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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M삼min May 19. 2024

9만 원씨, 다 좋을 수는 없다.

라푼젤 성, 두 기사와 잡채밥

 작은 창문 네 개가 나란히 세로로 달린 벽 앞에 서서 연보라색 벽지를 바라보는데 누가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 잠에서 깼다. 푹 잤으면 좋을 텐데 이삿짐센터가 오기 전까지 두 어시간 남짓 남았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조금 섬뜻해서 꿈에서 깨어나 오늘 할 수 있는 걱정을 세어본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

 이삿짐을 나르다 이런 컨디션에서는 이사가 안된다고 하면 어떡하는가,

 이사하려고 가니 집이 부서져 있다거나 지붕이 무너져 커다란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으면....


 걱정은 여기까지만 하고, 생각을 툭 하고 내려놓는다.

 마지막까지 미뤄둔 작은 물건들을 와르르 봉투에 집어넣었다. 벽에 찔러둔 핀을 제거하고 페브릭 포스터를, 회색 벽에 잘 어울리는 머스터드 컬러를 골라 주말 내내 만들었던 마크라메를 거둔다. 벽에 붙어있던 것들을 모조리 떼어내니 휑한 벽이 오히려 집을 더 작게 만드는 것 같았다.

 시간 차를 거의 두지 않고 새 임차인이 입주하니 신경 써서 바닥에 남은 먼지와 머리카락들을 꼼꼼히 치웠다. 나는 여기에서 층간 소음에 시달리며 무기력하게 지냈지만 당신들은 잘 지내길 바란다. 이곳에서 나는 왜인지 한참을 무기력하게 지냈다. 방에서 누워 지내다 종종 부엌 앞 '거실'이라 칭한 공간에 앉아 있다가 또다시 스르륵 누워버리기만 했던 일상, 나와 맞는 집이 있다는데 이 집은 나와 맞지 않았던 걸까? 코로나를 오롯이 갇혀서 지내고 층간소음에 시달린 나날이 지나갔다. 4년.

 이 집은 딱히 좋은 기억이 없다. 행복했던가? 그런 것도 잘 모르겠다. 서울에서 타인의 집에 임차인으로 살면서 행복이란 게 있던가? 내 집을 가지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엄한 곳에서 파랑새를 찾는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쓸데없는 여정 같은 허상일까?


 시간에 맞춰 이사업체 사장님, 바로 나의 기사님이 도착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두 선생님이 오셔서 함께 내 인생 전부를 담았다. 내 인생의 전부가 커다란 플라스틱 상자 속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긴다. 아주 빠르고 신속하게 박스 안에 담기는 전부를 보자니 나를 둘러싼 수많은 물건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이사만 35년째 해오고 계시다는 사장님과 도란도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추레한 생을 한 시간 만에 다 담았다. 11시에 모든 짐을 다 빼고 보증금을 돌려받기로 했는데, 한 시간이나 떠버렸다.

 중개사란, 집을 빼는 헌 임차인에겐 항상 무관심하니 별 도움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중개사는 내가 짐을 일찍 정리했으니 새로운 임차인이 은행에서 서둘러 잔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재촉하고 임대인에게 내게 돌려줄 돈을 재촉했다. 그동안 임차인은 기다리고 기다린다. 중개사의 재촉으로 새 임차인이 약속했던 시간보다 일찍 무사히 잔금을 치렀음에도 나의 어린 임대인은 엄마한테 물어보고 보내겠다, 이모한테 물어보고 보내겠다, 하며 시간을 끌었다. 장기충당 수선금 환급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다. 짐을 쌓고 빼는데 한 시간, 받을 돈을 받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돈을 나에게 보내야 하는지 은행에 보내야 하는지 여러 차례 여러 사람과 확인한 것 같다. 내 돈이고 내가 받은 대출이지만 역시나 임대인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전세거지란 말은 있어도 갭투자 거지란 말은 없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가지고 있는 자산이나 혹은 전세금상환대출을 통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는 집주인은 흔치 않은 것 같다. 새로운 임차인의 입주 시간에 맞춰 시간이 빡빡하게 헌 사람이 나가고 새 사람이 들어온다.

