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과 바다

by 이지숲

나는 물결이다.

찰랑이며 다가가고,

하루에도 몇 번씩 결이 바뀐다.

햇살 아래선 투명하고,

어둠 속에선 깊어진다.


그는 바다다.

넓고, 고요하고, 깊다.

내가 흔들릴 때마다

그는 더 조용해지고,

내가 격해질수록

그는 더 넓어지며 잠잠해진다.


내 안의 수많은 감정이 출렁일 때,

그는 아무 말 없이

그 모든 파도를 받아낸다.

흔들리는 나를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안아준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마음껏 헤엄쳐도 괜찮아.

하지만 우리 사이 이 바다에는

서로 지켜야 할 선 하나쯤은 있어야 해.”


그가 그어준 선은

경계가 아니라 신뢰의 선이었다.

나를 가두는 줄이 아니라,

우리를 지켜주는 약속이었다.


그 선이 있기에

나는 더 자유롭고,

그를 더 믿게 되었다.


어쩌면, 이 사랑은

요란한 말보다

조용한 견딤과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날마다 찰랑이고,

그는 날마다 품어준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신뢰라는 선 위에서

물결과 바다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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