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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H Aug 21. 2019

'살랑', 멀리 떨어진 식탁

NO.5 - 안주(옥수수 전, 닭고기 볶음), 오늘은 좋은 날

에디터 & 포토그래퍼 - 안휘수



'Mr. Blue Sky'가 흘러나온다. 더위가 있던 자리를 가득 채운 노래와 함께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몸을 흔든다. 이렇게나 가벼웠는지 몰랐던 발이 제자리에서 신나게 구른다. 더 매끈하게 뻥 뚫린 목으로 제대로 외우지도 못한 가사를 흥얼거린다.

입맛이 없어 죽 말고는 먹을 수 없었던 그동안의 식사는 너무나도 무료했다.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반찬을 꺼내는 것조차 힘들어, 죽 옆에 놓이는 것은 김치뿐이었다. 하지만 입맛이 돌아오자 무엇이든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오늘 식탁은 그런 나를 축하해줘야 한다. 밥이 아니라, 안주를 만들 것이다. 냉동고에서 오랫동안 얼어있던 옥수수와 닭고기를 꺼낸다. 해동이 다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으니 계속해서 가벼워진 몸을 흔들어준다.



예고도, 징조도 없이 찾아온 기침이었다. 2주를 가득 채워서 아팠다. 사흘에 한 번 읍내에 있는 병원에 갔었다. 그렇지 않아도 빠듯한 생활비는 진료비와 약값으로 빠져나갔다. 병원에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잠을 충분히 자라고 했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땡볕에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을 가는 것만 해도 고역이었다. 뜨거운 밭에 필요한 양의 비만큼 땀이 흐른 채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에 앉으면 멈췄던 기침이 다시 나왔다. 집에 와서도 일은 산처럼 쌓여 새벽이 돼서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겨우 누워도 일에 대한 스트레스만큼 가래가 끓어 쉽게 잠을 잘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힘든 건 평소보다 휑한 식탁이었다. 아픈 몸은 혼자 힘으로 일어나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몸을 일으키면 약을 먹기 위해 억지로 죽을 먹었다. 혼자 죽을 끓이고 심심한 간을 해서 목에 쑤셔 넣었다. 시중에서 파는 죽을 누군가 사 오지 않을까 기대해봤지만 그러기에는 그들에게 내 식탁은 너무 멀다.



결국, 시간은 지나갔고 오늘 아침부터 ‘짠’하고 아프지 않았다. 몸은 예전으로 돌아왔지만, 주방에는 찢어진 약봉지가 남아있었다. 땀으로 젖은 요는 결국 빨래방에서 세탁기를 돌려야 했다. 빠져나갔던 돈은 절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돌아온 것은 행복한 마음과 건강한 몸뿐이었다. 그것마저 차감된 상태에서 원래대로 돌아왔을 뿐 더 나아졌다고 할 수는 없다.


아프면 병원을 가야 한다. 불편하다면 불편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아픈 이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찬 위로가 아니라 그 아픔을 치료할 방법이다. 그리고 그 아픔이 끝났을 때 힘들었던 날을 미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끝난 그 순간을 온몸으로 즐겨야 한다.



몸도 다 나았으니, 다시 행복한 안주 얘기로 돌아가 보자.

옥수수 알을 까서 볼에 담아준다. 그 위에 부침가루를 부어주고 달걀을 푼다. 그리고 소금으로 간을 더해준다. 적당하다고 생각이 들 때 더 뿌려준다. 반찬이 아니라 안주로 만들 예정이니 조금 짭조름한 맛을 내준다. 이제 가지와 양파를 길쭉하게 썰어준다. 준비된 것은 그릇으로 옮기고 해동이 끝난 닭고기를 도마 위에 올린다. 마찬가지로 길쭉하게, 한 입씩 먹기 좋게 썰어준다.



준비는 끝났다. 팬 2개를 불 위에 올리고 기름을 두른다. 기름이 달궈지면 코팅이 되어있는 곳에 전 반죽을 얇게 펴서 올린다. 모양이 둥글고 예쁘게 잡혔다면 불을 살짝 줄여준다. 이제 옆에 놓인 팬 위에 다진 마늘을 넣어 먼저 볶아준다. 마늘의 깊은 향이 올라오면 닭고기를 넣어서 볶는다. 서서히 닭고기 겉면이 먹을 수 있을 거 같은 색으로 변한다. 간장과 소금, 설탕을 넣어 간을 해주고 가지와 양파까지 넣어 팬을 열심히 돌려준다. 음식에 불이 붙을 때마다 기름이 사방팔방으로 튄다. 청소가 걱정되긴 하지만 오늘은 축제의 날이니  주저 없이 즐겨본다.

닭을 볶으면서 틈틈이 옥수수 전이 타지 않게 확인해준다. 하나가 완성되었다면 다음 반죽을 올려 부쳐준다. 닭볶음이 먼저 완성이 되었으니 사용했던 팬을 설거지하고 다시 불 위에 올린다. 가열을 충분히 시키고 전에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 크기로 반죽을 올린다.



마지막 전이 완성되었다. 젓가락만 집어서 식탁 위에 올린다. 숟가락은 필요가 없다. 냉장고에서는 맥주를 꺼내고 다시 문을 닫는다. 만든 안주들을 가져와 식탁에 올린다. 분명 기름지고 짠 음식이다. 하지만 어제까지 아파서 고생했으니 오늘은 눈 감고 넘어가기로 한다. 




※ 위의 콘텐츠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매거진 랑', 그리고 산하 에디터에게 전적으로 있음을 안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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