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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M삼min Apr 04. 2024

9만 원씨, 트라우마를 얘기하다.

내일 읍는 년은 만들지도 건들지 마라.

 살면서 흔치 않은 기쁜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낡아 부스러질까 꺼내 보기 조차 조심스러운 반면, 10여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일은 잔인하게도 온몸의 감각을 불로 지지듯이 뚜렷하고 강렬하게 남아 쉬이 떨쳐버릴 수도 없다.

 내가 천수를 모두 누리고 평온함에 잠겨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맞다, 내가 그 새끼를 안 죽였네’ 하고 벌떡 일어나 저승길에서 돌아올지도 모른다. 마치 출근길에 잠그지 않은 가스 밸브를 떠올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인생의 전부를 돈이라고 말하기는 창피하지만 내 손으로 일군 전부를 통째로 날린다면 -그것도 전적으로 타인의 결정에 의하여- 오늘 당장 벌이가 있다 해도 내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일이 없는 기분으로 2년을 버틴 나날이 있었다.

 돈 값을 못하는 변호사는 법원의 조정실 앞에서 최대한 말을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때부터 일까? 속에 있는 말을 그냥 뱃속에서 끌어올려 포효하고 싶을 때마다 그걸 참는 내가 가엾다. 모두가 필터를 거친 정수처럼 말을 쏟아내지는 않기 때문이다. 수임료 몇 백만 원을 받고도 변호사는 그저 내가 울컥해서 말을 하려는 순간마다 내 팔을 잡았다. 나란 년은 인생에서 언제나 말려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말려야 할 것은 저 더러운 주둥아리인데, 아니 지금 당장 이 테이블 위로 뛰어 올라가 저놈의 모가지를 마틴 신은 발로 차 버리고 싶다. 똑하고 꺾일 때까지, 그러니 이 변호사가 잔뜩 힘을 주고 내 팔을 잡고 있는 것이 수임료 값을 하는 건 맞다.

 “참나, 언제는 자기들 돈이 없다고 할 때는 언제고, 내가 판사도 알고 검사도 아는데 말야! 이렇게 불러내고 쯧”

전세금을 떼인 나는 법원이 정해준 조정위원회에 참석하여 저딴 소리를 지껄이는 새끼를 참아 주고 있다. 이 테이블 위를 넘어가 발로 한 대 퍽 소리가 나게 차주면, 저 울대를 주먹으로 퍽 소리가 나게 쳐주면, 아니 저 새끼가 잠자고 있는 그 잘난 집에 불을 지르면, 외진 동네엔 CCTV도 별거 없을 터, 전세금은 그 일의 착수금이라고 생각하고 날려 버릴까, 길고 가늘고 뾰족한 바늘로 대장을 쑤셔 똥독 오른 몸뚱아리로 고통스럽게 남은 생을 발버둥 치게 만들어 버릴까, 아니면 저 새끼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손주 새끼를 어떻게 해버릴까,

 엄마와 내가 잠시 살았던 전셋집은 1층과 2층 독채로 대문과 마당을 공유하는 구조였다. 급하게 이사를 하고 짧은 몇 년의 거주가 필요했기에, 이사가 가능하면 다행이란 생각이었다. 처음 집을 보여줄 때 집주인은, 2층 세입자가 외출 중이라 문이 잠겼으니, 같은 구조의 제 집을 보라고 했다. 10여 년 전에는 전세금을 떼먹는 사람도 드물었고, 평범한 사람들의 논리로는 말이 되지 않는 행위였다.

 우리는 순진하게도 그를 믿었다. 등기부등본 상의 근저당을 확인하고 계약은 안 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을 때도 그는 사람 좋은 척 겸손한 척 재산을 자랑했다.

 “제가, 술 도매업을 해서 세금 줄이려고 근저당을 잡은 거지, 돈이 없진 않습니다. 잘 돌려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10여 년 전에는 이웃이 이런 말을 하면 믿을 만했다. 준다고 했으니 주겠지, 설마 그걸 떼먹을까,

그때의 본인의 ‘statement’를 법원에서 저렇게 바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돈이 없어도 돈이 없다고 말하는 법이 없는 뻔뻔한 년이거늘.

