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ianH May 04. 2019

술고집들의 이야기, '바랑'

NO.1 - 작은 잔에 담긴 우리술의 향기, '작'

에디터 - Brian
포토그래퍼 - 박현빈


고집쟁이들의 술공간, '바랑'


좋은 술은 좋은 공간에서 먹어야 한다.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 좋은 공간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고급 한정식을 독채가 아닌, 북적대는 시장에서 먹고 있으면 그 정갈한 맛을 살릴 수 있을까?

반대로 겨울의 대표 길거리 음식, 호떡이나 붕어빵을 조용한 사랑채에서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그렇기에 좋은 술을 파는 공간에는 특유의 철학이 담겨 있다.

하나의 음식을 최상의 환경에서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한 수많은 흔적들이 있고, 에디터는 그 흔적들을 찾아가면서 발견한 즐거움들을 '바랑'에서 담아보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고집쟁이들을 만나보았고, 좋은 술 한잔과 함께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잔잔하게 그분들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았다. 좋은 술을 대접하기 위한, 고집쟁이들의 공간 이야기를 함께 즐기기 바란다.



논현동의 우리술 고집쟁이, '작'


역삼, 강남, 신사 사이에 껴 있어 평시에 많은 직장인들의 지나치곤 하는 논현역.

논현역에서 5분 거리의 구석진 골목에 우리술 바, '작'이 자리하고 있다.


어두운 곳에 빛나는 한 줄기 빛처럼, 우리술을 찾는 이들에게 한 줄기의 빛이 되어주는 '작'


단골들 사이에 '작'은 이렇게 알려져 있다.


'절대 망하지는 않아야 되는데, 제발 너무 알려지지 않았으면 싶은 곳'

'나만의 아지트라, 남한테 알려주기는 아까운 곳'

'멀리 살면 몇 달을 벼르고 꼭 찾아가곤 하는 곳'


이전에도 전통주를 바(Bar)라는 서양식 형태로 즐길 수 있는 시도를 한 공간들을 몇 군데 있었다.

하지만 그 쉽지 않은 고집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는 곳은 서울에서는 적어도 논현동의 이 작은 공간밖에 없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주말 영업이 쉽지도 않고, 직장인들의 회식을 받기에는 작고, 아예 전통주점도 아닌 '우리술 바'라는 독특한 컨셉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비결과 고집이 무엇인지. 선구자의 위치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는 사장님을 만나보러 발걸음을 서둘러 옮겨보았다.  



기다림의 미학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사장님께 던진 첫 질문이

'방문한 손님에게 꼭 권하고 싶은 한 잔'이었다.

술고집쟁이에게서 나오는 비결을 물어보는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저는 먼저 술을 권하지 않습니다.'


바에서는 바텐더와의 취향 공유가 기본이다.

법전처럼 알고 있던 상식이 깨지는 기분과 함께 당황해하는 필자를 보셨는지, 이내 차분하게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술은 상황과 취향에 따라 추천해드릴 수 있는 종류가 매우 다릅니다. 그래서 함부로 권해드렸다가, 저희 공간을 방문하시는 분께서 공간 전체에 실망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지가 않습니다. 조금 생각해보실 시간을 드리고, 도움을 요청하시는 분이 계시면 그 때 함께 고민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 자신의 의사를 100프로 실현하진 못한다. 직장에서도 타협하고, 가족과도 타협하고 수많은 상황에서 '현실적인 결정'을 내리곤 한다. 그런 사회의 무거움을 안고 방문한 바에서만큼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맡겨보는 것도 또다른 힐링이 아닐까?

사장님의 배려와 내공이 느껴지는 답변에 첫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스스로 찾아보기로 했다.



고운달백자, 그리고 카프레제


에디터가 찾은 해답은 고운달백자, 그리고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완성된 카프레제 안주였다.

오미자를 이용해 5년 이상 숙성시킨 '고운달'의 백자 에디션으로, 문경 도자기에서 숙성하여 오미자의 맛과 향이 살아있는 맑은 증류주이다.


달이 해보다 예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주는 달달한 선물, '고운달백자'


당연히 전통주인만큼, 추천 안주는 당연히 한식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의외의 추천이 들어온다.

'카프레제를 한번 드셔보세요. 고도주에는 가벼운 안주가 좋습니다.'

맙소사, 전통주에 이탈리안 안주라니.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의 가벼움이 고도주와 의외의 하모니를 자랑한다


그런데 의외로 궁합이 괜찮다.

강한 향의 고도주는 고유의 뒷맛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안주의 영향을 최대한 적게 받아야 하는데, 대부분 간이 세게 들어가는 일반적인 전통 안주들은 고도주의 가성비를 떨어뜨린다고 한다.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로 구성된 카프레제는 그런 점에서 고유의 맛을 떨어뜨리지 않는 선택지라고.

(김부각도 그런 의미로 훌륭한 안주가 될 수 있다)


좋은 술과 그에 맞는 최상의 안주와 함께, 본격적으로 '작'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No.1: 아무도 하지 않기 때문에


Q. 전통주라는 토속적인 콘텐츠와 바(Bar)라는 모던한 콘텐츠의 조합은 상상하기 쉽지 않은데요. '우리술 바'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것인가요?


A. 저는 원래 직장인이었습니다. 본래 조주(造酒)를 취미로 하고 있다 보니, 우리 술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문득 전통주점과는 다른 '우리술 바'라는 아이템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찾아보니 아무도 하지 않고 있던 게, 뛰어들게 된 가장 큰 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Q. 2년반이 지금까지도 '우리술 바'는 아직까지 저도 주변에서 한번도 못 본 것 같습니다. 선구자로서의 느낌이 어떠실지 궁금하네요.


