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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H May 24. 2019

술고집들의 이야기, '바랑'

NO.2 - 차와 술, 미각의 새로운 도전, 365베버리지라운지

에디터 - Brian

포토그래퍼 - 박현빈


좋은 술은 좋은 공간에서 먹어야 한다.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 좋은 공간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고급 한정식을 독채가 아닌, 북적대는 시장에서 먹고 있으면 그 정갈한 맛을 살릴 수 있을까?

반대로 겨울의 대표 길거리 음식, 호떡이나 붕어빵을 조용한 사랑채에서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그렇기에 좋은 술을 파는 공간에는 특유의 철학이 담겨 있다.

하나의 음식을 최상의 환경에서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한 수많은 흔적들이 있고, 에디터는 그 흔적들을 찾아가면서 발견한 즐거움들을 '바랑'에서 담아보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고집쟁이들을 만나보았고, 좋은 술 한잔과 함께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잔잔하게 그분들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았다. 좋은 술을 대접하기 위한, 고집쟁이들의 공간 이야기를 함께 즐기기 바란다.



티칵테일을 찾아가다


차는 어렵다.

회사에서 점심 먹고 커피 한잔 하러 가자는 말은 쉽게 나와도, 차 한잔 하러 가자는 말은 의외로 낯설고 어렵기만 하다.


차는 나이가 들었다.

드라마에서는 어르신들과 차 한잔을 마시면서 '담소'를 나눠야 하고, 여행 가서 커피 한잔은 가볍게 테이크아웃해서 들고 다닐 수 있지만 차는 예쁜 도자기 잔에 담아 '품위 있게' 마셔야 한다.


차는 다채롭다.

하지만 차는 그만큼 다채롭다. 지역색을 그대로 살린 수많은 향기가 때로는 달콤하게, 씁쓸하게, 청량하게 코를 자극하고 입안을 부드럽게 여며준다.    


티칵테일? 

다양한 차의 향들을 칵테일로 재해석한다면? 낯설면서도 즐거운 이 질문이 티칵테일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의 기대감으로 승화되지 않았나 싶다. 스스로 던진 물음표가 행복한 느낌표로 바뀌기를 빌어보면서 오늘도 또 다른 고집쟁이의 공간에 발을 들여놓았다.



36.5도, 온정이 가득한 공간 '365베버리지라운지'


서초역 대법원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는 '365베버리지라운지'는 격무에 지친 법원 근무자들의 아지트와도 같은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게 이름 그대로, 365일 손님이 끊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발걸음을 들였었다.

'오늘 인터뷰는 만만치 않겠구먼'

웬걸, 손님이 한 명도 없다. 알고 보니, 아지트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법원 근무자들을 제외하고 찾아오는 사람만 찾아오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싸, 제대로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명 '운수 좋은 날'이다.



조엽수림(照葉樹林) & 크리스탈 로즈


술고집의 공간을 찾아왔으니, 대화 이전에 술이 어찌 빠질 수 있겠는가. 늘 하던 대로 '손님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딱 한잔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변은 늘 한결같다. 한 잔은 도저히 추천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사장님의 답변이 걸작이다.

'입맛에 따라 다르게 추천을 드리긴 하는데, 다 맛있어요..'

자신이 있으시다, 잘 찾아왔다. 속으로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면서 포토님과 함께 마실 두 잔을 그러면 추천해달라고 부탁드려보았다.


'365베버리지라운지'의 티 메뉴는 크게 티칵테일 (cocktail) & 티목테일 (mocktail)로 나뉜다. 논알콜 베이스인 목테일도 있기 때문에 모두가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면서도 한쪽에 편중되지 않아, 칵테일과 목테일을 즐기는 이들 모두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오랜 시간을 고심한 끝에 (5분이나 고심하셨다), 티칵테일은 이름만 들어도 숲이 생각나는 조엽수림, 티목테일은 이름부터 우아한 크리스탈 로즈로 결정하였다.

