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birthday my dear
"여자는 3월의 날씨와 같아. 이랬다 저랬다 도저히 좀잡을 수가 없거든!"
무슨 책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유명한 영국 소설 중 나오는 대화인데 3월생 여자인 나는 정말 요즘 날씨와 같다.
요 며칠 패딩을 입었다가 봄이 왔나봐 하며 가벼운 옷차림으로 돌아다니다가 옆사람은 춥다는데 그 옆사람은 날씨가 많이 따뜻하다 하질 않나.
어린 시절 생일날 사진을 봐도 다양하다. 어떤 해는 두툼한 스웨터 차림에 미역국을 퍼먹는 내 모습도 있고 어떤 해는 티셔츠 하나 달랑 입고 밖에서 피구하느라 바쁜 나와 어린 시절 친구들도 있고.
겨울의 끝도 봄의 시작도 아닌 3월 중순. 난 올해 내 생일을 그냥 넘기지 않기로 했다. 정말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만 해보며 내 생일을 자축하기로.
토요일 아침. 금요일 퇴근길에 장만한 미셸오바마 책과 자축용으로 장만한 장미를 바라보며 흐뭇.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요즘 컨디션이 좋은 우리 강아지와 추운건지 따뜻한건지 모르는 날씨 속에 동네 한바꾸.
일하는 여자는 러블리하면 안된다는 나의 초지일관한 자세로 얌전하거나 쎈언니 풀컬러만 고집했던 나의 손은
코랄코랄 봄컬러의 프렌치로 변신함.
내 몸안에 들어가는건 건강한 것만. 천천히 우아하게 먹자 했는데
강아지가 자꾸 뺏어먹어서 나도 모르게 들이킴.
차리는건 20분이었는데 먹는건 5분.
이불 빨래도 하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냉장고 정리도 하다보니 어느새 밤이다.
올해는 지네병에서 벗어나 볼 수 있으려나 했는데 뭐 어때. 내 생일인데.
생각하지 못했던 기회에 소중한 친구가 되어준 친구가 전화가 와서 수다 떨다가
그녀는 맥주를 나는 와인을 짠짠하며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한다.
밤 12시가 되니 너무 사랑스럽게 언냐 생일 축하해용 하면서 노래를 불러준다.
그때부터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새벽 3시까지 이어지고
한잔할까가 한병했다가 되어버림.
9시부터 멀리있던 가까이 있던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화와 메세지가 와서 기분좋게 일어났다.
사실 더 자고 싶긴 한데 잠들락 말락 하면 전화기가 울려서 감사한 마음이다.
평소 안챙겨 먹던 아침도 며칠전 건강하게 살아보자 하며 술취해서 주문한 그레놀라랑 요거트랑 퍼먹고.
오늘 혹시나 내가 낮술먹고 울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한듯한 언니와
뉴욕의 그래피티를 주제로 한 전시를 보러 갔다.
오늘 내 생일임을 끄적끄적. 네, 다들 축하해 주세요.
몸 생각한다고 열심히 먹은 샐러드.
며칠동안 밀가루와 굿바이 했더니 심리적인건지 과학적인건지
컨디션이 아주 좋다며 와플 먹고 있는 언니앞에서 주절주절하다가
나 피카소와 큐비즘 또 보고 싶은데 가면 안될까.
확인사살 같은건가. 무언가 부족했던 것은 다시 한번 봐야한다.
곧 새로운 컨텐츠로 채워지겠지만 최근 본 전시 중 가장 나를 고민에 빠지게 했던 큐비즘 전시.
집에 와서 장미 물도 갈아주고 지난주 부터 말린 장미와 서로 소개해주고.
같은 품종인데 물과 함께 있을때랑 공기와 함께 있을때랑 저렇게 느낌이 다르구나.
모기 예방에 좋다는 말린 유칼립튜스와 심리적 위안을 위한 그냥 유칼립튜스.
말린 꽃이 풍수에는 안좋다고 하지만 이쁜데 어쩌겠어요.
아껴뒀던 비싼 마스크팩도 하고
오늘 사온 필케이스에 온갖 영양제도 넣고
네일 오일도 바르고
아껴뒀던 초도 불태워 보고
차에 두고 내렸던 언니가 보내준 카드에 콧등이 시큰하고
지가 뭐했다고 퍼져있는 나의 강아지도 사랑스럽고
어제 남은 와인을 허공에 건배하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
친구가 그랬다.
온 우주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기다렸을 이 시간을 축하하는걸 왜 쑥스러워 하냐고.
나도 그렇다.
매일을 내 생일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