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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녀 Dec 10. 2017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잠 못 든다고

[ 영화식사 009 ] 오피스Office, 2014


 공포영화의 내러티브는 인물과 공간의 접촉을 통해 텍스트를 통제한다. 80년대 미국의 젊은이들은 여행을 떠나야 살인마를 만날 수 있었고, 신혼부부는 새 집에 이사해야만 불가사의한 일을 접할 수 있었다(<로즈메리의 아기>, 1968).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6)은 완전히 고립된 마을은 아니지만 적당히 폐쇄적인 공간을 무대로 설정함으로써 마을주민과 외지인의 대비를 더욱 효과적으로 강화한다.     


이렇게 공간에 잠식한 공포영화 속 세계는 관객에게 그 공간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즐거워야 할 여행지가 도망칠 곳을 헤매야 하는 낯선 타지로 변하고, 아늑한 휴식공간이었던 집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장소로 돌변한다. 관객에게 익숙한 공간에 비일상적인 사건이 벌어질 때 공간이 머금고 있던 텍스트는 확장을 꾀하며, 더 이상 공간이 가진 본연의 기능, 자연스러운 활용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상태에서 비로소 공포가 촉발된다.

      

영화 <오피스> 스틸 이미지


 어떤 각도에서 어떤 면을 보느냐에 따라 미디어 속 오피스는 성실함만이 필승전법인 노동현장이 되었다가도 명랑한 연애의 장으로, 혹은 배신과 음모의 도가니로, 부조리에 맞서는 투쟁공간으로 변신을 거듭해 왔다. 노동과 노동 반대편을 끝없이 질주하는 수많은 욕망을 무한대로 흡수하는 변신이 가능한 이유는 단지 오피스가 그 모든 욕망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루에 절반 이상을 할애하는 모든 삶이 갖는 고뇌와 번민에 무덤덤하도록 만들어진 몇 개의 벽. 그 벽들이 모여서 이루는 공간이 바로 오피스다.          


그런 사람 있잖아. 열심히는 하는데 눈치는 없고 위에서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삽질만 하는.


회사에서 무시와 압박을 견디지 못한 김병욱 과장이 가족을 모두 죽이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의 회사 동료들이 하나둘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영화 <오피스>는 기존의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관습적인 영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피스>가 내포하는 메시지는 인턴 이미래(고아성)라는 인물을 통해 흥미로운 변주를 꾀한다. 이 점은 이미래가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미래에게 죽임을 당하는 팀장과 대리 등은 평소에도 김병욱의 환영에 시달리다가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이미래를 김병욱으로 인식한다. 왜 그들은 자신을 죽인 사람을 끝까지 김병욱이라고 생각했을까. 대체 왜, 아무도 이미래를 기억하지 못하는가.      


영화 <오피스> 스틸 이미지 / 이미래 인턴사원


 억압적인 노동 생태계에서 소외된 인간의 극단적인 병리증세가 <오피스>의 표면적인 메시지라면, 그 외피 안에는 존재로조차 각인되지 않는 프롤레타리아의 고군분투가 메타메시지로서 작용한다. 김병욱의 환영이 평소 그를 무시했던 직장 동료들의 죄의식이란 점을 다시 끌고 와 보자. 이미래는 그들에게 이러한 죄의식을 가질 만큼도 되지 않는, ‘맞은 놈’으로도 기억되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마치 이미래에게 했던 폭언들은 최소한의 신경도 쓸 가치가 없었다는 듯, 이들은 자신들이 살해된 원인을 김병욱에게 전가한다. 이에 따라 이미래 역시 마지막까지 침묵하며 형사의 수사망을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피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은 징후가 사회구조를 결정한다는 알튀세르의 ‘징후적 읽기’(symptomatic reading)를 따른다면, 텍스트가 무의식적으로 혹은 고의적으로 은폐한 무언가는 이내 구조화된 부재로 나타난다. <오피스>의 경우 이미래가 바로 구조화된 부재이며, 그녀가 대표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기에 스스로 각인에 나서야 하는 비극적인 존재일 것이다. 이미래를 향한 양가적 감정 중 만약 연민이 있다면 그것은 소모품으로 취급받은 비정규직의 설움이 아닌, 가해자의 기억의 범주에 들지도 못한 비참함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영화 <오피스> 스틸 이미지 / 김병욱 과장

     

 평론가 로빈 우드는 정상성을 “기존 권위에 의해 승인된 지배 이데올로기의 세계”라 규정한다. 정상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일탈한 자들이 공포영화 속 괴물의 형상으로 돌아온다. 그 괴물은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일 수도 있고 장애인, 부랑자일 수도 있다. <오피스>의 경우 정상성은 실적과 열정을 강요하는 정서가 팽배한 회사 그 자체다. 그리고 김병욱과 이미래는 이러한 세계에서 탈락, 혹은 스스로 이탈하여 그 세계를 위협하는 괴물이 된다. 그렇다면 영화 <오피스>가 관객에게 원하는 것은 단지 무서워하고 깜짝 놀라는 것이 아닌, 이 정상성의 세계에서 잉태된 살의가 어떻게 폭발하고 어디까지 치닫는지를 목격하는 일이 아닐까.

    



한 알 씩 깨물 때마다 입 속에서 터지는 붉은 살의의 즙.

부드러운 우유 푸딩이 이미래의 섬뜩한 속을 달래주길 바라며.


영화식사 아홉번째 레시피, 석류 판나코타


석류 판나코타 레시피


준비물: 설탕 50g, 생크림 200ml, 석류 1알, 판젤라틴 2장, 바닐라빈 1개, 우유 200ml


1. 냄비에 설탕, 생크림, 우유를 넣고 약불로 천천히 끓인다.

2. 냄비 가장자리가 끓기 시작할 때쯤 미리 찬물에 5분 정도 불려둔 판젤라틴 2장과 바닐라빈 1개를 섞어 저어준다.

3. 거름망으로 바닐라빈 잔여물을 걸러주고 틀에 적당량을 부어 식힌다.

4. 3시간 이상 냉장실에서 굳을 때까지 기다린 후 석류 알을 조심스럽게 위에 깔아주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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