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하지 못한 이야기 Ⅱ

끝내 듣지 못한 말.

by 그래

딩동댕동 -

익숙한 종소리가 울리면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인다. 하교 시간은 늘 즐거웠다. 앞 서 그 일이 있기 전 까지는 말이다.


사실 친구들이 좀 달라진 것은 교실을 들어설 무렵부터 느꼈다. 건네는 인사가 전 같지 않았고, 친구들은 나를 빼고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소곤대고 있었다. 당시엔 이런 걸 뭐라 표현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왕따라는 걸 경험했다.


지금에 와서야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키우는 엄마가 되고 보니, 예고 없이 친구를 몰고 온 그 아이의 하루가 어떻게 마무리되었을지 상상이 간다. 엄마한테 타박을 들었겠지, 심지어 우울한 얼굴로 울며 나간 친구까지 있으니 '쟤는 대체 뭐야?' 했을 수도 있겠다. 꾸중을 들은 아이는 곰곰이 되새겨 봤겠지. 그리고 내가 이 문제의 시초라고 여겼을 것이다. 구름 같은 침대를 엉망으로 만든 얄미운 계집애. 지금에 와서야 나는 아이를 이해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당시에 나는 고작 10살이었다. 아무것도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쓰지도 않았다. 나에겐 그럴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없으면 없는 대로 그렇게 홀로 등교를 하고, 하교를 하고 그냥 그러고 말았다. 나에겐 나보다도 지켜야 할 다른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울었다. 퇴근하고 돌아오신 아빠랑 좀 다투시나 싶었는데, 이내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언성을 높이며 싸우던 부모님의 목소리가 귀신같이 잠잠해졌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소란스러움보다 더 무섭다. 방에 틀어 박혀 책상 밑에 숨어 있던 나는 문을 열고 집을 둘러보았다. 식탁 끝에 걸쳐진 엄마의 손이 보인다.

"엄마..."

엄마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여 얼굴을 마주 보니 엄마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나는 그때 엄마가 우는 걸 처음 봤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는 나랑 다툰 게 아닌데 자꾸 나한테 사과를 한다. 사과를 하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슬퍼 보여서 나라도 그 영문모를 사과를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아니야, 엄마. 괜찮아"

답을 건넴과 함께 나도 같이 눈물이 터졌다. 우리는 식탁 밑에 주저앉아 그렇게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리고 아빠는 며칠이 지나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학교는 여전히 고요했고, 집도 잠잠했다. 부모님이 다투는 소리를 매번 듣는 것보단, 차라리 아빠가 집에 들어오시지 않는 게 더 좋았다. 엄마가 안전하니깐!

부모님의 싸움은 처음은 대화로 시작해 고성으로 이어지더니 잦은 싸움은 어느새 불 같이 커져 무쇠 같은 아빠의 팔이 엄마를 내리치기도 했다. 내가 흔들 그네라며 부둥켜안고 놀던 놀이터가 순식간에 무기로 변했다.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뛰어들었다. 엄마는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었고 난 그 앞에 섰다. 아빠가 무섭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추억했던, 동화같이 즐거워했던 아빠의 팔이 엄마를 상처 주는 걸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차오르는 눈물을 기어이 참아내고 아빠한테 소리쳤다.

"그만해"

"나와!"

"싫어"

"너까지 아빠 미치게 할래?"

"그만해!!!!!!!"

눈앞의 어린 딸이 막아선 사실에 놀랐 던 걸까, 아님 본인이 이렇게 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 끔찍했던 것일까 아빠는 굉장히 괴로워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몇 년을 아빠는 이 집안에 이방인처럼 지내기 시작하였다.


우리 집의 가세가 점점 기울기 시작한 시점도 그즈음이다. 아빠의 잦은 가출과 반복되는 부부싸움. 그리고 그걸 늘 막아서는 나. 우리는 지옥불에 떨어진 쳇바퀴처럼 가혹한 벌을 받고 있었다. 누구 하나 달라진 것 없이 계속 반복하고 계속 서로를 상처 주고 있었다. 당시에 우리 가족은 모두 날카로운 칼날을 속에 박고 살았던 것 같다. 누구 하나 서로를 위로할 줄 몰랐고, 감쌀 줄 몰랐다.

너의 잘 못을 나열해 가며 서로를 긁어대기에만 바빴다. 그리고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감은 눈에선 눈물이 난다. 하루를 고되게 버틴 나에 대한 가여움인지, 차마 밖으로 꺼내지 못한 가족에 대한 미안함인지 알 길이 없다. 그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으니깐 말이다.

물에 젖은 밴드가 상처를 감쌀 수 없듯이, 눈물 젖은 마음은 아무도 위로할 수 없다. 붙였다가도 이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얼마나 까만 밤을 수 없이 지내야 이 어둠이 끝이 날까. 나는 꽤 오랫동안 어두운 밤을 무서워했다. 몇 해는 방안의 불을 켜고 자야 할 정도로 불안해하기도 했다.

나에게 밤이라는 것은 퇴근 한 아빠와 엄마가 만나는 시간이었고, 그 만남은 고성과 폭력이 꼭 뒤엉켰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어린 소녀는 자신의 몸을 방패 삼아 매번 싸움에 뛰어들었고, 부모를 상대로 맞서기 시작했다. 사랑은커녕 나에겐 그 시간은 견뎌야 할 시간이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나약해지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밤을 견딘 소녀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울어서 해결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더 독하게 굴어야만 했다. 마음속 어떤 짐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 체, 그 작은 아이가 사춘기를 지날 때까지 우리는 그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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