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체
세포 안에는 염색체가 있다. 염색체는 우리 몸에 대한 정보, 흔히 말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 정보로부터 우리 몸이 사용할 모든 물질들이 만들어진다. 만일 유전자라고 하는 이 정보가 손상되면 세포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게 되고, 그에 따라 우리 몸은 늙어가게 된다. 따라서 유전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염색체를 아주 강하게 결합시켜서 철통보안을 만들면 좋을 것 같지만 그러기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우선 몸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염색체에 내재된 정보를 자주 사용하여야 하는데, 만일 염색체를 너무 강하게 묶어두면 우리 몸이 그 정보를 이용할 수가 없다. 정보를 이용하는 데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서 우리 몸이 효율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우리 염색체의 끝부분은 조금씩 닳기 마련이라, 이 끝부분을 새로 만들어주는 기전이 필요한데 이를 텔로머레이스(telomerase)라고 하는 효소가 담당한다. 하지만 이 텔로머레이스가 과도하게 작동하면 노화하지 않고 끊임없이 분열하는 세포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암세포 중에는 텔로머레이스가 과도하게 작용하는 것들이 있다. 즉 '삶'을 위해 필요한 효소가 '죽음'에도 역할을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염색체는 자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남성의 경우, 하루에도 몇 번이고 염색체를 풀어서 복제하는 과정인 감수분열을 통해 염색체를 정자에 담게 되는데, 염색체가 너무 강하게 묶여있으면 이러한 과정을 잘 시행할 수가 없다.
더 본질적인 문제도 있다. 염색체가 약하게 묶여있다는 말은 돌연변이가 잘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염색체가 튼튼하게 묶여있어 돌연변이가 발생하지 않으면 무조건 좋은 일일까?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들의 유전자가 동일하면 우리는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해 멸종하고 말 것이다. 즉 조금씩 발생하는 돌연변이 덕분에 모든 사람들의 유전자가 다르기에, 우리를 공격하는 바이러스가 발생하여도 운이 나쁜 몇몇 사람들만 운명을 달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내용은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한다. 우리의 유전자는 본질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조금 더 인문학적인 말로는 삶이 있으려면 죽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가 평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해왔다면 마찬가지로 다음 문제 또한 충분히 고민해보아야 한다.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죽을 것인지, 무엇을 지켜나가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1.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사이언스북스(2000), p.270-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