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많은 이력서와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인재들을 대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보니 하루에도 몇번씩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좋은 기회라면 이직을 검토하실 의사가 있으신가요?"
본인이 속해있는 조직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다면 단호하게 검토하고 있지 않는다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비슷한 대답들을 듣는다.
"네, 좋은 기회라면 검토해 볼 의사가 있습니다."
상당히 적절한 답변이다. 급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고 분명한 명분이 있어야(좋은 기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꽤 설득력있다. 합리적 판단이 뒷받침 되어야 이직을 검토하겠다는 뜻이 내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기회란 무엇일까? 질문도, 답도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좋은 기회라는 것은 객관적, 주관적으로 매우 다르기 때문에 옳은 답은 없다. 현재 상황보다 발전 시키고 싶은 부분, 혹은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을 생각해보고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자기 자신과 솔직해 져야 한다.
왜 이직을 하고 싶은가.
1. 조직 내에서의 위치와 역할
현재 화장품 회사 마케팅 부서에서 디지털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A의 업무는 담당하고 있는 제품의 공식 홈페이지 및 SNS계정, 인플루언서를 통한 viral marketing 등이다. 원래 좋아했던 브랜드이기도 하고 트렌드의 최전방에서 마케터로서의 역량도 발전할 수 있는 자리라 불만이 없었지만, 요즘 고민에 빠졌다. 디지털마케팅에만 국한되어 있다 보니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느낌이 들고 브랜드매니저는 조직 내 촉망받는 팀장이 맡고 있는데 내가 저 자리에 가려면 저 분이 나가는 수 밖에 없다.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수도 있겠지만 계속 이 일만 하기에는 나의 경력개발이 더딜것만 같은 불안감도 들고 내 위에는 팀장 뿐만 아니라 브랜드매니저 자리를 노리고 있는 선배들이 층층으로 대기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된다. 지금 있는 조직보다 작지만 내가 한 브랜드를 책임지고 성장시킬 수 있는 조직으로 움직이는 것이 맞을까?
2. 발전 가능성이 희미한 조직
창업주가 몇십년전에 설립한 이후로 아주 조금씩 성장을 해오다 이제는 매년 같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고 현상유지로 만족하고 있는 제약사 회계팀에서 10년째 근무중인 B는 출근길 마음이 다르고 퇴근길 마음이 다르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출근하는 길은 이렇게 불안정한 시대에 꼬박꼬박 월급도 나오는 출근할 곳이 있는게 어디냐 하면서 오늘도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지만 하루종일 10년째 들여다본 대차대조표를 보면 심난하다. 이놈의 회사는 내가 입사했던 그 시기 부터 지금까지 판매하고 있는 품목이 100% 똑같다. 매출도 고만고만 오르지도 떨어지지도 않는다. 신제품 개발이나 하다못해 비타민드링크라도 좀 판매해볼 생각은 아버지를 이어 대표이사에 오른 2세경영인 머리에는 없다. 회사도 나도 늙어가고 있다 퇴근길 발걸음은 복잡하다. 지나온 10년만큼 앞으로의 10년도 별 다를것이 없을것은 분명한데, 내 인생이 이렇게 무미건조해도 되는건가.
본인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된다. 익숙함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가 나에게는 있을까?
3. 기업문화
국내 유명 IT기업에 근무중인 프로그램개발 담당 C는 혁신적인 기업 이미지에 끌려 지금 조직에 지원했고 5년째 근무중이다. 겉으로 봤을때도 그렇고 하고 있는 일 자체가 상당히 유연함을 요구하는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기업문화는 이상하게 군대식이다. 윗사람의 말이 항상 옳다. 새로운 제안을 해도 윗사람이 이해 못하면 헛소리가 된다. 새로운 의견을 내라고 하면서도 듣지도 않는다. 가끔은 점심시간에 혼자 유튜브 영상을 보며 샐러드를 먹고 싶은데 팀장님은 국밥 아니면 짬뽕만 먹는다. 혼자 가서 드시면 될것을 우리팀 인턴까지 다 끌고 가서 한 메뉴로 통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암담한 것은 우리 팀장님만 그런것도 아니고 옆팀장님, 그 옆 팀장님 모두 그렇다. 소위 라인을 잘타야 살아남을 수 있는 문화라 아무 소리도 못한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언론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 대표님도 그렇게 짬뽕만 먹는다.
본인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된다. 내가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만년 쫄병같은 내모습인가 짬뽕인가.
4. 상사, 조직원과의 관계
D는 요즘 최근 경력직으로 입사한 직장동료가 영 불편하다. 퇴근 후 영어공부를 하거나 맥주한캔과 영화감상이 취미인 나는 무슨 이유인지 집에 절대 안들어가는 부장님과 대면대면하다. 매번 D과장 저녁먹고 가자라고 나를 붙잡는 부장님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갈지 경험상 너무 잘알기 때문이다(본인 무용담, 정치이야기, 회사 욕 등등 소재도 참 없으신 분이기도 하고 절대 저녁으로 안끝난다). 그런데 부장님의 소울메이트가 입사하였다. 얘도 왜때문인지 집에 잘 안간다. 부장님의 영혼없는 농담에 박장대소하고 삼시세끼를 같이 해장만 한다. 가끔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면 내가 모르는 소리만 오고간다. "내가 어제 저녁에 얘기한거 있잖아." " 아, 그건 제가 알아서 그쪽에 얘기했어요." 이건 거시기가 쪼까 거시기항께 거시기 해버렸어야랑 뭐가 다른가. 어느새 난 주요 업무에서 조금씩 밀려나는 느낌이고 동료는 대인배 코스프레하느라 부장님한테 "D과장이 요즘 좀 피곤한가봐요." 라는 헛소리를 해댄다.
