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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May 21. 2023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 큰 꿈을 가져본 사람은 안다

가방 속 생강. 주말에도 회사에 출근하게 되어 기분이 좋지 않은 모습이다.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 큰 꿈을 가져본 사람은 안다. 그 꿈이 얼마나 자신을 갉아먹는지. 사실은 허풍에 가까운 꿈이었다면 상관없다. 어차피 자신도 그 꿈을 믿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자신의 꿈을 진심을 다해 믿는다면,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은 그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믿는 것과 보이는 것이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믿음을 조금씩 놓아버리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정신을 조금씩 놓아버리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사는 게 어디 늘 마음처럼 되겠는가.


나는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유명한 록스타도 될 수 있다고 믿었고, 세계적인 사상가도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감수성 넘치던 어린 시절에는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음악만 주구장창 모으고 들으며 지냈다. 성적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에는 350명 중에 200등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정확히 말하면 기말고사에서 전교 10등 안에 들면 노래를 30GB나 넣을 수 있는 아이팟 클래식을 사준다길래(운이 좋아 5등을 하여 아이팟은 얻어냈고 나는 담임 선생님께 불려가 컨닝을 한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고등학교 즈음부터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생각보다 빨리 공부하는 일에 적응했으나 늦게 시작한 탓인지 결과는 좋지 못했고, 그 결과 부산에 있는 한 지방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미래에 무얼 해야겠다는 꿈이 없었다. 그래서 일찍 군대에 입대했다. 군 문제도 일찍 해결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울 요량이었다. 그런데 군대에서 만난 수많은 명문대학교 출신 학생들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지방에서 대학교를 다닌다고 대놓고 무시하기도 했다. 아무리 봐도 그 친구들보다 내가 덜 똑똑한 것 같진 않은데 대학교 하나로 그러한 취급을 받으니 억울했다. 그때 생각했다. 적어도 저런 사람들한테 무시받을 배경은 가지지 말자고. 그렇게 나는 전역을 하고 고려대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지방대학교에서 서울의대까지, 5년이 걸린 일이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주변의 은근한 비웃음과 무시는 여전했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의심한 적은 없었다.


나는 안다. 도약은 나 자신을 진심으로 믿고, 그 믿음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도 고요하게 마음을 지키며, 해야 하는 바를 묵묵히 해나갔을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을.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요즘도 동일한 감정을 느낀다. 나는 에드워드 제너가 백신을 개발하여 인류의 건강에 큰 기여를 했듯, 우리 팀 또한 기술을 통해 이 세상을 한 차례 더 건강하게 바꿀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우리 팀원들도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이쯤되면 스타트업은 정신병리학적으로 'shared psychosis'[1]가 도진 집단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마 정신과 진료실에 들어가서 '나는 세상을 바꿀 거예요'라고 말하면 의사는 그의 차트에 '과대망상'이라는 증상을 입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과대망상에 젖은 미친 사람 혹은 철들지 않은 어린 아이라고 손가락질할지라도,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는 바로 그 정신나간 사람들이, 이 세상을 바꾸고 인류를 진보하도록 한다는 것을.


진심으로, 고요하게, 묵묵히.




[1] Shared psychosis, 공유된 정신병은 흔히 한 사람이 가진 망상이 그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현상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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