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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H May 01. 2019

'찰랑'거리는 와인 한 잔

NO.1 - 봄비의 잔잔한 향이 물씬, '여피'

에디터 - Ringo

포토그래퍼 - 최수훈


  한창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 어떤 가치들을 내면화하여 사는 것이 옳은 걸까 등의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망원동에 자주 왔었다. 대부분 친구들, 아주 가끔은 애인과 몇 번 와본 망원의 가게들이 마음에 들어, 집에서 먼 곳임에도 부러 지하철을 타고 오게 되는 것이다. 당시 자주 가던 카페는 한쪽 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언제까지고 잡생각에 빠져있기에 아주 좋았다. 비 오는 날이면 창가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기약 없는 고민들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었다. 골목마다 걸어다니다 보면 소위 ‘힙해보이는’ 망원의 가게들을 종종 발견하곤 하는데, 여피도 그중 한 곳이었다. 




  여피(YUPPIE)의 내부는 그다지 크지 않은 편이다. 10평 정도 될까 싶은 이 작은 공간에 들어서면 천장을 가득 드리우는 샹들리에와 조명들의 존재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벽에는 촛대 그림이 걸려있는데, 실제 조명을 활용하여 마치 촛대에 불이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 것이 인상 깊다. 디귿자로 된 바에 쪼르륵 앉아있는 게 불편하지만 꽤 친밀한 상대와 갔을 땐 가까이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피의 매력은 ‘가성비’와 ‘가심비’를 한꺼번에 잡은 데에 있는데, 우선 와인과 안주는 망원 물가를 고려하고도 매우 저렴한 편이다. 우선 와인의 경우 2만원대부터 시작하는데, 특히 3만원대 와인들의 리스트가 꽤 괜찮은 편이다. 안주 역시 파스타와 피자, 치즈 등이 만원 초/중반대로 와인에 곁들일 만한 한 끼 식사로 퀄리티가 좋다. 



  가벼운 목넘김에 맑은 색감을 즐기고 싶어 주문한 ‘샤또 망비엘 화이트’. 안주는 ‘모듬치즈'.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와인인 샤또 망비엘은 다소 차갑게 해서 마시면 그 가벼움이 배가 되어 산뜻하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꽃향기와 과실향은 안주 없이 마셔도 풍족하다. 디귿자 모양의 바에 앉아 옆자리의 친구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면서 마시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와인이다. 얼마든지 잔을 부딪쳐도 부담스럽지 않아 더욱 좋은 와인. 다만 오늘의 공간에 아쉬운 것이 있다면 화장실이 밖에 있고, 그마저도 매우 작은 공간인 점이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화장실은 오래된 흔적이 벽면의 타일을 가득 메우고 있다. 



  평일은 여피의 영업이 밤 1시에 끝나는 터라 마지막 손님으로 자리를 채우다 문을 나서던 참이었다. 문을 열고 나오니 잔잔히 내리는 봄비가 온 공기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 밤에 와인 가득한 배를 안고, 봄비에 걸을 수 있다니. 우산 없이 걷는 망원의 골목은 그 여운이 오래 남아 한참을 방황하고서야 돌아갈 곳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망원의 작은 골목 속에 자리 잡은 더 작은 공간, 여피. 이 공간에서 만난 우리들의 첫 번째 찰랑. 


                                                                                                                                                                  Ringo

 

Information (YUPPIE)                    

주소: 서울 마포구 포은로 38

운영시간: 평일 18:00~01:00, 토요일 18:00~01:00 (일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instagram.com/yuppie_bar

주차여부: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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