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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Apr 06. 2023

인공지능은 의학을 대체하진 못할 것이다

의학

정갈한 오미자차와 한과. 우리 전통 다과에는 고즈넉한 멋이 있다.

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대체할 거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부 지식인들은 인공지능의 발전을 반대하고 나섰다. 기술의 진보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는 집단이 생겨나는 걸 보니 러다이트 운동이 생각나는 것이 꼭 세상이 한 번 더 크게 바뀔 형국이다. 의학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의학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고도화된 데이터의 학문이니까. 얼마 전 한 영상에서 전문가라는 사람이 나와 앞으로는 의사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고 의사 과학자가 유망해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고 있는 의학은 그의 주장과 조금 다르다.


중환자실에 19살짜리 남자 아이가 입원하였다. 어느날 열이 심해져 병원에 방문해 치료를 받았는데 큰 차도가 없었다. 그러다가 손발에 감각이 이상해지기 시작하면서 손발에 마비가 왔다. 길랑바레증후군이었다. 길랑바레증후군은 바이러스 감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신경계 질환으로 손발에서 시작되어 몸의 위쪽으로 퍼져나가는 감각 이상과 마비 증상이 특징적이다. 타입에 따라 시신경을 침범하여 실명 상태를 유발하기도 하는데 환아의 경우가 그러한 경우였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멀쩡히 뛰어놀았는데 갑작스럽게 손발이 마비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으니 환아와 부모님의 억장은 무너졌다.


환아가 중환자실에 입원하자 간호사들은 정신없이 기본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바늘로 피부를 찌르고, 전선이 달린 패치를 가슴에 붙이고, 소변줄을 연결하고. 그러던 중 환아가 건넨 말이 간호사의 마음을 울렸다.

   "선생님, 무서워요. 손이 너무 차요."

웃기지 않은가. 그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환아가 무서웠던 건 차디찬 의료진의 손이라니. 한 달만에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 놓이게 된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 것이다. 무심한 의료진도 모를 것이다. 데이터는 더욱이 모를 것이다. 환아가 얼마나 어둡고 차가운 심연에 놓여있는지.


나는 생물학 학사와 의학사를 가지고 있다. 생물학에서는 생명체의 원리와 생화학 반응들을 배웠다. 반면 의학에서는 인간에 대해 배우고 생각했다. 분자구조로 이루어진 DNA에 종속된 존재이자 호르몬의 반응에 속수무책인 인간이라는 존재가 우리 삶 속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적응하고 어울려가는지. 의학에는 데이터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8년 동안 사람에 대해 공부했다. 그 여덟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었다.


아쉽게도 인공지능은 의학을 대체하진 못할 것이다. 병듦과 늙어감은 그러한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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