본인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된다. 저 커플을 떠나면 본인의 역량과 가능성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을까.
4. 처우
어린시절 남다른 혜안을 보유하신 부모님덕에 해외 유학 및 연수를 다녀온 E는 국제기구의 홍보담당으로 근무 중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정년이 보장되는 국제기구에 몸담은 것은 재벌가 출신 금수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명예와 명분이 따르는 직업이다. 전세계 다양한 조직원들과 영어로 업무하며 부모님 덕에 얻은 능통한 영어실력을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고, 더구나 준공무원적인 성격이라 해고의 위험도 없다. 큰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65세까지 그럴듯한 조직에서 근무할 수 있는 E는 요즘 마음이 복잡하다. 유학시절 룸메이트였던 친구는 분명 나보다 특별난 것은 없지만 글로벌 기업의 마케터로 취업하여 매번 홍콩, 싱가폴을 비롯한 유럽 본사까지 출장 다니느라 바쁘다. 30대 초반까지는 우리는 분명 다른 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비교가 불가하다 생각했는데 30대 후반이 된 지금, 이 친구가 한남동에 아파트를 장만했다며 놀러오라고 한다. 나는 국제기구 한국사무소에서 충실히 일하고 적금만 붓고 있었는데 이 친구는 매년 나오는 인센티브와 글로벌하게 확장되는 본인의 역할과 성과로 꽤 괜찮은(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수입이 있었나보다. 심지어 대출도 안받았다고 한다. 제기랄.
본인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된다. 다 돈벌자고 하는 건데 돈에 대해 민감한 것이 천박한 것일까? (아니다.)
5. 직장과의 거리
삼년 전 첫사랑과 결혼에 골인한 F는 일년전 드디어 청약에 당첨되었다. 드디어 나의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기대와 함께 2세 계획도 이제는 세워볼 수 있다는 기분좋은 두근거림에 흥분하였다. 왜 신은 나에게 항상 시련을 주시는가. 몇년째 무리한 글로벌 사업 진출에 사업 수주하나 제대로 받지 못해 고전하던 국내 굴지의 건설사인 나의 회사는 비용절감을 이유로 본사 이전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당장 살고 있는 전세집과는 뭐 전철에서 한시간 정도 서서가면 갈 수는 있겠지만 당장 2년 후 입주할 나의 첫 집은 세상에서 제일 큰 수도 중 하나인 서울의 끝과 끝이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2시간이다. 출퇴근만 4시간이다. 2세는 커녕 내가 사망할지도 모른다.
본인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된다. 나는 이봉주인가.
6. work - life balance
G는 요즘 없어서 못뽑는다는 machine learning 전문가이다. 업무 특성 상 나는 새벽별을 매일 본다. 그래, 사실 모두 잠들어 있는 이 순간 일하고 있는 희열을 느낄때가 많다. KAIST석사 과정을 밟았을 때를 떠올리면 이건 약과다. 그땐 격일로 침대에 누울 수 있는 것도 시간 낭비가 아닐까 고민했으니까. 삼십대 초반인데 나는 우루사 없으면 못살겠다. 실질적으로 피로회복에 도움이 되겠지만 심리적인 위안도 있다. 회사에서는 계속 인력을 뽑아주겠다고는 하는데 시장에 훌륭한 인재들이 많은 것 같아도 막상 뽑으려면 뭔가 이러쿵 저러쿵 걸리는 것이 많다. 나는 나의 일을 사랑하지만 벌써부터 눈에 띄는 흰머리까지 사랑하진 않는다. 마침 스타트업 대표로 잘나가고 있는 동창한테서 연락이 왔다. G야, 개발 그만하고 나랑 사업하자.
본인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진정 무엇인가.
7. 기타 등등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비밀리에 진행되었던 사내연애는 비극으로 끝났는데 사람들은 희극 시절부터 모든것을 알고 있다.
옆팀에 너무 꼴보기 싫은 동기가 있는데 쟤는 어쩐지 나보다 멘탈이 강해서 윗사람한테 잘한다.
책임감으로 버티려고 했으나 나말고는 그 아무도 책임감이 없다.(이게 책인감. 하며 퇴근하시는 부장님도 그닥)
나는 이렇게 소모되어야 하는 존재는 아닌데 하는 생각이 하루에 적어도 3번 이상 든다면.
이직을 해본 분들은 대부분 느끼시겠지만 이직의 위험도 분명히 존재한다. 대부분의 조직이 밖에서 보는것과 막상 조직원이 되어 일을 하는 것의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요소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은 본인의 이직사유를 자기 자신과 합리적으로 도출하고 그 부분이 해결될 수 있는 곳인지 검토하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