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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Sep 15. 2021

도고를 보내며

도고

나에겐 세 마리의 고양이가 있었다. 하나는 초코라는 친구다. 초코는 우리집 문 앞에서 난데없이 내 발등 위에 올라타 그 길로 우리집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겁없는 성격 때문이었을까. 초코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열려있는 문틈을 통해 집을 나가고 말았다. 튼튼하고 용감한 친구였으니 분명 아직까지 잘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다른 하나는 보솜이라는 친구다. 보솜이는 나의 큰누나가 데려왔다. 누나는 등교길에 있던 한 동물가게에서 우연히 보솜이를 발견하였는데 보솜이는 유달리 다른 고양이들보다 작고 약했다고 한다. 이후 길을 지나며 몇 번을 지켜보다가 항상 친구들한테 괴롭힘 당하는 보솜이가 측은하게 느껴져 누나는 보솜이를 분양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너무 약한 친구였던 걸까. 항상 애기같고 애교가 많았던 보솜이는 어느날 원인 모를 패혈증이 발생해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보솜이는 내가 군복무를 막 시작하여 훈련소에 있을 때 갑작스럽게 죽었기 때문에 나는 보솜이에게 아무런 인사도 하지 못했고, 그러한 이유에선지 보솜이를 생각하면 항상 애잔한 마음뿐이다.


마지막은 도고라는 친구다. 도고는 우리 큰누나가 길에서 데려왔다. 아주 어린 고양이가 졸졸 따라오며 계속 우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누나는 도고를 집에 데려왔고, 도고는 그 길로 우리집에서 약 20년을 살았다. 도고는 참 순한 친구였다. 마음이 뒤숭숭하고 슬픈 날에는 도고를 안고 잠드는 날도 많았다.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도 도고가 옆에서 자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화장실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도고가 야옹하고 울 때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게 어디 있으랴. 도고도 명을 가진 동물인지라 언젠가부턴가 점차 노쇠해지기 시작했다. 활동량은 줄어들었고 새로운 일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올해 9월 도고는 끝내 깨지 않는 깊은 잠에 들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서울에 있던 나는 그 마지막 순간에 함께 하지 못했다. 도고가 눈을 감았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하였다. 며칠 남지 않은 나의 의사 국가고시 시험에 지장이 있을까봐 부모님께서 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시험을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가 도고를 찾았다. 내 말을 들은 엄마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엄마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도고가 눈을 감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도고의 마지막 모습을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갑자기 일어나지 못하고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데려갔더니 요로결석이 재발했고 당뇨도 매우 심한 상태라고 하였다. 그렇게 응급으로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하였지만, 다음날 저녁 수의사 선생님은 '더이상은 힘들 것 같으니 집으로 돌아가 함께 있어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했다. 그렇게 도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나이가 들면서 혼자 자는 것을 더 좋아했던 도고였지만 그날 저녁 도고는 엄마의 곁으로 가 엄마와 함께 잠에 들었다. 다음날도 상태는 좋지 않았다. 도고는 자리에서 거의 일어나지 못했고 저녁이 되자 점차 의식이 처지기 시작했다. 저녁부터 도고의 곁을 지켰던 엄마는 도고의 등을 쓰다듬으며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정을 넘긴 새벽 2시, 도고는 끝내 마지막 잠을 청하게 되었다.


고양이들의 평균 수명을 이미 한창 넘긴 도고였기에 나는 부산에 들렸다가 서울로 다시 올라갈 때마다 도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곤 했다.

   "다음번까지 살아있을 수 있겠니? 고생이 많아, 도고야. 그래도 같이 있어줘서 고마웠어. 그럼 부디 다음번에 또 보자~"

매번 장난스럽게 건넨 인사였지만 그래도 그렇게 인사를 해와서인지 도고가 갑작스럽게 떠나도 그렇게 아쉽진 않았다. 도고를 보는 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도고에게는 최선을 다하여 그런지도 모른다. 도고를 방에서 데리고 자면 이불이 고양이 털로 뒤범벅이 되어 엄마에게 혼나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난 부산에 갈 때마다 매번 도고를 침대 위로 데려오곤 했다. 내게는 도고와의 마지막 잠일지도 모르니까.


도고를 보내며 다시 확신을 가진다. 우리는 모두 마지막 순간을 준비해야 한다. 상대가 동물이든 사람이든 무관하다. 못다한 말들을 건네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기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스스로의 마음에도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 그래야 눈을 감은 이들이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조금 더 오래, 그리고 조금 더 따뜻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내 오랜 단짝이었던 도고야. 햇살 아래에서 포근하게 자던 네 모습을 생각해보면 길고 반복되는 세월이었지만 그래도 항상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또 언젠가 연이 닿는 날에 다시 만나자구나.


잘 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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