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입사원
벌써 아침이다.
아침마다 눈이 떠지지 않길 기도 했지만, 난 성실하게도 또 눈을 뜨고 말았다.
'휴...'
짧은 숨 한번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황금 같은 아침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준비하는 내내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있을까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다.
출근길 지하철은 정말 지옥이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무표정한 얼굴로 영혼 없는 발걸음을 옮긴다. 아차 하면 휩쓸린다.
평범한 20대 직장녀가 되고 싶은 나는 그 사이에서 늘 고군분투 중이다.
너무 튀지도 않고, 너무 뒤처지지도 않는게 내 목표이다.
인원 몇 되지 않은 벤처 회사에 취직했다.
처음 면접 보고 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 만해도 난 운을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회사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다. 친구들과 때 빼고 광 내며 놀러나 오던 곳에 일을 하러 출근하다니! 스스로가 굉장히 멋진 성인이 된 것 같이 기뻤다. 그땐 그랬다.
'가는 길에 사고 안 나나..?'
'버스야 멈춰라. 무슨 일이든 제발 나라'
버스에 앉아 있는 내내 생각했다.
회사 사무실은 두꺼운 철문으로 되어 있었다. 촌스런 동그란 손잡이를 움켜쥐고 틀어야만 문이 열렸다. 난 그 문이 열리질 않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문은 늘 잘 만 열린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말이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작은 사무실은 사실 한눈에 들어온다. 누가 오고 나가는지 너무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중 내 인사를 받아 주는 이는 별로 없다. 나는 아직 그런 존재다.
'휴'
컴퓨터 전원을 켬과 동시에 일이 시작된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마땅한 직무가 없는 나는 엑셀이라도 키고 이리저리 눈을 헤맨다.
"안녕~!"
"안녕하세요"
"넌 누구지? 처음 보는데?"
출근한 지 열흘이 되었지만, 오랜만에 출근 한 대표는 인사하는 나에게 되물었다.
"아 지난번에 면접 봤다고 말씀드린.."
"아! 너구나? 그래 넌 무슨 일 하니?"
그동안 문 앞에 앉아 문지기나 하고 있던 나에게 담당업무를 묻는다. 할 줄 아는 거라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뿐이었는데, 그걸 대표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됐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 뭐!"
쿨한 건지 나에 대한 사이즈가 나온 건지 대표님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그렇게 스치듯 끝난 인사가 오히려 다행이었다. 회사에서 나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길 바랐기 때문이다.
"자! 잠시 후 전체 회의 한번 하겠습니다. 30분 후에 모두 회의실로 모여 주세요."
대표님께서 출근하시니 회사 전체 회의도 열린다. 우선 구색을 맞추기 위해 작은 노트랑 펜을 챙겨 들었다. 저 마다 그동안 본인 업무의 실적과 이슈 사항에 대해 간략히 보고 한다. 내 순서가 다가 올 수록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뭐라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 신입?"
"네??"
준비되지 않은 자는 자신감이 없다. 할 말이 없고, 눈치가 는다.
"어.. 어 저는. 아직 입사한 지 얼마 안돼서 업무 파악 중에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뭐 하는 회사 인 줄은 알아?"
예상하지 못 한 질문이다. 뭐 하는 회사 인지 나는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회계를 공부하는 입장으로 처음 그 업무를 시작할 곳이 필요했다. 이력서에 적힐 그 한 줄 말이다.
"너는 오늘 회의에서 나온 내용이 뭐였는지 싹 파악해서 회의록 써서 메일 돌려"
"네"
얼굴이 벌게진다. 분명 옷을 입고 있음에도 발가 벗겨져 정 중앙에 내 놓인 기분이다. 내 밑천이 질문 하나에 드러나 버렸다.
'휴...'
퇴근이다. 가까스로 하루가 지났다. 골목마다 상점마다 젊은이들이 가득하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얽혀있는 그들을 보자니, 내 꼴이 더 초라하다. 분명 몇 개월 전만 해도 나 역시 그들처럼 웃고 떠들던 거리였는데, 이곳이 직장터가 되고부턴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다.
회사를 다닌 다는 장점 중의 하나 이겠다. 번화가가 지겨워졌다는 것. 그저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이 된 것! 이 같은 이유로 나는 귀가가 빨라지고 있었다.
'오빠, 나 지금 퇴근해'
하루 종일 연락 없는 연인에게 카톡을 보낸다. 하루 종일 안부가 궁금하지 않다는 것이 연인사이에 어떤 의미인지는 이미 너무 잘 안다. 하지만 마음 기댈 곳이 필요한 나는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고 모른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그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걸아가는 모든 길 내내 그에게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하. 오늘 너무하네 진짜"
난 그와 헤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