 그 모든 불안과 불편도 역시 온전히 세입자의 몫이다.

 갭투자 거지란 말이 생겨나면, 무리하게 세입자의 돈으로 집을 사들이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한 시간을 발을 동동 구르며 참 질린다, 진절머리 나는 사람들이다, 하는 찰나 무사히 돈을 다 돌려받고 이삿짐 트럭에 선생님들과 나란히 앉아 나의 새집이자, 오래되고 낡은 요새로 향했다. 이삿짐센터 트럭 한 대에 인부 2인을 요청해 놓고 염치없게도 중간에 끼어 앉아 막히는 도로를 달리니 왜 혼자 택시 탈 생각을 못한 건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요새로 입성하는 골목으로 향하는 포장도로에서 사장님은 1차로 당황했다. 짐을 내릴 차를 경사면에 세울 수가 없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인편으로 짐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찬 조건이란 생각만 했지, 이건 전혀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사장님은 결국  평지에 가까운 곳에 차를 돌려세우고 일단 집의 위치를 보기 위해 나와 함께 계단을 올랐다. 숨을 헐떡이는 사장님이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휴, 공기 좋고, 좋은데 구하셨네!"

 60대와 70대 두 노인에게 이런 버거운 일을 시킨 나쁜 사람이 되어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박스 하나하나 등에 이고 지고 힘든 걸음을 올라오는 분들께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나 하나 좋자고 몇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가? 이 선택이 과연 이만한 값어치가 있는 걸까? 이런 상황을 예상한 전 계약자가 대출이 안 나온다는 핑계를 대고 중간에 계약을 파기하고 달아난 게 아닐까?

 

 식사 시간이 되었으나 주변에 갈만한 식당이 하나 없어 선생님께서 음식을 시켜달라고 하셨다. 맘 편히 식사도 못하는 요새는 집이 아니라 라푼젤의 성이 아닌가 싶다.

 메뉴는 짜장면과 잡채밥, 일 하는 중에는 많이 드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배달 어플로 가장 가까운 중국집을 찾으니 잡채밥이 없다. 잡채밥이 없는 중국집이 이렇게 많던가?

 "선생님, 잡채밥이 없는데 다른 거  드시면 안 댈까요?"

 "성, 짬뽕 드셔"

35년 이사 전문가 사장님이 동료에게 다른 메뉴를 했다.

 "그럼 안 먹어!"

마른 체구의 70대 선생님은 잡채밥이 아니면 드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시방석은 중세시대 고문기구 철의 여인이 되어 사정없이 마구잡이로 몸뚱이를 쑤셔대는 것 같았다. 혼난 것도 아닌데 왜인지 눈물이 날 것 같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검색 능력을 총 동원해 불고기 잡채밥이라는 메뉴를 찾아 얼른 주문했다.

 한 사람이 한 번에 50kg에 육박하는 박스를 옮기는 일은 너무  힘들고 고될 것이다. 밥이라도 잘 드셔야 내가 손톱만큼이라도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배달은 빨리 왔고 두 분이 도란도란 맛있게 점심을 드셨다. 잡채밥이 배달되어 감사한 순간이었다.  

 "아가씨 건 안 시켰어? 우리만 먹으니 미안하네"

 아침부터 이사에 신경을 쓴 데다 임대인과 중개인이 실랑이 하는 동안 스트레스를 받은 탓인지 음식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막상 이사를 오니 집이 더러워도 너무 더러웠다. 찬장, 바닥, 싱크대 그 어느 하나 내가 청소를 하고 나온 집과 비교해서 깨끗한 구석이라곤 없었다. 방구석에 죽어 나자빠진 쥐며느리 부락을 보고 이미 입맛이 싹 달아났다는 것은 선생님들께 얘기하지 않았다. 짜장면과 잡채밥을 맛있게 드셔서 마음이 좀 놓였다. 달동네 집 주변엔 슈퍼도 없고 시원한 물은 아침에 드린 게 전부라, 갈증이 났을 것이다. 이 날은 거기까지 생각도 못했다. 집을 비운채 멀리 내려가 물을 사 오기에도 일손이 부족했다. 이사 땐 이래서 사람이 있으면  좋은데, 혼자서 평일에 이사하려니 이래저래 민폐가 말이 아니다.

