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선택한 장미, 천경자
이토록 위대한 화가를 상업적인 풍습과 함께 소개한다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지난 11월 11일은 천경자 화백의 탄생일이었습니다. 꽃과 여인의 화가이자 몽환적인 세계관을 본인만의 색감과 화풍으로 담아내었던 그녀는 거침없는 작품세계와 화가이자 수필가, 교육자로서의 다양한 활동과 영향력, 여인으로서는 불행했던 그녀의 인생, 그녀의 노년을 괴롭혔고 아직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미인도의 위작여부 등 근대 한국 미술계에서 다양한 이슈들로 가장 화자되고 있는 예술가 입니다.
천경자 화백의 작품들이나 미인도와 관련된 논쟁은 이미 많은 학술가 및 전문가들에 의해 평가되고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불행하고 고독했던 그녀의 인생을 작품으로 담아낸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녀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슬픔마저 예술로 승화시킨 이 어쩔수 없는 천재의 감정선을 조금이나마 공유하며 그녀의 탄생을 축복하고자 합니다.
그녀의 고향 전라남도 고흥은 그녀의 타고난 천재성을 본인 스스로 가장 먼저 인지할 수 있는 완벽한 색채를 제공하는 곳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둘러쌓인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며 그 시대 여느 소녀와는 확연히 달랐던 반항아는 미술의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어머니와 문인 출신의 외할어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렵게 아버지를 설득하여 일본 유학길에 올랐고 궁핍했지만 동경에서 예술가로서의 초석을 다지게 됩니다. 고혈압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됬으나 외손녀를 위해 기꺼이 모델이 되어준 조부(1942-3))와 연이어 완성한 노부(1943)의 입상으로 그녀는 정식 화가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만큼 가족의 의미는 천경자 화백에게 꿈을 향해 세상을 비행하다 다시 돌아와도 따뜻하게 품어주는 둥지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모두가 녹록지 않았던 그 세월 속에서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한 가장 큰 버팀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상대적으로 천경자 본인이 성인이 되어 스스로 일궈야 하는 가족의 모습이 온전치 않았던 것에 더 큰 슬픔과 절망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천경자 화백의 인생은 불행했다'라고 설명하는 글들에 어김없이 가장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그녀의 두 번의 이혼입니다. 동경 유학 시절 우연히 만난 첫번째 사랑은 시대의 환경과 남자의 무능함으로 그녀에게는 길었겠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에 끝이 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각각 다른 시대적 해석들로 이루어 질 수 없는 유부남과의 사랑은 의외로 긴 기간 동안 유지됩니다. 자손을 얻고 오랜 기간 서로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본부인이 득남했다는 소식과 함께 사라지거나 본인이 필요할때 나타나 희생을 요구하는 남편 아닌 남편의 존재는 분명 그 어떤 여인에게도 견디기 힘든 고통을 주었을 것은 분명합니다. 천경자의 화폭도 그녀의 감정선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일시적으로 관계가 좋아졌을때는 결혼이나 행복한 가정이 그녀의 그림의 주제가 되었고 고통의 감정은 가난과 현실을 맞서는 그녀의 용감함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두명의 남편과 네명의 자식을 얻었으나 한번도 제대로 된 결혼식을 해보지 못한 그녀의 몽환적인 슬픔이 고스란이 환(1962)이라는 작품으로 표출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시대가 요구했던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등한시 했던 것도 아닙니다. 만삭의 몸에도 시댁의 부름이 있으면 당장 몸을 일으켰고, 옥살이를 하고 나온 남편의 뒷바라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법적으로 인정받는 가족의 일원은 아니었지만 시모의 회갑연을 자처해서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고통들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원했던 온전한 가정의 모습을 얻지 못했던 화백의 선택은 놀랍게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20여년을 본인의 인생에서 애매하게 왔다갔다한 남편을 더 이상 내치지도, 언젠가는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연약한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의 남다른 경험과 슬픔은 예술가로서의 감성을 더욱 자극하였고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어린 시절과는 명확히 대비되는 본인을 향한 현실의 온도를 물감으로 써버린 것입니다.
만약, 불편한 몸의 조부와 오랜 인고의 세월 끝에 홀로 남겨진 조모가 포즈를 취해 주지 않았다면,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환쟁이는 안된다라고 반대했지만 끝내 유학을 보낸 아버지의 결단과 믿음이 없었다면, 유복했던 유년시절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발현되었던 어머니의 영향력이 없었다면, 너무나도 불행할 수 밖에 없었던 여인 천경자는 사랑이라는 얇팍할 수도 있는 감정과 함께 나타난 두 남자를 저토록 초연하게 대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조심스러운 가정을 세워봅니다.
나는 지금 나의 인생 전부의 어느 선에 서 있는지 모르나 지나간 날을 생각해보니 별로 후회할 일도 없이 무던히 살아왔다는 자부를 갖는다. 나의 과거를 열심히 살게 해준 원동력은 ‘꿈’과 ‘사랑’과 ‘모정(母情)’이라는 세 가지 요소였다고 생각된다. 꿈은 그림과 함께 호흡을 해왔고, 꿈이 아닌 현실로서는 늘 내 마음속에 서식을 해왔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해준 것이 사랑과 모정이었다. ‘영원히 미완성이 될지 모를 꿈을 향해’ 쓰라린 고배와 불운을 감수해야 하기도 했었다.
<꿈과 바람의 세계, 1980> 중
본인이 과거에 너무나도 익숙하여 깨닫지 못했던 사랑의 깊이들을 현실의 가난과 감정들과 부딪히며 그녀 나름대로의 답을 찾았습니다. 그녀가 만약 본인을 향한 본능적이고 전통적인 가족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순간적이고 자극적인 남녀간의 사랑은 그녀를 파멸로 몰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태생부터 선택 되어진 예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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