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식품의 딜레마
가공식품은 나쁜 것일까요? 가공식품을 만드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만들거나 사용된다면 그 가공식품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먹는 사람의 건강은 어찌 되든 신경 쓰지 않고 돈을 벌 목적으로만 가공식품을 만들어 판다면 그것은 나쁜 것입니다. 돈 버는 행위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돈 버는 방법이 문제입니다.
장영란 작가는 <자연 그대로 먹어라>에서 "먹는다는 건 무얼 먹는 걸까? 영양소보다 먼저 '생명력'이라고 생각한다. 오이를 먹는다면 오이가 가진 생명력을 내 몸이 받아들이는 거다."라고 말합니다. 생명력이란 한 생물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그 생명력이 사람에게 들어와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자연 그대로 먹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제철에 농산물을 많이 수확했는데 그때 다 먹기에는 너무 많고, 그냥 두자니 다 썩어버리니까 좀 더 오랫동안 두고 먹기 위해서 가공합니다. 그런 식품이라면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만드는 가공식품이 아닐까요? 냉장고가 없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소금에 절이는 염장법, 수분을 제거하는 건조법이 전통 가공법입니다. 염장법은 삼투압 때문에 미생물이 자랄 수 없고, 건조법은 미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분을 없앰으로써 미생물의 생육을 억제하는 저장법입니다. 그렇게 가공된 식품이 김치, 시래기, 건미역, 마른 멸치 같은 것입니다. 이런 가공식품이 있어서 양식이 부족한 계절에도 먹고살 수 있습니다.
설탕에 절이는 것을 '당절임법'이라고 하는데, 뒤늦게 생겨난 가공법입니다. 15세기 의학교재에 따르면 설탕은 '열병, 기침, 가슴의 병, 까칠까칠한 입술, 위장병 등'에 효과가 있는 몸값이 높은 귀한 약이었습니다. 사용량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합니다. 공정무역 설탕이나 유기농 마스코바도(필리핀산 공정무역 비정제 살탕)처럼 제값을 치른 설탕으로 집에서 만든 병조림이나 잼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설탕이 많이 들어가면 혈당이 급상승해서 몸의 면역과 염증반응에 악영향을 줍니다. 설탕은 이제 독이 되었습니다.
설탕이 싸진 이유는 노예의 노동력 덕분입니다. 1700년경 서인도제도에 아프리카 노예를 강제 이주시켜서 사탕수수를 대량생산하면서부터입니다. 설탕은 너무 맛있고 귀한 식재료지만 설탕을 만들기까지 엄청난 희생과 파괴의 슬픈 역사를 생각한다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습니다. 지금은 노예를 부리지는 않지만 예전의 나쁜 관습이 남아있어서 공정한 거래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거대한 다국적 기업이 사탕수수나 사탕무를 재배하는 농부에게 제대로 값을 치르지 않고 헐값에 사들이기 때문에 설탕이 여전히 쌉니다. 설탕이 저렴하니 설탕을 활용한 음식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그 결과 많은 나라가 당뇨와 비만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달콤한 가공식품은 생명 착취로 시작해서 생명 파탄으로 인도합니다.
지혜롭게 사용한 커피믹스는 2022년 경북 봉화 아연광산에 매몰되었던 두 사람을 열흘 동안 먹여 살리기도 했습니다. 어느 쪽이 좋을지 득실을 따져서 꼭 필요할 땐 적당량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공식품은 사용 목적과 방법에 따라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병들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