조정관님, 변호사님, 저것은 명백한 위증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돈이 많다는 말로 저를 구슬렸습니다. 신성한 조정위원회에서 거짓을 고한 저 새끼 목을 이제 그냥 따 버립시다. 따는 건 제가 하겠습니다. 기꺼이 잘할 수 있을 것이고, 피칠갑을 한 저 자식의 시체를 본다 한들 저에게 그 어떤 트라우마 따윈 남기지도 않을 것이며, 오늘의 처형으로 후에 남을 인간의 고결성 상실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내가 **지검 판사하고 골프도 치고 몇십 년 지기 친군데, 이런 걸로 사람을 오라 가라 하고 참나”

**지검 판사는 사람 보는 눈이 동태 눈깔에 수렴하나 보다.

 “내가 그 판사 친구하고 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걸 확인했는데, 어디서 건방지게 말이야!”

법적으로 본인은 명백한 무죄임을 주장하자 내 월급을 뛰어넘는 수임료를 받은 변호사가 단 한 번 나섰다.

 “뭐라고요? 내가 변호산데, 당신이 나보다 법을 더 잘 안단 말이야?”

고작 나서서 하는 말이, 참 든든한 변호사군요.

 당시 전셋집의 근저당은 시세 30% 미만이었고, 2년이 지난 후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지 않은 묵시적 갱신으로 법적으로 나는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언제든 퇴실을 하고 전세금 반환을 요청할 수 있었다. 집주인인 이자는 ‘아들’ 장가보내느라 마침 돈이 없고, 2년을 더 연장한 것과 진배없으니  본인은 2년간 돈을 돌려줄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3개월 후에 이사 나가겠다는 고지의 의무는 이미 한참 전에 이행했고, 그때 집주인은 곧 동네 재개발이라 보상금이 나오는데, 더 살다 그것까지 챙겨가라며 만류했으나, 이사 나가겠다는 우리의 의사결정에 동의했다.

 그러니까, 판사 검사와 골프도 치고 불알친구인 그 양반이 내 전세금으로 아들 장가를 보냈단 말이다. 그 댁 아들은 장가도 스스로 못 가는 반푼이었군요. 아, 미운 사람!

 집주인의 입장이 돌려줄 수 없다는 쪽으로 기운 것은 해당 집을 포함한 동네가 재개발 구역으로 선정되어 이사 올 사람이 없어진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 간악한 채무자 따위가 재개발 구역에서 퇴거하며 받을 보상금+ 집과 토지 매매값을  받아 전세금을 돌려주면 되는 일이지만, 최근에 차량을 혼다로 바꾸고 아들을 장가보낸 이 새끼는 재개발 반대를 외치며 퇴거하지 않으며 보상금을 더 받아 챙길 궁리로 나와 엄마를 못살게 굴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를 더 받으려고 한 두 푼도 아닌 전세금을 안 주고 버티는 건지, 그 액수가 존나게 궁금했다. 판사 친구의 조언 아래 그는 자신이 집을 다시 세 놓아서 전세금을 돌려주려는 노력을 했다는 증거를 제출했고, 일부러 안 주려고 안 주는 게 아니고 재개발은 자기 탓이 아니며, 정말로 돈이 없다는 얘기로 조정관의 동정표를 샀다.

 돈이 많다고 했으나, 지금은 개털인 그는 '세입자가 돈이 없다고 했을 때 받아주고 전세금도 올리지 않은 큰 은혜를 베풀어 준 선례'를 정상참작 해달라 요구했고, 그런 은혜를 모르는 짐승 앞에서 이젠 털어도 털어도 나올 게 없노라 고하고 있다. 왜 하나같이 임대인들은 자기가 전세를 놓은 게 무주택자들을 위한 봉사라고 여기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자기 집을 가지면 자기 집이 없는 사람을 보는 태도가 ‘내려다보는’ 입장으로 극명하게 달라지는 걸까? 전세금은 받자마자 통장을 스쳐 전 세입자에게 돌아갔기 때문에 상환의무조차 타인의 통장에 꽂혀 있다고 믿는 걸까? 상환할 능력이 없으면 도대체 왜 세를 놓는 거지? 위대하신 수령님의 은혜를 받들어 집이 두 개인 자가 집이 없는 자에게 나눠주는 시스템이었던가? 그렇다면 왜 그 큰돈이 오가야 하는 것이지?

 커터칼로 저 입을 마구잡이로 찢어버리는 상상을 했다. 아니면 저 누런 눈깔을 다 파버릴까, 칼 날이 무딘 놈을 골라 최대한 고통스럽게 짓이겨 버리고 싶은 저 주둥아리, 저 눈깔.

딱 한 차례 나선 ‘내 변호사’가 여전히 내 손목을 움켜주고 놔주지 않았다.