 '왜 나란 년은 이삿날에도 혼자인가?'

내가 손톱만큼도 괜찮은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조금씩 무거운 생각에 잠식되는 것 같았지만,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 앞에서 내색할 순 없었다. 점심 식사 후, 빠르고 신속하게 움직여 주신 탓에 모든 짐을 무사히 옮기고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과 함께 두 기사님은  모든 임무를 완수하고 요새에서 해방되었다.

 "이렇게 힘들게 이사하셨는데 저 이사 가는 게 벌써 걱정이네요"

 "아휴, 걱정하지 마, 아가씨! 2년 계약했지? 내가 그때까지 안 죽고 살아있음 또 옮겨 줄게!"


  두 기사님이 요새를 떠나고, 쥐며느리 부락과 싱크대 똥내 그리고 창틀에서 구더기 사체를 맞딱 드린 찰나, 엄마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고생이 많다. 엄마가 미안하다. 집을 못 사줘서'

참았던 눈물이 뚝뚝 흘러 쥐 며느리 사체 부락에 떨어졌다. 집이 없는 건 무능한 내 탓인데, 왜 엄마가 미안해하고 나이 든 노장의 기사님들이 이렇게까지 고생해야 하는 것이며, 이 모든 게 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단단히 잘못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혼자 엉엉 울음을 터트리며 방을 닦는 찰나, 떠난 집의 중개사가 여러 차례 남긴 부재중 전화 알림을 확인했다.

 "네, 전화하셨어요?"

나는 어른이니 꺼이꺼이 운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애써 밝은 척한다.

 "아이고, 고생 많으셨죠? 이사 다 하셨어요? 거기도 전세지요?"

 중개사는 얼른 전입신고를 해야 새 임차인도 전입신고를 하며 둘 다 대항력을 갖출 수 있으니 쁘더라도 최대한 서둘러 전입신고를 하라고 알려줬다. 떠난 집의 중개사가 이렇게 헌 임차인까지 신경 쓰는 동안, 새 집 중개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법정 상한 수수료에 부가세까지 야무지게 입금계좌 안내만 했을 뿐이다.

 "도대체 뭘 했다고 이 걸 다 받아요? 양심 없게."

 꼭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다.


 몸을 쓰는 노동의 대가는 여전히 낮게 측정되고 가만히 앉아 수료를 받는 사람상한선으로 최대치를 가져간다.

 떠나는 것을 도와준 중개인과 이사 업체가 만족스러웠다면 새로운 집을 중개한 중개사까지 모두 맘에 들 수는 없는 것이다. 나에겐 시장의 가격을 주무르고 새롭게 측정할 권력 따윈 없다.


 정신 차리고, 대항력을 갖추기 위해 주민센터로 했다. 걸어서 20분 거리.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누군가 '어머 저 여자는 다 큰 어른이 저렇게 질질 짜고 돌아다니네'라고 했어도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선 한 손엔 음식물 쓰레기 배출통을, 한 손엔 마트에서 구입한 청소포와 캔맥주 들고 터덜터덜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요새로 돌아오니 아까 두고 나간 지저분함과 냄새, 각종 벌레 사체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벌레들을 버리고 줍고 또 버리고 닦았다. 닦아도 닦아도 새까만 발이 깨끗해지지 않는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청소를 하다 지쳐 바닥에 누워있다가, 또 정신을 차리고 생명수 같은 캔맥주를 마시고 또다시 닦았다.

 오늘 누울 자리는 만들어야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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