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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H Jun 25. 2019

아침에는 '빵이랑'!

NO.2 - 아침에 못 먹은 빵이 그리울 때, Baker_lee

에디터 - 리미

그림 - 융두


인생이 공허할 땐 빵을 뜯어요


바야흐로 결혼의 계절이다. 신사, 압구정, 선릉 쪽에 가면 주말 낮인데도 정장을 입고 더워하는 남자들, 미리 짠 듯이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라고 다를 게 있나? 정장용 원피스에 몸을 구겨 넣고 밥 먹으러 간다. 그런데 진부하니, 사치스럽니 해도 막상 어릴 때부터 같이 커온 친구가 식장에서 부모님께 인사할 때나, 웬 남정네와 팔짱을 끼고 걸어 나오는 걸 보면 주책맞게 눈물이 글썽한다. 어찌 보면 한 사람의 생애에서 큰일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을 꾸리기로 결심을 한 친구가 어른같이 느껴지고 어떤 때는 뿌듯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식이 끝나고 난 후이다. 오전은 식장에 도착하느라 지나가고, 식사가 끝나면 무엇 하나 시작하기 애매한 늦은 오후가 된다. 게다가 보통 식장은 번화가에 위치해 있어, 피곤한 채로 애매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부터 다시 배도 고프고 어지러운 상념에 잠긴다. 평생에 결혼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누구도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질문들이 꼬리를 물어 하루의 끝에 맥주를 찾게 만든다. 그래서 요즘은 그런 생각에 빠지기 전에 미국 코미디언 테일러 톰린슨의 얘기를 떠올린다.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보고 공허해서 결혼을 하고 싶다가도 빵을 뜯으면 기분이 훨씬 나아지더라고요. 결혼해야 할 것 같으면 크래커를 드셔 보세요. 탄수화물이면 될 것을 인생 망칠 뻔한 거예요.”

 

얼마 전 딱 이 조언에 들어맞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집 앞 정류장에 내리니 오후 4시쯤 됐다. 그냥 들어가기도 뭐한데 마침 당이 떨어져서 헛헛한 마음에 새로 생긴 동네 빵집에 들어갔다. '왜 이런 곳에 빵집을 내셨을까 유동인구도 적은데, 그래서 빵도 적게 만드신 건가?' 하며 몇 가지를 골라 접시에 담았다. 그중 하나가 치즈 베이글이었다. ‘스타벅스’에서 먹던 치즈 베이글을 떠올리며 반 정도 먹고 저녁 먹고 이따 또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먹자마자 '아니 이게 웬 꿀맛이여!' 하며 결국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하나를 다 먹었다.

사장님의 말에 따르면 세 종류의 치즈가 쓰였는데 위에 꿀을 뿌려 단짠+탄수화물의 조합이 너무나 완벽하다. 빵 자체도 고소해서 맛있다. 식빵의 테두리 같은 갈색 부분들을 잘 안 먹는데 이 집은 그 부분이 고소해서 일부러 먹게 된다.

기분이 공허해서 결혼을 하고 싶은가? ’ 베이커리’의 단짠 조합이 완벽한 치즈 베이글을 드셔 보시라! 어떤 커플의 궁합도 이렇게 완벽할 수 없으니.

 

 

Baker_lee


나중에 사장님께 들어 보니 조용하고 작은 골목에 빵집을 내고 싶으셨다고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김포의 작은 동네를 발견했고 그렇게 ‘baker_lee’가 생겼다. 그래도 나는 궁금했다. 한가한 이 동네에는 특이하게도 개인이 운영하는 빵집이 두 개에, 프랜차이즈 빵집 하나, 베이커리류를 판매하는 수 개의 카페가 있다. 알게 모르게 경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왜 하필 이 골목이었을까? 그런데 동네 주민이 아니었던 사장님은 그냥 다른 빵집들의 존재를 몰랐다고 한다. 질문을 던진 나도, 일하던 직원 분도, 설명하던 사장님도 동시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baker_lee’는 유기농 밀가루를 쓰고, 100프로 국내산 우유와 버터를 쓴다. 소량의 이스트만 사용하여 저온에서 긴 시간 발효시켜 만든 빵을 내놓는다. 느림과 기다림에 가치를 두고 되도록이면 속재료도 직접 만든다. 아침에 팥을 불리고 수시간 끓여 단팥빵을 만들고 제철 과일을 직접 끓여 잼을 내어놓는다.

매번 나오는 빵은 조금씩 다르지만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라인업을 확인할 수 있다. 시그니처는 ‘할라피뇨 꿀’로 이 곳에서만 맛볼 수 있고, 개인적으로는 빵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탕종 식빵이나 플레인 베이글, 치아바타나 소보루도 추천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식빵 테두리까지 맛있어서 버터+꿀+후추에 찍어 먹으면 멈추기 힘들다. 이쯤 되면 모든 빵을 추천할 셈인가 싶겠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가 갖춰져 있으니 기회가 닿으면 직접 들러 보길 바란다.

 

 

사장님의 목표는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곳이지만, 좋은 재료를 써서 제대로 구색을 갖춘 빵집을 만드는 것이다. 식사가 될 만한 빵도 찾을 수 있고, 후식으로 함께 나눠 먹을 쿠키나 케이크도 찾을 수 있는 작지만 알찬 곳을 꿈꾼다. 언젠가 ‘baker_lee’ 표 케이크를 맛볼 날을 기대한다.


 

치즈 베이글을 손에 쥐면 든든해져요


웅앵웅하는 글을 써 놓고 1년 후에 나는 인생 짝꿍을 만나 미혼자들에게 짚신도 짝이 있다는 둥 선배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유부녀가 되어 신랄하게 남편 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이지만 나조차도 한 치 앞을 모르고 누구도 대신 답해 줄 수가 없다. 그래서 불안하고 걱정스럽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단짠의 조합이 완벽한 치즈 베이글을 손에 쥐면 마음이 든든해진다는 것. 기름진 치즈와 달콤한 꿀이 내 눈을 똥그랗게 만들고 정신까지 또렷하게 해서 빵집을 나오던 걸음이 자신에 차 있었다는 것. 올 테면 와봐라 그게 뭐든지, 내가 지금 이렇게 맛있는 빵을 내 손으로 골라서 신나게 즐기고 있는데 혼자든 둘이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래도 인생이 공허해서 결혼을 하고 싶다면 빵을 뜯어보세요 여러분, 기분이 한결 나아집니다.



※ 위의 콘텐츠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매거진 랑', 그리고 산하 에디터에게 전적으로 있음을 안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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