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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Oct 17. 2021

사랑이라는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것들

간병

때론 간병도 질병이다. 의학적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질병이다. 특히 환자의 가족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간병에 대해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가족이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니까 시작한 간병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병들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면 마음이 타들어간다. 본인의 삶은 없어지고 기약 없는 보살핌의 시간만 펼쳐진다. 아직 삶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도 많지만 당연하게 부여받은 간병이라는 일 때문에 모든 게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보면 사랑은 조금씩 식고 결국 남는 건 몸이 아픈 가족과 마음이 아픈 자신뿐이다.


암이든 심장병이든 몸이 아픈 건 눈에 보이고 기록이 되니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 중 하나가 중증 정신질환이라도 앓는 경우에는 집안이 풍비박산나기도 한다. 괜찮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면 가족들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문제는 마음의 병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몸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행동을 하니 가족들은 이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상처도 많이 받는다. 물론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에 이상이 생겨서 저러구나"하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사랑하는 가족이 비정상적으로 행동하는데 누가 그리 차분히 생각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만큼 마음도 더 타들어가기 마련이다.


정신과 외래진료에 참여하고 있던 날, 두 청년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먼저 들어온 청년은 떡진 머리에 대충 챙겨입은 옷,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보이는 눈빛이었다. 이어서 들어온 청년은 잘생긴 외모에 제법 감각있는 옷차림새까지 어딜가나 인기가 많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한 눈에 보아도 첫 번째 청년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교수님은 간단한 인사를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두 분은 관계가?"

두 번째 청년이 답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제가 형이고요. 이 친구는 제 동생입니다."

형은 예의바르게 인사를 한 후 병원에 오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요지는 동생이 언젠가부터 이상한 말들을 한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회사사람들이 자신의 지인에게 전화를 해서 본인에 대해 이것저것 말을 했다고 하는데, 형이 그 지인분과 직접 통화를 하여 물어본 결과 지인분은 그 어떠한 전화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교수님은 동생에게 해당 내용을 확인했다. 동생은 분명 사람들이 자신의 지인에게 전화한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간혹 답하는 도중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로 빠지기도 하였다. 지리멸렬한 말들과 확신에 찬 망상. 조현병이 의심되는 소견이었다.


동생과는 논리적인 이야기가 잘 이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주변 사람들의 증언 또한 중요한 병력이기에 교수님은 형에게 몇 가지 사실들을 더 확인하였다. 형은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잘 답했다. 하지만 동생은 자꾸 형의 말을 끊고 논리에 맞지 않는 이상한 말들을 했다. 반면 형은 동생의 말을 끊지 않고 동생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본인이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서로 말을 끊으며 대화가 중구난방으로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세심한 모습이었다.


한창 형이 잘 정리하여 말을 하고 있는데 다시 동생이 말을 끊고는 이상한 말을 했다.

   "근데 이게 또 로또 복권이랑 관련이 있는데요. 북한에서 간첩이..."

순간 형이 눈을 질끈 감았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잠깐이나마 도피하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동안 잘 참아왔던 서운함과 억울함이 밀려와서 이를 내려보내느라 힘든 모습이기도 했다. 잠깐이지만 그의 얼굴에는 짙은 어두움이 드리웠다.


예의도 바르고 잘생긴 청년이 동생의 질병으로 인해 일 년 내내 끌려다니고 있으니 그도 여간 힘든 게 아닐 것이다. 동생 회사 사람들을 만나고, 고개 숙여 사과하고, 결코 설득되지 않는 동생을 설득하고. 그런 과정에서 그도 분명 많이 지쳤으리라. 동생은 말도 되지 않는 말들을 당연한 듯이 이야기하는데 그 말들의 무게는 왜 다 본인이 짊어져야 하는지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아픈 가족을 간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사랑이라는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1] 내가 진료실에서 만난 이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밀려오는 서러움을 내려보내고 있었다.




[1]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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