면 어느새 답이 나왔다.
물론 수가 정답은 아니었다.
장점이 단 하나뿐이라도, 그 하나가 모든 단점을 이긴다면 그 또한 답이 될 수 있었다.
이 모든 건 결국 나만의 ‘좋고 좋은 것’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 때문일까.
내 젊은 날의 연애는, 울고 울다 잠들고 새벽에 “자니?” 문자 한 번 보내지 못한 그런 청춘이었다.
때때로 전 남친의 이름을 부르며 술에 취해 우는 절친을 보며,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왠지 부럽기도 했다.
내 이런 메마르고 옹졸한 마음은, 결국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양가의 첫 손녀였다.
내 위로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사촌 오빠들뿐이었다.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나는 그 상황을 즐겼고, 우리는 자주 모였다.
어른들은 잔치를 벌였고, 나는 사촌 오빠들 사이에 끼어들어 빠지지 않으려 애썼다.
사건은 순식간이었고, 아이는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한다.
끼어들기 바쁜 여덟 살 여자아이를, 한 사촌오빠는 약을 올리려 했던 모양이다.
오빠가 내 바지를 움켜쥐었고, 나는 하지 말라며 악을 썼다.
하지만 그 방 안에 있던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또래의 사촌오빠들은 그저 웃거나 어쩔 줄 몰라 멀뚱히 서 있었을 뿐이다.
“야! 까불지 말라고 했지!”
힘을 주어 바지를 내리는 순간, 나는 손가락이 벌게지도록 막아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모두가 웃었다.
그 순간 얼굴이 화산처럼 달아올랐고, 눈물이 뚝 떨어졌다.
닫힌 방문 너머에 부모님이 계셨지만, 두 분은 아무것도 몰랐다.
“으아앙앙앙!”
비명 같은 울음을 터뜨리며 나는 부모님에게로 달려갔다.
술잔을 기울이며 식사 중이던 가족들이 모두 놀랐다.
“오빠들이 내 팬티 벗겼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왁자지껄하던 저녁은 내 말 한마디로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른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엄마가 나를 다독이며 말했다.
“에이, 놀다가 그런 거겠지.”
“아니야!!!”
내가 악다구니를 쓸수록 부모님은 더 난처해했다.
뭔가 말하면 안 될 비밀을 외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내가 잘못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그 자리는 마무리되었고,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다.
‘좋고 좋은 게 이런 건가? 나는 하나도 안 좋은데, 그럼 이건 누가 좋은 거지?’
씩씩대며 걷던 내 두 눈엔 원망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는 그때 그렇게 놀고 싶지 않았단 말이다.
다음 날 아침, 부모님도 마음에 두셨는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오빠들 외삼촌한테 엄청 혼났대. 외삼촌 무서운 거 알지?
그러니까 이젠 오빠들이 절대 안 그럴 거야.”
“응.”
나는 대답했지만, 사실 내가 원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땐 어려서 아무 말도 못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말을 듣고 싶었다.
‘오빠들이 다음에 또 그런다 해도 우리는 네 편이야.
좋고 좋은 거 따위는 없어. 잘했다.
뒤집어엎어라. 언제든 너를 위해서라면 세상도 엎어버려라.’
그 일을 겪은 이후,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좋고 좋은 건 없어.”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내 마음대로 뒤엎었다.
친구에게도, 엄마 아빠에게도, 그리고 그 원수 같은 사촌오빠들에게도.
무서울 건 없었다.
내가 무서워하면, 그들이 좋아하는 게 싫었다.
그렇게 독기 어린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무슨 꽃이 피겠는가.
황량한 마음엔 인연이 찾아와도 오래 머물지 못했다.
싸우거나, 떠나거나. 결국 둘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친구가 없다.
떠나가는 인연에는 마음을 주지 않았다.
O/X로 나누자면, 차라리 혼자인 것이 더 편했다.
그리고 그건, 아주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가장 최근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