A. 쉽지 않죠. 사실 저보다 앞서 유사한 컨셉으로 우리술을 알리려던 분들은 어느 정도 있으세요. 최초의 '우리술 바'라는 타이틀을 달 때도 말이 많았었고요. 하지만 이 컨셉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는 것은 저뿐이고, 서울 및 전국에서 우리술 바는 저희 매장밖에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저 디스플레이는 말 그대로 사랑이다


NO.2: 우리술 바 vs 서양술 바


Q. 서양식 바는 저도 종종 가곤 해서 익숙한 컨셉인데, 우리술 바는 상당히 낯선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술 바와 서양술 바의 차이는 어떤 점이 있을까요?


A. 아무래도 안주의 차이 아닐까요?


Q. 서양식 바에도 컨셉에 따라서, 안주를 콘텐츠화하는 바들도 있는데, 안주의 차이라고 하시니 독특하네요. 조금만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전통주는 소비 문화가 대체적으로 안주와 함께 따라가고 있습니다. 에디터님도 기본적으로 막걸리 등의 전통주를 마실 때 파전 등을 생각하시는 것처럼요. 서양식 바들은 그런 점에 있어 술에 집중하기 상대적으로 더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저희는 안주에 힘을 지속적으로 빼고 싶으면서도 그런 문화적 차이 때문에 쉽지는 않죠.


이렇게나 다양한 전통 증류주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작'을 방문하기 전까지


NO.3: 숙성


Q. 우리술과 서양술의 차이는 어떤 점이 있을까요?


A. 일단 숙성에 대한 의존도의 차이가 큽니다. 대부분의 서양 증류주들은 오크통이라는 매개체를 거쳐 장기간의 숙성 단계를 거칩니다. 가령 갓 추출한 위스키는 쓰기만 하고, 정말 맛이 없거든요. 오크통 고유의 향을 거쳐 숙성될수록 특유의 맛이 생기고, 그래서 숙성기간에 따라 가격도 천정부지로 뛰곤 합니다.

반면에 전통 증류주들은 숙성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습니다. 오크통이 아닌 구운 도자기를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숙성보다는 재료와 증류 방법이 오히려 맛의 차이를 내는 요소입니다.


NO.4: 동서양의 궁합, 전통주와 타국 안주


Q. 개인적으로 여쭤보고 싶었던 질문입니다. 전통주에는 전통 안주라는 인식을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국가의 안주들을 리스트에 넣고 계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작'에서는 육전, 피문어초회 같은 전통 안주 이외에도 카프레제, 치즈볼 등의 타국 안주들도 많다.)


A. 편견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라고 할까요. 전통 증류주들의 도수도 위스키 못지 않게 높은 경우가 많은데, 그 맛을 온전히 느끼시려면 가벼운 맛의 안주와 함께 하는 것이 좋아요. 그런데 장 문화가 발달해 있는 우리나라 안주들은 대체적으로 간이 센 경우가 많아서, 방문해주시는 분들의 인식을 바꿔보고 싶어 이런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NO.5: 재미있는 고집쟁이, '작'


Q. '작'을 운영하면서 느꼈던 유혹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잘 팔리는 다른 주류들도 들여다놓을 수 있고, 안주의 구성도 바꾸실 수도 있었을텐데 그 정신을 그대로 가지고 가시는 게 대단하신 거 같아요.


A: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아무도 하지 않아서 시작했던 거니깐요. 저도 정말 돈만 봤다고 한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 같은 곳 하나쯤은 있어야 재밌지 않을까요? 그 재미를 보고 찾아와주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유쾌한 도전, 우리술 with '작'


좋은 술을 좋아하는 에디터, 옆에서 그 기억을 더듬는 포토님, 그리고 우리를 반겨주는 사장님까지.

조용한 수요일, 퇴근 후 한산한 논현동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한 후, 포토님의 기억을 떠올려 생각난 진도홍주를 한 잔 꺼내보았다. 유쾌한 도전을 2년반째 지속하고 있는 '작'의 이야기가 계속 전승될 수 있도록, 그리고 몇 달 뒤에나 올 수 있을 듯하니 그 때까지 고집꺾지 않고 계속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몇 달 뒤에 다시 방문할 때, 저 빗자루도 그대로 있기를


'작'을 즐기는 방법


- 4명까지만 갈 것.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할 수 있어 테이블도 안 붙이는 고집 있으신 곳이다. 대신 그 인원까지만 가면 후회하지 않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 웬만한 시간에는 안심하고 갈 수 있지만, 그래도 꼭 전화해보고 갈 것.

- 주말은 예약제로 전환되었다. 방문 시 전화하면, 친절하신 사장님이 1팀이어도 문을 열어주신다.




※ 위의 콘텐츠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매거진 랑', 그리고 산하 에디터에게 전적으로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네가 생각날 때, '너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