  

보통의 칵테일 시음에는 '1+1'이라는 나만의 법칙이 있다. 베이스를 둘러싸고 있는 가미제의 향을 먼저 즐기고, 베이스에서 우러나오는 끝맛의 알콜을 넘기면서 몸의 따뜻함을 즐기라는, 나름 음주 10년 차의 법칙이다. 롱드링크나 숏드링크 양쪽에 다 통하는 개인적인 주관이었는데, 티칵테일을 만나면서 그 법칙을 수정해야 할 듯하다.

이제는 '1+1+1'인 듯하다. 차의 향이 입안을 지배하다가, 달콤한 술이 목안을 덥히려고 하고, 마지막으로 차의 씁쓸한 맛이 오감을 정리하면서 깔끔하게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을 조엽수림(照葉樹林)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조엽수림은 LED전등이 되기도 한다.


크리스탈 로즈는 또 어떠한가. 갓 딴 장미의 향이 물씬 묻어 나와, 코부터 즐거운 목테일이다. 히비스커스의 씁쓸함과 라임의 상큼함이 적당히 버무려진 맛도 가볍고 상쾌하게 즐기기 좋다. 술은 먹고 싶지 않은데, 분위기를 내고 싶은 연인 혹은 외로운 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녀석이었다.

  

이 정도 비주얼이면, 장미 꽃다발도 필요 없이 이걸로 고백은 끝.


눈앞의 예쁜 작품 한잔씩을 놓고 이렇게 감탄을 금치 못한 후, 드디어 개인적인 궁금증에 대한 질문을 시작할 수 있었다.


Q. '365베버리지라운지', 이름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365일 동안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라고 추측하면서 왔는데, 맞으실까요?


A. 손님들께서 십중팔구는 이렇게 여쭤보세요 (웃음). 여기서 365는 사람의 체온, 36.5도를 뜻합니다.


Q. 아... 사람의 온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 같은 느낌인가요?


A. 맞습니다. 티칵테일을 즐겁게 접하시면서 온정을 느끼고 가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지었어요. 저도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들과 사람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말이죠.


365일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아닌, 36.5도의 이들과 즐거운 대화가 항시 있는 공간, '365 베버리지 라운지'이다, 명심하시길.



도자기와 함께 자라온 나의 운명, 티 (Tea) 


'365베버리지라운지'의 뜻깊은 작명에 잠시 분위기를 경건하게 가다듬고, 에디터 본인이 가장 기대하는 질문을 을 던져보았다.


Q. 이제 모든 술고집들에게 여쭤보는 질문으로 넘어가 보려고 합니다. 티칵테일이라는 독특한 아이템, 어떤 계기로 뛰어들게 되셨나요?


직장 다니다 그만두었다, 취미로 하다가 시작하였다 등의 일반적인(?) 답변을 기다리고 있던 순간, 하나의 에세이가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A. 저는 어릴 때부터 차를 많이 접했었습니다. 어머님께서 도예가셨거든요. 아무래도 도자기를 만드는 것을 계속 보다 보니, 그곳에 담아 먹고, 마시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차도 많이 마셨었고요. 외국에서 돌아온 후에 차 비즈니스를 하다가, 티 문화를 좀 더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매장을 열고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도자기와 차, 단짝과도 같은 친구들을 유년 시절부터 계속 접했었으니 사장님께는 차가 운명이었으리라. 주변을 둘러보니, 마침 진열되어 있는 도자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 어머님께서 직접 업장에서 쓰라고 제작해주신 거라고 한다.


 

술과 차 고집쟁이, 김경술 대표님


바를 방문하게 되면, 술을 매개체로 주고받는 일상 이야기도 즐겁지만, 술 자체에 대한 이야기들도 흥미롭고 다채롭다. 원시시대의 과실주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니 그 역사가 얼마나 길고, 수많은 얘깃거리들이 전승되어왔겠는가.

그러한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분이라면, '365베버리지라운지'에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를 것이다. 차의 고수가 술과 함께 그런 이야기들로 당신을 몇 시간 동안 즐겁게 해줄 수 있으니.

