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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M삼min May 20. 2024

9만 원씨의 화목한 이웃

홀로, 아직 밤은 추운 산동네

  더러운 집에서 첫 주말을 보냈다.

반 정도 치운 집에서 도대체 저 작은 검은 점이 무엇인지 쳐다보기도 싫었지만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역시 입주청소를 맡겼어야 했다.

 거실 겸 주방에서 창밖이 보인다. 지대가 높다 보니 날씨 좋은 한낮에는 앞 집 정원의 나무 사이로 아주 멀리 남산 타워가 보인다.

 냄새나는 찬장을 락스물로 닦느라 손이 다 까졌다. 그래도 씽크대 똥내는 여전하다. 쓱 배송 기사님이 이미 한 차례 비지땀을 흘리고 왔으니 한 주 동안 고무장갑이 없다고 추가 주문을 할 수는 없다. 맥주 한 모금이 간절히 생각나지만, 그 거리를 내려갔다 올라올 체력은 아직 구비되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주방에서 지네 한 마리를 포획했고, 방에서는 쥐 며느리 한 마리를 포획했다. 단독주택에서의 삶을 아주 조금 후회했다. 하지만 역시나 천장에서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생활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잠을 잘 잔 탓인지 그 어떤 소음에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내 의지로 일어난 아침의 몸은 가뿐했다. 기대했던 것처럼 아침엔 새소리에 잠을 깨고 창문을 열면 흐릿한 나무 냄새가 들어온다.

 새벽에 우는 고양이가 어떤 색인지 궁금하지만, 아직은 혼자서 지층에 사는 게 무서워 창문을 열어보지 못했다. 골목의 밝은 가로등이 붉은 조명이 되어 침실 을 두드리지만, 쿵쾅거리는 발망치도, 새벽을 울리는 진공청소기의 소음도, 온 방을 흔드는 한 밤중 세탁기 탈수 진동 따위도 다 버려두고 떠나온 것이 틀림없다.

 이사하는 동안 몸을 많이  탓인지 으슬으슬한 기운에 긴 팔 옷을 꺼내 입었다가, 새벽이 추워 솜이불을 꺼내 덮었다.

 내가 몸살이 난 게 아니라, 단열이 엉망이란 뜻이다.

 한 여름이 되면 얼마나 더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한 낮동안 태양열을 잔뜩 흡수하고 저녁에 돌아온 나를 찜질방 같은 더위로 품어줄지도 모른다. 장마철에는 벽면에 곰팡이가 슬지도,  한 겨울이 되면 동파를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온 동네가 주말이 되니 아이들 떠드는 소리와 가족이 화목하게 이야기 꽃을 피우는 소리가 전해진다. 저녁 시간이 되자 가족들이 모여 제 집 마당에서 발코니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

 나는 조금 외로워졌다. 창 밖의 야경 속 저 무수히 많은 불빛 중 어느 한 집에는 나처럼 외로운 누군가도 살고 있을까, 하는 조금 뻔한 생각도 들었다.

 잠을 얻었다.

 불편함과 바지런함을 얻게 될 것이다.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일까? 무섭도록 정확한 저울의 눈금이 이리저리 조금씩 움직여 늘 추었던 값을 여전히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벗어나지는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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