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도 꽃은 핀다.

by 그래

퍽퍽한 사막에도 꽃은 피듯이 막막한 내 삶에도 꽃은 핀다.


첫 단추가 잘 못 꿰어 졌다. 서울로 전학 간 첫 날 이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선생님께서 안내 해 준 자리에 들어섰다. 호기심 어린 아이들의 눈을 어색하게 마주 한 채,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

하필 그 날 수업엔 미술시간이 포함 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오늘의 그림주제를 던져주고,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

첫 등교 한 나는 당연히 미술수업과 관련 된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텅 빈 책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야! 너 아무것도 없냐?"

경기도에서 전학 온 나를 두고, 아이들은 제 멋대로 낄낄대며 수근 거렸다. 수 많은 아이들 중 나를 보며 수근대는 아이들은 몇몇 뿐이었지만, 당시 나는 모든 아이들이 나를 향해 있다고 느꼈다.


처음엔 엄마의 가르침처럼 가만히 있으려고 했다. 좋고 좋은게 좋은거라고 조금만 기다리면 선생님이 오실 테니깐 말이다. 더군다나 전학 온 첫날이지 않은가! 제법 인내심을 가지고 얌전히 기다렸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말이다. 그렇게 잠잠히 있던 나에게 돌을 던진 건 짝꿍의 말 이었다.

"시골에서 와서 거지인가봐"

속에서 뭔가 훽 하고 불이 당겨졌다. 날카롭게 치켜 뜬 눈이 옆으로 쏘아진다. 아무것도 모르고 떠들어 대는 것이 꼴사나웠다.

"뭘봐!"

"야야야야! 다 모여, 전학생이 우리 째려본다"

나 만큼 아이들도 불씨가 붙은 모양 이었다. 어느새 아이들 몇몇이 나를 둘러싸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나에게 지우개 똥을 던지기도 하였다. 이유를 알지 못 할 서러움이 밀려 올라 왔지만, 울 순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서울 촌 것들에게 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보니 옆 자리 짝꿍의 물 통이 보인다. 까만 물감을 풀어 헤쳐 놓은 검은 물. 짝꿍은 한치 앞을 모른체 그 물통을 앞에 두고 뒷자리 친구에게 계속 떠들어 댔다.

"아무것도 없는 거지가 쳐다보면 어쩔건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물통을 들어 그 애 머리 위에 부어버렸다. 고작 초등학교 3학년 뿐인 여자애는 꺅꺅 거리며 소리 지르기 바빴고, 둘러싸고 같이 떠들어 대던 친구들도 기겁을 하고 흩어졌다.

'경기도가 더 크다 이 서울 촌 것들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떠들어 싸기는'

차마 말로 하지 못 하고 속으로 뱉었다. 이내 반 친구들의 비명에 가까운 소란에 선생님이 뛰어 들어 오셨다.


"무슨 일이야!"

"선생님~!!"

물에 젖은 아이는 엎드려 울고 있었고, 몇몇 애들은 귀신이라도 본 듯 손가락을 덜덜 떨며 고자질 하기 바빴다. 아쉬울 것 없이 엎어버린 나는 그대로 교실을 빠져나와 집으로 뛰었다. 그 곳엔 아무도 내 편이 없다는 걸 직감한 뜀박질 이었다.

"너!너! 거기 안서"

선생님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멈추지 않고 집으로 계속 뛰었다. 그렇게 한달음에 달려간 집엔 엄마가 계셨다.

"무슨 일이야?"

헐떡이는 숨을 고르는 사이, 엄마가 눈이 동그래진 채로 다가와 묻는다.

"으아아앙"

그제서야 울음이 터져 나온다.


울음을 정리 하지 못 한 채, 억울함이 섞여 나온다. 내 얘기를 찬찬히 다 들으신 엄마는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학교로 돌려 보내지 않고 대신 아이들 하교 시간을 물어 보셨다.

"글쎄.. 1시쯤 끝날껄?"

집안은 고요했고, 시계의 초침 소리만 똑딱 댄다. 흐르는 시계를 흘깃 거리며, 이후에 다가 올 일들이 두려워 지기 시작했다. 아마 나는 호되게 혼이 나겠지. 나도 물론 잘 못 한게 있는건 맞기 때문이다. 근심어린 시간, 어느덧 1시이다.

"가자"

엄마는 나를 교문 앞으로 데리고 가셨다. 잠시 후 종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하나둘 쏟아져 나왔다. 엄마께 혼날 것을 각오는 했지만, 학교 앞에서 할 것은 예상 못 했다. 아무말도 없이 서 있는 엄마를 보며 나는 더욱더 확신에 찼고, 친구들에게 사과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까 너가 말한 그 친구들 얼굴 보이면 엄마한테 얘기 해. 알았지?"

"응..."

"엄마, 저기오는 저 애야"

아까 지우개똥을 날리 던 남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교실에서와는 다르게 풀이 한 껏 죽은 내 모습을 본 그 아이 역시 당황 한 듯 보였다. 내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엄마가 먼저 그 애를 불렀다.

"너 이리 와! 너 얘 알지? 오늘 전학 온 애. 내가 얘 엄마야. 한번만 더 그러면 내가 교실로찾아 갈꺼야! 알겠니?"

나에게 지우개 똥을 던진 남자애가 뒷목이 잡힌 채 대답한다.

좋고 좋은게 좋은거라 던 엄마가 나와 같이 뒤집어 엎고 있었다. 그 이후에도 엄마는 내가 지목하는 아이 한명 한명을 붙잡고 그 아이들에게 똑같이 말했다.

"내가 얘 엄마야! 한번만 더 그럼 그땐 교실로 찾아 갈꺼야!"


나는 엄마가 있었다. 그래, 이 분이 나의 엄마다! 엄마의 반복 되는 말이 내 마음에 차곡히 쌓인다. 하나씩 덧대어진 그 말은 어느새 마음에 꽉 차 오른다. 내 편이다. 나의 편이다.

오롯히 내 편이 있다는 믿음은 이내 상처를 치유 한다. 죽을것 같이 싫던 나의 교실이 두렵지 않았다. 울상이던 내가 어느새 옆에 곁에 한발짝 비슷하게 섰다. 옷자락을 움켜쥐던 손을 풀고 엄마의 손을 잡았다. 교문 앞에서 우리는 그렇게 한명한명에게 다시 제대로 인사했다.

"내가 얘 엄마고! 얘는 내 딸이야"

이 말은 나에게

"나는 얘 편이고, 얘는 내 사랑이야"로 반복 된다. 배실배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전례없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올 때, 엄마도 나도 우린 서로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엄마는 저녁상을 거하게 차리셨다. 내가 제일 좋아 하는 삼겹살 이었다.

"우리 아들, 딸 많이 먹어!"


그날, 나의 가슴에 묻혀 있던 씨앗에 싹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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