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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H Sep 08. 2019

'살랑', 멀리 떨어진 식탁

NO.6 - 두부김치, 필요한 것은 충분합니다

에디터 & 포토그래퍼 - 안휘수



두부를 냄비에 넣고 끓인다. 두부를 끓이는 동안 김치를 썬다. 다른 곳에 김칫국물이 날리지 않게 통에서 조심해서 김치를 꺼내 도마에 올린다. 김치를 썰 동안에도 김칫국물이 도마 밖으로 새지 않게 조심해서 썬다. 썬 김치는 반찬 통에 옮겨 담고 도마를 먼저 설거지한다. 방금 썬 김치와 냉장고에서 다른 반찬 그릇을 꺼내 식탁에 올린다. 이제 두부만 따듯하게 익으면 식사 준비는 끝이다.



두부김치는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술안주다. 안주로만 먹었던 것이 아니라 집에서 밥반찬으로도 많이 먹었다. 그만큼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만든 두부김치를 맛보았다. 두부를 기름에 부쳐서 내오던 곳도 있었고, 연기가 모락모락 나도록 촉촉하게 쪄서 내오던 곳도 있었다. 김치 역시 다진 고기와 볶아서 내오던 곳도 있었고 그냥 그대로 내오던 곳도 있었다. 김치의 종류도 다양했다. 

말했던 것 외에도 수많은 종류가 있었지만 그들의 이름은 모두 두부김치였다. 무엇이 더 맛있었는지 우열을 가릴 수는 없었다. 각자 다른 매력이 있을 뿐이었다.



올겨울 이곳으로 내려와서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여느 때 보다 추웠던 겨울을 보냈고 봄을 맞이했다. 그러다 어느새 여름이 되더니 이제는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직은 이르지만, 올해를 뒤돌아보면 많은 것들이 불편했고 부족했던 한 해였다. 도시에서는 당연하고 간단했던 일들이 하나하나 신경을 써야 하는 일들이 되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상이 되기도 했다. 가스가 끊기면 가스통을 갈아야 했고 등유가 떨어지면 주유소에다가 주문했다. 빨래는 모두 손으로 직접 했다. 그마저도 비가 오면 빨래를 미뤄야 했고 나중에 가서는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를 하느라 온몸이 쑤셨다. 밤이 되면 벌레들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모기향이나 스프레이로는 역부족이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낡은 철문이 넘어지지 않게 보수를 했다. 마당에 풀이 자라면 뽑았지만, 다음날이면 똑같이 자라 있었다. 시골 생활에 대해 낭만을 가지고 있던 이들도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모두 손사래를 쳤다. 조용히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마저도 외롭고 심심한 삶이라는 반증이 되었다.



다른 곳에 사는 이들은 많은 것들을 하며 살아간다. 주말이 되면 사람들을 만나고 연애를 한다.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취미를 배우기도 한다. 날씨가 좋으면 나들이를 가서 수많은 인파에 섞인다. 동네마다 영화관이 있고 어디서나 인터넷이 되기에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엄청난 각오를 할 필요도 없다.

그에 비교해 시골에서의 삶은 너무나도 심심하다. 더군다나 아직 체력이 넘치는 청년이 살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밥을 먹는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때가 되면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과일로 후식을 챙기기도 한다.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저녁을 먹는다. 그렇게 하루 세 번 식탁에 앉고 나면 아무리 여름이어도 바깥은 어두워진다. 그러면 가로등이 없는 마을 하늘에 별들이 촘촘하게 박힌다.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거나 라디오를 듣다 보면 하품이 나오고 그때 누워 잠들면 하루가 끝난다.

분명 부족함이 많고 굉장히 심심한 삶이다. 너무 천천히 나아가서 변하는 게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누구도 지금의 삶이 제대로 된 삶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숨을 쉬고 있고 밥을 먹는다. 하루 중에 즐거운 순간이 있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분명 필자는 이곳에서 나름의 만족스러운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냄비에서 두부를 꺼내 도마에 올린다. 한입에 먹기 편하게 두부를 썬다. 규칙적이고 앙증맞게 썰린 하얀 두부가 귀엽다. 두부를 그릇에 담고 밥을 퍼서 식탁에 올린다. 미리 수저까지 올려놨으니 더 준비할 것은 없다.



숟가락 위에 두부 한 조각을 올리고 그 위에 김치도 올려서 먹는다. 전혀 특별한 맛이 아니다. 두부는 간이 전혀 돼 있지 않고 김치도 늘 먹던 그 김치다. 하지만 분명 두부김치고 그 조합은 언제나 맛있다. 




※ 위의 콘텐츠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매거진 랑', 그리고 산하 에디터에게 전적으로 있음을 안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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