이례적으로 인터뷰 일정을 무려 3시간이나 잡았다. 그만큼 많은 인생 얘기와, 차 이야기, 그리고 술 이야기들을 들었기 때문이다. 칵테일과 차의 역사에서부터, 동북아 3개국의 차의 특징과 다양한 칵테일 제조법까지. 술고집쟁이와 차고집쟁이가 만나 흥미로운 공간, '365베버리지라운지'이다.



티소믈리에라고 부르지 말아 주세요, by 티디렉터 김경술


차와 사람 이야기와 함께 인터뷰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좋은 분위기에 휩쓸려 에디터로서의 본분을 잊기 전에,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기로 하였다. 아, 물론 한 잔 더 시키고.


Q. 각종 매체나 언론을 보면서 대표님께서 대표적인 티소믈리에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티소믈리에는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요?


A. 소믈리에는 고객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음료를 추천해주고, 서빙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저랑은 방향이 좀 다른 거 같아요.


Q. 의외의 답변이시군요. 매장에 있는 칵테일, 목테일들도 직접 다 만드시고 연구를 계속하시는데, 소믈리에라고 하시기에 충분한 것 아니신가요?


A. 티 분야에 있는 분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인 거 같아요. 이론적으로 계속 연구하시고, 시음을 하시는 분들과 저처럼 대중 앞에 나서서 문화를 전파하는 분. 티를 가르치기도 하고 있지만, 소믈리에보다는 인플루언서에 더 가까운 거 같아요. 문화 전도자라고 할까요?


Q. '365베버리지라운지'를 운영하면서 개인적인 목표도 여쭤보고 싶었는데, 앞에서 벌써 답변이 나온 거 같네요.


A. 저는 손님들이 많이 오셔서, 색다른 티칵테일을 드셔 보시고 앞으로 더 티문화가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와, 이런 맛도 있구나', '재밌네', '앞으로 티칵테일도 먹어봐야지'라는 메시지가 들려오는 게 저한테는 더 큰 행복인 거 같아요.



제 맛은 전수해줄 수 있습니다, 어차피 저는 새로 또 만들면 돼요


내친김에 홀짝홀짝 계속 마시니 시간이 신나게 흐르고 있었다 (강남권에서 참고로 칵테일 치고는 가격이 정말 저렴한 곳이다). 티칵테일들 중 대표 메뉴였던 '얼그레이 진피즈' (진을 베이스로 한 피즈 스타일의 롱 드링크. 얼그레이를 가미하여 차의 독특한 향을 살렸다)의 제조법을 흘리듯이 여쭤보았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시연까지 하면서 다 말씀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옆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포토님이 본인이 물어보려던 질문을 해주셨다.


'사장님, 이거 다 알려주셔도 되는 거예요?'


여기서 사장님의 답변이 더 걸작이다.


'네, 전 또 만들면 되니까요. 다른 분이 똑같이 만드셔도, 제가 만든 맛을 재현하기는 쉽지 않아요, 제가 만든 레시피니깐. 그리고 손님들이 아실 거예요, 맛이 다르니깐'


이거, 좀 멋있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생각에 대한 답변을 조금 더 보태주셨다.


'저는 이 시장은 공생(共生)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차 시장은 커피 시장의 몇십분의 일밖에 안 되는데, 이 시장을 확장시켜야 저도 이 일을 즐겁게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배워가시고, 전국에 이런 곳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동네마다 이런 매장을 하나씩 차리는 게 저의 꿈이기도 합니다.'


사장님, 그 꿈은 정말 꼭 실현되시기를 빌어봅니다. 저도 자주 들리고 싶어 지고 있거든요.



'365베버리지라운지'를 즐기는 방법

- 알코올 단계별로 즐겨보자. 도수가 강한 음료부터 마시면, 가벼운 음료의 편안함을 누리기 어렵다.

- 차의 씁쓸함이 무거운 안주도 잘 잡아준다. 티칵테일의 장점이기도 하니, 안심하고 안주거리도 즐겨보자.

- 사장님과의 수다는 재미를 보장한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즐기러 온 게 아니라면, 꼭 바 자리 앞으로!



※ 위의 콘텐츠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매거진 랑', 그리고 산하 에디터에게 전적으로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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