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6209일
우리 삶에는 특별한 의미와 설명하지 않아도 느낌을 전달 받을 수 있는기간이 있다.
백일은 새로운 생명이던 사랑이던 앞으로 몇백배의 날들의 희망을 떠오르게 하기도 하고, 천일은 떠난 애인과 함께 했던 추억이나 권력은 있으나 충분하지 못했던 슬픈 기간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4주는 가정사의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숙고하는 기간으로 이성과 감정의 끊임없는 대립 속에서도 점점 정신줄을 잡고 판단을 할 수 있는 기간이라 판단되어 법으로도 그렇게 정했을 것이라 본다.
오늘은 아이가 떠난지 딱 4주가 지난 날이다. 4주동안 나는 아이와 함께 했던 17년간 안해본 행동들을 두가지 했다. 우선 지난 12월 23일 업무를 마무리하고 10일간 집밖을 한번도 나가지 않았다. 오는 전화는 받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먼저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하지 않았다. 끼니 생각도 거의 나지 않아 오후 4시쯤 배가 고프면 대충 눈에 보이는 것을 먹고 넘어가길 반복했다. 다른 또 다른 행동은 멍때리기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 조차 귀찮았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아이 생각은 머리 한구석을 계속 차지했지만 간간히 흐르는 눈물도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자가 좀비기간을 끝내고 오히려 일상생활로 돌아오니 슬픔이 주기적으로 올라온다. 특별히 팔랑거리는 꼬리가 생각이 나거나 함께 걷던길, 퇴근 길에 항상 마주치는 동물병원, 주기적으로 주문했던 사료와 패드들이 너무나도 깊숙하게 녹아있는 그 일상. 4주간 멈춰버린듯한 시간들이 간절할 뿐이다.
숨어지내는 주말이 오히려 조금 편안한 요즘, 여기 저기 흩어져있는 아이 사진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미리 정리해뒀어야 하는데 무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은 나혼자 남았을때 하는것이 맞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세개의 클라우드에 여기저기 모여있는 사진들을 한곳으로 모으고 예전 쓰던 노트북하드에 남아있는건 없을지 오랫만에 열어보았다. 6살때까지의 사진은 예전에 디스크에 저장해놨는데 당최 집에 열수 있는 장치가 없다. 2008년부터 찍은 사진들을 모아 중복되는 사진을 모두 정리하고 나니 5802장이다.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6209일이다. 어릴때 사진들까지 복원하면 매일 하루 한장 이상의 기록을 남기고 떠난 것이다.
사진 찍은 날짜가 정확하지 않은 사진들은 도대체 몇살이었는지 모르는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생의 대부분을 이렇게 이쁘고 고운 모습으로 잘 지내다 떠났다. 클라우드와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디카와 싸이월드에 익숙했던 그때부터 6209일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했으니 우린 정말 서로의 인생을 충만하게 채워주려고 최선을 다한것 같다.
안타까운건 마지막해 12개월간 찍은 사진들은 대부분 누워있는 사진들이고, 급격하게 외모에도 변화가 온 시기였다. 그러다보니 사진 수도 많지 않고 잘 나온 사진은 특히 더 없다. 아직은 다시 보기 힘든 장례식 사진들과 함께 언젠가는 용기내어 열어보려고 한다. 그래, 넌 마지막 순간까지도 용감하게 잘 싸우다 갔으니 그 장면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내 마음에 간직해야지.
6000일이 넘는 시간은 사실 한번도 세어본 기간이 아니긴 하지만 이제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의 기간이 될 것 같다. 때로는 인내와 불안이 동반하기는 하지만 상대방을 책임감있는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 사랑하고 사랑받는 감정을 알려주기 위해 대해 작은 털복숭이 친구가 온몸을 다해 보낸 시간이라는 것. 4주의 시간은 백프로 이성적으로 돌아오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나와 상대방을 위한 길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는 것도.
5802장의 사진 중 유난히 내 침대위에서 꼬물거리고 있는 사진이 많다. 오늘도 내품에 꼭 안고 잠들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