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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May 09. 2021

할머니에 대한 나의 적개심은 어디에서 왔을까

모처럼





모처럼 상쾌한 날이었다. 일찍이 일어나 소중한 사람과 잠깐이지만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고, 사람들이 출근길을 나서기도 전인 이른 새벽에 운동복을 입고 나와 달리기도 하였다. 불이 꺼진 건물들 사이로 달리고 있으면 마치 내가 대단히 성실한 사람이라도   의기양양해진다. 사실 이른 새벽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일어나 비몽사몽한 상태로 리기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내가 의과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애썼던 노력의 강도가 새벽 달리기의 강도에 비해 크게 강하지도 은 것 같다. 거창한 진리의 탐구라면 모를까,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는 다분히 의지의 문제니까. 졸리지만  자고, 놀고 싶지만  놀고. 적어도 의지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이른 새벽에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하나일 것이다.


어찌 되었던 그 어려운 일도 일찍이 끝내고 하여 기분이 좋은 아침이었다. 게다가 마침 부산에서 반가운 친구가 서울에 놀러 온다고 한 날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채비를 하고 친구를 마중하러 나갔다. 역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한 후,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평화로운 아침 분위기 속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종업원이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로 소리지르며 커피를 주문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닌가. 종업원은 크레센도의 양상으로 점점  거칠게 ‘825 손님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음식을 주문해 두고는  이렇게  찾아가는 것인가 생각하였지만, 종업원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점차 주문자와 종업원 모두에게 짜증이 났다.  평화로운 아침에 왜들 이러시나.


몇 번이고 소리를 지르던 종업원은 결국 단념한 듯 직접 주문자를 찾아 나섰고, 결국 내 바로 앞에 앉은 할머니의 주문표를 확인한 후 할머니 자리에 커피를 툭 올리고 가버렸다. 할머니는 종업원이 그동안 본인을 찾았다는 것을 모르는 양 밝게 웃으며 감사하다고 이야기하였다.


   ‘뭐, 잘 못 들으셨겠구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책을 읽는 것에 집중하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 나에게 불쑥 말을 걸었다.

   “이거 버릴 거예요?”

대답할 틈도 없이 할머니는 어느샌가 앞으로 다가와 내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냅킨에 손을 댔다. 커피를 열다가 조금 쏟으신 모양이었다. 불쑥 들어온 할머니의 손에 나는 잠깐 당황하였다. 그리고 내가 무엇이라고 대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할머니는 “아니에요? 나는 또 버리려고 하는 줄 알았지”라고 하며 커피 자국이 잔뜩 묻은 냅킨을 내려놓고는 다시 냅킨을 찾으러 나섰다.


나는 내심 기분이 나빴다. 할머니가 무례해서라기 보다는 낯선 사람이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와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뭐야…’ 하고는 할머니가 손을  냅킨을  마신 커피 용기에 구겨 넣어버렸다. 할머니는 어디선가 냅킨을 구해와 다시 나의 앞에 앉았다. 할머니를 자세히 보니  특별히 이상한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다. 옷도 깔끔하게 입으셨고, 목도리의 재질도 제법 좋아 보이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인  같지도 않았다. 나는 간사하게도 할머니에 대한 적개심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다시 책을 읽는 것에 집중하였다.


그러던 중 또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차표를 잃어버려서 어쩌나?”

할머니 청소를 하고 있던 종업원에게 제법  소리로 이야기하였다.

   “네?”

종업원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손에  . 기차표. 아까 거기 앉아있던 사람, 표를 잃어버려서 어쩌나…”

   “기차표 아니에요.”

바쁜데 왜 귀찮게 하느냐는 듯한 모습이었다. 종업원은 무슨  같지 않은 소리를 하냐는 태도로 대충 이야기하며 무시해버렸고, 할머니는 “, 그래요?” 하면서 멋쩍게 웃었다. 이후 할머니는 주변을 조금  관찰하다가 조용히 커피를  드시고는 본인이 사용한 휴지와 빨대를 깔끔하게 컵에 넣어 정리하고 카페를 떠났다.


불현듯 부끄러운 생각들이 밀려왔다. 내가 의과대학에 진학한 가장  이유는 노년기와 임종기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였다. 노인 의학의 문제를 단순히 과학의 문제에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며, ‘노인들에게는 그들 스스로 발전시켜나가고 빠져들  있는 주체적인 문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노인들의 문화가 지나치게 부족하다. 이는 의학과 무관하지 않다 발표를 한 적도 있었다.


할머니에 대한 나의 적대심은, 종업원의 적대심은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나라는 OECD 노인 자살률 1위라고 하는 부끄러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대기록의 원인으로는 경제적인 문제, 노인 소외 문제 정도가 가장 흔히 이야기된다. 내가 만난 할머니께서는 경제적으로 풍족해 보이셨다. 그저 카페에서는 주문한 커피가 준비되었다는 사실 번호 호명하여 알린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며, 냅킨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을 뿐이고, 굳이 버릴 냅킨이었다면 낭비하지 말고 아껴서 사용하려고 했을 뿐이었으며, 누군가 기차표를 잃어버리고 차를  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을 뿐이었다.


문화를 주도하는 세대가 되어서, 한 세월 치열하게 살다 많이 변해버린 세상에 그저 조금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경계하고 배척하는 나는 대체 무슨 마음으로, 무슨 이해심으로 노인들을 대하는 의학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말인가.


모처럼 부끄러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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