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at my memory

Chang, 비 그리고 달링이라 불리던 남자

Eat, My Memory #no. 11

by 오M삼min


타패 게이트에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골목 가득 바와 마사지샵이 즐비한 이 있다. 그 근처에서 호스텔을 찾아 홀로 투숙했다. 빨래도 많고 건조기를 써봤자 축축하고 눅눅해 하루 이틀 맘껏 널어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스탠다드 룸 600바트, 약 2만 원 선. 나도 모르게 문을 열자마자 '우와' 하는 감탄이 터져나왔다. 이번 여행 최고의 숙소다. 훌렁훌렁 과감히 땀냄새가 나는 옷을 바닥에 한 꺼풀씩 내던졌다. 바디워시와 샴푸가 그것도 벽에 붙어있는 펌핑통에 들어있다니, 주섬주섬 챙겨 들고 온 목욕 파우치가 부끄럽다. 혼자 있으니 남들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기 뭣한 음악을 틀어놓고 따라 부른다. 남들 앞에선 좀 멋진 뮤지션이나 프로듀서를 좋아한다고 하지 왠지 'eye of tiger'나 'my sharona'를 좋아한다고 하긴 좀 그렇다.

얼마 만에 씻는 건지 원.

마마마 마이 셰로나.


거짓말같이 하얀 타일에 땟국물이 번진다. 씻다가 화들짝 놀라 얼른 청소를 했다. 양치질은 세 번쯤 했다. 이게 다 스스로가 멍청했던 탓인데 누가 보면 오지에서 살아 돌아온 줄 알겠다.

나는 젖은 머리에서 향기를 폴폴 풍기는 여자가 되어 근처 편의점에 갔다. 맥주, 요구르트, 에너지 드링크, 물, 푸딩을 쓸어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두 번째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다 다시 한 번 냉장고를 열어 봤다. 감격스럽다.

씻고 편의점 다녀오고, 세탁기와 건조기를 기다리다 보니 이미 저녁 시간이 살짝 지났다. 건조기에서 건져 올린 빨래를 방 구석구석 널어둘 수 있는 곳곳에 널어두고 숙소 밖으로 나섰다.

탄탄하고 두툼한 삼두가 멋진 짧은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말을 건다.

-담배 있어?-

없다고 하니 '흥칫뿡' 정도의 리액션을 보이곤 가던 길을 갔다. 이 골목엔 흰머리가 성성한 중년의 남자들이 그녀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미소를 여기저기서 질질 흘리고 있다. 왜인지 그런 바에 혼자 앉으면 대단한 불청객이 될 것 같다. 어울리지 않게 바 맞은편에 사원이 있고, 그 앞에 몇 개의 작은 노점상에서 음식을 팔고 있었다.

-씹 하 바트-

먹음직스럽게 구워지는 소세지 하나를 가리키며 얼마냐고 물으니 15바트란다. 하나 달라고 하고 20바트를 줬는데 5바트를 안 돌려준다. 가만히 바라보자 손가락으로 2를 가리킨다. '쳇, -씹 하-라고 했잖아요, 내 5바트 내놔요!' 하는 말이 안 나온다. 맛있으니 된 거다.

어둑어둑한 조명 안 깔깔거리는 소음을 뒤로하고 나이트 마켓을 향해 걸었다. 혼자서 밥도 맥주도 먹기엔 노점이 편하다. 마켓 안 노점에서 이것저것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길을 걷는데 요 앞에 간이 테이블 두어 개가 보였다. 그의 주방은 아까 본 소세지 노점과 크기가 같아 굉장히 소박한데 메뉴판은 다양했다. 혼자서 서른 가지가 넘는 요리를 만들고 판매한다. 그래, 당신은 이제부터 치앙마이 써티원이야.

치앙마이 써티원에 앉아 chang 한 병과 볶음밥, 프라이드 모닝글로리를 함께 주문했다. 음식은 금방 나왔고, 너무 기름지지 않은 고슬고슬한 밥알을 떠먹었다. 야채는 아삭아삭하고 간도 적당하다. 치앙마이 써티원은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요리사였다. 밥은 아직 반도 안 먹었는데 후둑후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한두 방울 떨어지면 그냥 앉아서 마저 먹을 생각이었는데 후두두둑 우박 사이즈의 거센 소나기가 되어 내렸다.

-컴, 컴!-

주인장이 다급한 얼굴로 접시를 안 쪽 골목으로 옮겼다. 맥주병을 들고 그를 따라 큰 파라솔 아래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중년의 남자가 맞은편에 앉아 눈인사를 건넸다. 그 옆엔 중년의 태국 여자가 전화기를 붙들고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이거, 신나게 내리겠어! 근데 곧 그쳐. 어제도 이랬거든-

남자가 안심시키듯 묻지도 않은 말을 건넸다. 그가 건넨 인사에 대한 화답으로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치얼스-

남자도 자기 잔을 들었다. 남자는 영국인이고 홀로 여행 중이라고 했다. 너도 그렇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답했다. 전화기를 든 여자가 잠시 나를 보고 웃더니 영국 남자를 바라보며 웃었다.

-달링, 키스 미-

여자는 남자에게 입술을 쭉 내밀어 부비더니 다시 통화를 계속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혼자 여행 중'이었던 남자가 멋쩍은 얼굴을 할봐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남자가 또 말을 걸어온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어딜 여행했어? 어디 추천해 줄 때 있어?-

사실 '당신 같은 남자는 내가 다녀온 곳엔 별로 흥미가 없을거야'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길에서 첨 만난 여행자에게 너그럽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밥을 먹는 동안, 비를 피하는 동안, 한 테이블에서 불편해지지 않기 위해 형식적인 여행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어디는 경치가 좋고 어디는 물가가 비싸고, 어디는 조용하고 어디는 즐겁다고. 남자가 라오스에 관심을 보이자 전화기를 든 여자가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또다시 '달링, 키스미' 하고 입술을 내밀었다. 밥을 다 먹은 나는 배가 부른데도 남은 맥주와 모닝글로리를 꼬약꼬약 다 비웠다. 비가 조금이라도 그치면 내리는 비를 맞더라도 호스텔로 돌아갈 것이다.

남의 속도 모르고 소나기는 더 거세게 내렸다. 맥주도 비웠고 모닝글로리도 싹 비웠다. 빈 접시 앞에서 멀건히 앉아 있기 싫어 맥주 한 병을 더 시켰다. 드디어 전화통화를 끝낸 여자가 나에게 미소를 한 번 더 보내더니, 달링의 등을 쓰다듬으며 머리를 어깨에 살포시 기댔다.

나도 그녀에게 미소를 한 번 보내주고는 남은 맥주를 병째 들고 치앙마이 써티원에게 음식값을 지불했다.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딱히 먼 거리도 아니니 괜찮을 것 같다. 비를 맞으며 한 칵테일 바 앞을 지나자, 흰머리가 성성한 몇몇의 남자들이 니하오? 재패니즈? 하며 딴에는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한 온갖 단어들을 나열하며 소리 질렀다. 쿨한척 마시던 병을 들어, 치얼스를 한 번 외쳐주고는 호스텔을 향해 걸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는 게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