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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H May 31. 2019

'동네랑', 공간이 함께 써가는 이야기

NO.1 - 떼어놓을 수 없는 경험, 문래동 그리고 '비닐하우스'

에디터 YY

포토그래퍼 이땡땡


비틀즈 없이는 존 레논을 논할 수 없으며 비틀즈 또한 영국 사회를 떼어놓고는 논할 수 없다.

사람과 사회가 그렇듯 공간과 동네가 그렇다. 동네 없이 공간 자체만으로는 그 매력을 다 설명하기 어렵다. 공간 역시 주변 공간, 즉 동네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공간에 대한 경험은 그 공간 내에서의 경험뿐만 아니라 그 공간까지 가는 길에서의 경험을 포함한다.

문래동 도림로에 위치한 “비닐하우스”는 문래동에 있어서 매력적이며, 문래동은 “비닐하우스”가 있어서 매력적이다.


세 겹의 공간이 공존하는 동네



1. 1970년대 철강산업이 발전하면서 문래동에는 '철공소'라는 레이어가 생겼다.

2. 하지만 97년도 IMF와 함께 문래동 철공소들도 침체를 피하지는 못했다. 문 닫은 빈 공장촌에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았고, '창착촌'이라는 레이어를 만들었다.

3. 이제는 '상업공간'의 레이어가 쌓이고 있다.

“비닐하우스”까지 가는 길에 서로 다른 시간을 가지고 쌓인 세 레이어들을 모두 발견할 수 있었다.


문래동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 동네가 거쳐온 변화를 볼 수 있는 동네이기에 매력적이다. 또 다른 점은 철공소의 흔적과 창작촌의 흔적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이 공간들이 모두 현재에 공존해 있다는 점이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다르게 보인다



비 내리는 날 주말의 문래와 철공소 골목은 꽤 잘 어울린다. 철공소 내부에 쌓여 있는 날 것 그대로의 자재들과 ‘안전제일’이라는 문구, 어두운 철공소 내부에서 보이는 흐린 날씨는 다른 동네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분위기를 조성한다. 철공소와 철공소 벽에 그려진 벽화들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건물 안에 낀 집 모양의 '비닐하우스'를 볼 수 있다.

'비닐하우스'는 건물 안의 건물이다. 건물은 네모 반듯하게 뚫려 있고 그 공간을 빨간 칼라 각관과 녹슨 철문 프레임이 박공지붕 형태로 채우고 있다.

'비닐하우스'는 부정하지 않는다. 철공소 골목에 위치해 있다는 것도, 낡은 건물 안에 위치해 있다는 것도, 빨간 각관을 사용했다는 것도. 빨간 각관 자체로는 디자인이 될 수 없다고 여겨졌지만 숨기지 않고 써버리면 그것 또한 디자인이 된다. 오히려 철공소 옆에 있는 '비닐하우스'는 그런 요소들 때문에 동네와 잘 어울린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노출 콘크리트, 공장 느낌의 카페들은 이제 꽤 흔하다. 그러나 비닐하우스가 기존의 그것들과 같지 않은 점은 철공소의 동네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집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인더스트리얼 느낌의 카페로 정의하기엔 단정한 집 같아 보이고 새로운 카페라기엔 날 것 같아 보인다.



폴리카보네이트와 유리를 통해 그대로 보이는 낡은 건물과 실외기 역시 새 상품처럼 포장할 생각이 없음을 말해준다. 있던 그대로를 인정하고 외부의 요소들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인정하는 순간 보기 싫었던 실외기는 세면대 위에 전시된 듯이 보인다. 세면대와 실외기가 만들어낸 장면은 이 카페의 묘미가 된다. 외부의 허물어진 벽에 놓인 컴퓨터는 마치 컴퓨터 속의 영상을 전시하기 위한 장치같이 보인다.

동네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들, 낡은 것들을 인정하고 가니 오래된 철공소 골목과 새로운 카페 사이에는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책상 위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볼트, 2층 다락을 구성하는 H형강, 폴리카보네이트 밖으로 보이는 배관들 모두 그대로 인정받고 '비닐하우스'의 일부가 된 요소들이다.


실내인 듯 실외인 듯




'비닐하우스'의 반은 건물 안에, 반은 건물 밖에 있다. 사진에 보이는 천장의 밝은 부분은 지붕 위가 바로 외부이고 어두운 부분은 지붕 위에 건물이 있다. 터널을 막 지나가기 시작한 기차와 같이 실내와 실외의 경계에 있다.



'비닐하우스' 안쪽은 실내이지만 폴리카보네이트와 유리는 실내에 있으면서도 바깥과의 시각적 경계를 흐려 실외인 듯 느끼게 만든다. '비닐하우스'의 벽은 반투명한 재료(폴리카보네이트)와 투명한 재료(유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벽 너머를 볼 수 있다. 밖으로 지나가는 배관과 무너진 외벽, 실외기는 건물 외부를 안에서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카운터 바로 앞에 설치된 파라솔을 봐도 내부인 것 같기도 외부인 것 같기도 하다. 외부에 있을 법한 요소를 내부에 가져옴으로써 한층 더 실외 같은 실내를 만든다. 빨간 파라솔에 앉아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은 보고 있으니 편의점 앞 풍경을 옮겨 놓은 듯하다. 2층 다락과 카페 곳곳에 놓인 캠핑용 의자도 맥락을 같이한다.


카페, 또는 술집으로서의 '비닐하우스'

메뉴는 맥주부터 칵테일 커피까지 다양하다. 카페 입구에서 들어가면 왼쪽에는 벤치의자가, 오른쪽에는 길고 좁은 바 테이블이 7줄 있다. 가운데 위치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낮은 다락이 나온다. 여기저기에 캠핑용 의자가 있고 카운터 바로 앞에는 빨간 파라솔이 두 개 있다. 작업하거나 오랫동안 편히 머무르기보다는 문래 철공소 골목만의 분위기와 이색적인 장소를 즐기고 간단히 맥주나 칵테일을 즐기기에 더 적합하다.



비닐하우스 Information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도림로128가길 13-8

인스타그램: http://www.instagram.com/vinyl__house   



※ 위의 콘텐츠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매거진 랑', 그리고 산하 에디터에게 전적으로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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