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승주 Nov 03. 2021

"괜찮아, 엄마"

손톱

서른 즈음이 되니 자녀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을 지켜볼 때면 마음이 먹먹해질 때가 많다. 어릴 적엔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부모님의 사랑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사랑 뒤에 숨겨져있던 희생과 마음앓이가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이런 게 철이 드는 건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그 희생이 더이상 숨겨지지 않을 정도로 부모님이 노쇠하신 건가 싶어 마음이 초조하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님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은 우리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라 "잘 해야지" 생각하고 있다가도 조금만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부모님께 짜증을 내기도 한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서른은 어른으로 된 어린인가 보다.[1]


나의 단짝친구가 일하는 중환자실에 30대 여성 환자가 입원했다. 환자는 선천 신경계 질환으로 인해 사지가 마비된 상태였고 호흡기 근육이 약해 목에 작은 구멍을 내 겨우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다.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얼굴 표정은 바꿀 수가 있어 아주 간단한 형태의 의사소통은 할 수 있었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오래 누워있다 보니 욕창이 생겼고, 거기에 폐렴과 요로감염까지 더해졌고 결국 상태가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입원하게 된 것이었다.


중환자실은 보통 면회시간을 이삼 십 분 내외로 제한한다. 엄격한 감염 관리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환자들의 상태가 수시로 급변하는 중환자실에서 의료진들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짧은 면회시간이 시작되었다. 면회시간이 시작되자 환자의 어머니가 얼른 환자의 곁으로 가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 지내고 있냐 안부를 물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눈에 딸의 긴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한창 이쁠 나이에 병상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손톱마저 지저분하게 있으니 어머니의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렇게 손톱깎이를 집어들었다.


하지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손톱을 깎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딸에게 건네주어야 할 말도 많고, 딸의 얼굴도 조금 더 봐야 하는데 제한된 이십 분이라는 시간 내에서 손톱까지 깎자고 하니 여간 마음이 초조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부랴부랴 손톱을 깎던 중 어머니가 실수로 딸의 손을 찝어버린 것이었다.

   "어떡해... 이걸 어떡해..."

딸의 손톱에서는 피가 났다. 의료진은 당황해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가서 말을 건넸다.

   "보호자분,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제가 딸 손톱을 깎다가 실수로 살을 찝어서요. 피가 많이 나요, 선생님. 어떡해요? 어떡해..."


어머니의 눈에는 금새 눈물이 고였다. 비협조적인 보호자분들은 면회시간이 끝났다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 한 시간씩이나 중환자실을 떠나지 않기도 하는데, 그 짧은 20분 내에 딸의 손톱이라도 정리해주려다가 살을 찝고만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의료진의 마음도 좋지 않았다. 면회시간도 거의 끝났고 딸의 손에서 피가 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는 것이 더 마음 아플 것이라 판단한 의료진은 괜찮다고 어머니를 달래며 면회를 끝냈다.

   "괜찮아요, 어머니. 별로 크게 상처가 난 것도 아닌데요 뭘. 저녁 면회시간에 오시면 저희가 깔끔하게 잘 드레싱해둘게요. 걱정마세요."

어머니는 눈물을 떨어뜨리며 딸에게 인사했다.

   "아프지? 많이 아프지? 내가 조심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미안해..."

비록 몸을 움직일 순 없지만 의식이 있고 얼굴 표정도 변화시킬 수 있었던 딸의 눈에도 금새 눈물이 고였다. 그렇게 면회가 끝났고, 어머니는 가슴을 쥐어짜며 "내가 조심했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반복하며 병실을 떠났다.


오랜 딸의 병간호로 인해 거칠게 변해버린 손으로 딸의 손톱을 깎던 어머니, 손을 찝었을 때 당혹스러움과 밀려오는 죄책감, 그리고 아무말도 못 하고 어머니의 사랑과 속죄를 그저 묵묵히 지켜보아야만 했던 딸. 가끔은 자연과학의 법칙이 조금 예외적으로 작용해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날 딸에게 수십 년 간 이어져 온 긴 침묵 속에 단 한 마디가 허용되었다면, 그녀가 내뱉을 말은 분명 내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괜찮아, 엄마."



[1] 이육사 <절정>에서 차용

매거진의 이전글 각자의 목적을 자유롭게 추구할 권리에 대한 믿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