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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녀 Nov 19. 2017

허술하지만 영리해

[ 영화식사 006 ] 장수상회Salut D’Amour, 2014

강제규 감독의 <장수상회>에서 재개발에 혈안이 되어 혼자 사는 노인이 집을 포기하기를 바라는 주민들의 염원은 광기로 읽힐 만큼 섬뜩한데, 인터넷에 어떤 관객이 쓴 평이 인상에 남았다. “그래도 부모님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개봉했다는 게 어디냐.” 이 관객에겐 ‘부모님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란 점이 <장수상회>의 신파성과 재개발에 대한 얕은 의식, 웃음도 안 나오는 유치함을 상쇄할 수 있는 장점으로 보인다.

대중영화에서 이러한 관객평은 꽤 심오한 의미를 낳는다. 모든 관객이 영화에서 어떤 예술적 성취나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해 극장에 가진 않는다. 비평적 관점을 배제하더라도 ‘세대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관객의 측면에서 중요한 이유가 되기에, <장수상회>나 <국제시장>같은 대중영화에 대한 관객의 평이 비평가들의 반응과 엇갈리는 경우도 생긴다. ‘영화적 의미가 텍스트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관객들이 생산하는 것’(영화가 정치다, 조흡, p.35, 인물과 사상사)이라면 <장수상회>에 대한 우호적인 평가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아빠의 건강을 염려해 담배를 숨기는 딸과 성격은 괴팍하지만 서툴게 사랑을 시작한 할아버지. 이러한 판타지적인 가족구성원들의 사연이 적당한 신파와 웃음으로 버무려졌을 때 ‘온 세대가 함께 보기 무난한’ 영화가 탄생한다. 그 기준을 통과한다면 영화에서 다루는 재개발 이슈와 독거노인은 적당히 넘어갈 만한 이야기인 것이다.


<장수상회>에서 가장 현실적인 장면은 성칠(박근형)이 나중에 자신이 고독사 했을 때를 대비해 소정의 장례금과 편지를 남겨두는 부분인데, 건강한 사랑으로 똘똘 뭉친 판타지적인 가족애와 (심각해지지 않아도 될 만큼만 묘사된) 현실적인 그늘이 겹치면서 관객에게 더 설득력 있는 감동을 안겨준다. <장수상회>가 가진 한계를 떠나 관객이 느낄 감동은 분명 가족이 함께 공유할 만한 감정이기에,  <장수상회>는 꽤 영리한 대중영화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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