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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Dec 12. 2021

그 세월들이 그들에게는 어떠한 의미였을까


돈은 정말 중요하다. 누군가에겐 모든 것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겐 최소한의 무언가일 수도 있지만 돈이 중요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돈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 혹은 “돈은 전혀 관심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믿을 만한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돈은 살 곳을 제공해주고, 먹을 것도 제공해주고, 때로는 그 빌어먹을 돈 때문에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세상인데, 돈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솔직한 말을 하는 사람일 리 없다. 하지만 돈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가끔은 ‘그 돈이 뭐라고 우리들의 인생사를 이렇게 얼룩지게 하기도 하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드는 것이다.


내과계 중환자실에 60일 정도 입원한 중년 남성이 있었다. 알코올성 간경변증으로 얼굴은 노랗고 배는 남산만큼 불러있었다.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인해 한 쪽 발을 절단하기도 했고 콩팥도 다 망가진 상태였다. 상태가 그렇다 보니 지속적신대체요법, 기관절개 및 기계환기, 승압제, 수혈 등 사용하고 있는 약물과 기계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살 날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일반적으로 환자의 상태가 악화될수록 가족이나 지인들이 병실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기 마련인데, 환자의 경우 안 좋은 상태에 비해 면회를 오는 사람이 도통 없는 편이었다. 부인과는 이혼을 했고, 사실혼 관계의 여성이 있긴 했으나 몸이 아프고 나서부터는 연락이 뜸했다. 아들이 하나 있다고 하여 의료진이 아들에게 연락을 해보았으나 아들은 귀찮다는 듯이 몇 마디 대꾸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던 중 결국 환자는 사망했다. 시신을 수습해야 하기에 의료진은 아들에게 연락하여 환자가 사망하였으니 병원에 와서 몇 가지 절차를 진행해달라고 말하며 아들을 병원으로 불렀다. 병원에서 마주한 아들은 누가 보아도 거친 사람이었다. 양팔을 가득 채운 화려한 문신, 시종일관 상대를 위협하는 공격적인 말투, 그리고 우람한 체격. 아들은 사망진단서작성, 사망처리 약반납, 기타 서류 정리를 하고 있는 간호사에게 빨리 일을 처리하라며 위협적으로 말하곤 했다.


그렇게 진담을 빼며 필요한 행정처리들을 마친 간호사는 아들에게 가 설명했다.

   “보호자분, 모든 절차가 다 완료되었고요. 이제 원무과가셔서 병원비 수납하시면 여기서 해야 할 일들은 모두 끝이 나요.”

60일 넘게 병원에 입원하여 적어도 1,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청구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기초생활수급자였던 환자에게는 200만원 정도가 청구되었다. 아들은 청구서에 적혀있는 200만원을 보고는 무심하게 답했다.

   “낼 돈 없어.”

간호사는 다시 한번 상황을 설명했다.

   “보호자분, 그래도 저희가 병원비 수납이 완료되어야 시신 수습이 진행되고 시신을 영안실로 보낼 수 있어서요…”

   “아, 시x. 돈 없다고. 니가 내줄 거야?”

위압적으로 욕을 내뱉은 아들은 당황한 간호사를 몰아붙였다.

   “나 돈 없으니까 시체는 니들 마음대로 해.”

   “아, 환자분. 그러면…”

   “알아서 하라고 시x”

아들은 그렇게 말하고 막무가내로 병원을 떠났다. 의료진은 아들에게 전화해보았지만 아들은 가차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시신은 영안실로 옮기지 않으면 곧 부패가 진행되기 때문에 우선은 영안실로 옮겼다. 이후 병원측에서 몇 차례 더 연락을 해보았지만 아들은 끝내 연락을 받지 않았고, 결국 환자는 ‘무연고자’ 신분으로 장례식장에서 화장되며 삶을 마쳤다.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어떠한 아픔과 역경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200만원이라는 돈 때문에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으로 이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건 그 이유와 무관하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에서 부모와 자식으로 연이 닿아 수십 년을 알고 지냈던 그 세월들이 그들에게는 어떠한 의미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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