 단 한 번 나선 내 변호사와 집주인 놈의 얘기를 들은 조정관은 집주인 놈의 언에 두 어 차례 주의를 주고는 이제 결론을 내린다. 완곡한 태도로 어린 아기를 달래듯 집주인 놈에게 물었다.

“어떻게 돈을 구할 방법은 없겠어요? 주변에서 빌려볼 수는 없겠습니까?

가슴이 답답하다. 머리가 하얘진다. 머리로 올라가야 할 피가 근육 여기저기로 솟구친다. 줘 패라는 뜻이다. 집주인 놈이 또다시 아들을 장가보내느라 현금을 다 썼다며 없다고 한다. 그 잘난 판사 친구한테 빌려보지 왜?

조정관은 저들끼리 쑥덕이더니 따끈한 네 장의 A4용지를 내밀었다.

상환기한 1년 반, 해당 조정으로 임차인은 그 어떤 손해배상 청구를 임대인에게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변호사 수임료 포함)

임대인은 조정 기한 내 반드시 임차인의 전세금을 상환할 것, 기한이 지난 후 본 법정이 연체 이자를 부과하는 것에 동의한다.

생기다 만 눈깔을 희번덕거리며 임대인이 서명했다. 변호사는 상대해서 좋을 게 없는 사람이니 잘 구슬려 받자는 말로 수임료를 퉁쳤다. 오늘 나는 마틴이 아니라 굽이 닳아 쇠붙이가 튀어나온 얇고 뾰족한 하이힐을 신고 왔어야 했다.

조정위원회를 나오는 길 굽이굽이 수많은 사람들이 대기하며 앉아 있고 또 서 있다. 집주인 새끼가 먼저 계단을 내려간다. 발로 한 대 차주고 싶은 등짝, 따버리고 싶은 저 비계 낀 모가지.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울상이 되어 그 자식의 혼다가 먼저 떠나도록 내버려 두었다. 엄마 집에 들어가 술병을 끼고 악다구니를 쓰며 화를 낸다. 내 변호사 새끼 무능하고 조정관들도 어느 하나 맘에 들지 않는다고, 가슴속이 타다 못해 녹아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이사 나간 후 일 년이나 기다려 줬는데, 다시 일 년 반의 시간 내 돈을 받지 못한 불안을 떠안고 살아야 한다니, 무엇을 위한 조정이었나 싶다. 코코넛 럼 한 병을 다 비우고 거실에 나자빠진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그 자식, 마지막 날 은행 문 닫기 전에 돈 보낼 거다. 이자 내기 싫어서. 그렇게라도 받으면 된 거다”




 이 꼴 저 꼴 안 보려면 집을 사야 한다. 집 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치기 전이었지만, 그때도 나는 돈이 없었다. 전 재산은 그 자식이 쥐고 돌려주지 않는데 집을 무슨 수로 산단 말인가?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일상이 버거웠다. 주중엔 회사에 가고 생각하지 않으려 퇴근 후엔 매일같이 두 시간 넘게 운동을 했다. 써먹을 주먹이 필요할지도 모르니 권투를 배웠다. 녹아내린 가슴에 숨을 헐떡이며 나를 비웠다. 생각을 비우고 분노도 비우려고 애썼다. 파내지 못한 눈깔을 떠올리며 글러브 안 손이 멍들도록 샌드백을 후려쳤다. 꽉 조인 핸드랩에 손이 베이도록 나는 울분을 치고 또 쳤다. 차라리 나이라도 어렸으면 한 순간 시기 어린 판단을 한 것뿐인 촉법소년이 되어 이빨 몇 개 부러트리고 이 분노를 삭일 텐데. 1년 반, 거의 매일을, 그놈의 얼굴을 떠올리고 또 떠올리며 숨 쉬는 것도 잊고 샌드백을 후려 쳤다.

 일상을 무너트리지 않기 위한 노력은 처절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것은 메마르고 지독하게 버겁다.

 조정 기한 마지막 날 오후 4시 30분, 그가 전세금을 입금했다. 엄마의 말대로, 역시나 그는 이자 내기는 죽어도 싫었던 것이다.



 

 10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입은 마음속의 자상들이 치유되고도 남았을 텐데, 나는 아직도 그자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한다. 그 자의 번호를 외우고 있고, 그자가 지금 사는 집을 알고 있다. 그자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손주 녀석이 이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었을 것이고, 어느 학교에 다니는 지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을 매일같이 마주하는 나의 일상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종종 헷갈릴 때도 있다.

 조금씩 숨이 트이는 인생을 살아도, 나는 그 일을 겪기 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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