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세 살, 미운 서른몇 살

놓친 품, 남은 마음

by 이지숲

그 시절, 아이는 참 예뻤다.

세 살 아이의 말투, 걸음걸이, 웃음소리.

하루에도 열두 번은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예쁘지 않았다.

코로나로, 시댁과의 갈등으로, 남편과의 다툼으로

나는 지쳐 있었고, 마음은 늘 어딘가 붉게 피로했다.


아이는 세 살이었다.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품을 찾고, 사랑을 말하는 나이.

나는 서른몇 살이었다.

사랑을 줄 여유도, 웃으며 안아줄 온기도

부족했던, 너무 복잡한 어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이가 그토록 예뻤던 시절이

왜 내 기억엔 그렇게 흐릿할까.

사진은 남아 있는데, 마음이 남아 있질 않다.


그 시절, 더 많이 안아주었어야 했다.

더 많이 웃어주었어야 했다.

물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몸의 최선이었지,

마음의 최선은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아이의 한마디에 마음이 찢어진다.

“엄마가 나를 혼내서 마음이 쓰렸어.”

아이의 표현은,

그 시절 나의 미안함을 꺼내어 보여준다.


그날 이후 우리는 ‘충전시간’을 만들었다.

서운한 감정을 말하지 못해 울먹일 땐

말보다 포옹을 먼저 한다.

우리는 그렇게 감정을 채우며,

다시, 다시 사랑을 연습한다.


세 살의 아이는 이제 자란다.

그리고 나도, 그때보다 조금은 자랐다.

예쁜 세 살을 지나,

서른몇 살의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하지만 그 시절의 미안함은,

아마도 평생 나를 따라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을 안고,

더 다정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게

내가 그때의 나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이자,

조용한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