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감기 끝에 고통에 대해 생각하다
아픔은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이다. 우리는 아픔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말을 늘어놓을 수는 있지만, 실제로 상대가 느끼는 아픔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아픔에는 여러 보편적인 측면이 있어서 우리는 약간의 암시만으로도 서로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품기도 한다. 아픔의 정도와 색깔을 적확하게 파악하고 가늠하지는 못한다 해도, 상상력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그 나머지를 채워 나가는 것이다. 물론 같은 소재를 보고 그린 그 그림은 전혀 다른 양식을 띠고 있을 테지만. 과장과 축소와 왜곡을 품고.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 전달의 차원을 넘어 엄살과 투정에 속하는 듯싶다. 상대에게 나의 아픔을 가능한 한 적확하게 전달하고 싶어 상상력을 동원하여 다채로운 비유를 섞어 말을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예전에 자궁 근종 수술을 한 적이 있었다. 워낙 근종이 커서 제거하기가 어렵고 피도 많이 흘러 수혈을 때려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비싼 돈을 지불한 정맥 진통제에 부작용이 생기는 통에 맞을 수도 없어 생으로 고통을 견뎌야 했다. 자궁 수술을 하면 안에 고인 피를 빼내기 위해 강력한 자궁 수축제를 맞는데, 그 주사를 맞고 칼로 상처가 난 자궁이 수축할 때마다 배가 둘로 갈라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헉헉거리며 고통을 참는 모습을 본 엄마는 그럴 바에는 아예 소리를 지르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바로 울음이 터졌는데, 너무 심하게 울면 배가 아프니 가능한 한 몸을 움직이지 않고 살살 울었다. 눈물을 흘리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빠져나가 고통이 완화된다는 말은 사실이었는지 조금은 아픔이 가시는 듯했다.
그런데 내가 울고 짜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같은 병실에 있던 나보다 한 연배가 높으신 환자분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젊은 사람이 이 정도 아픔도 못 참아서 어디다 쓰겠어. 나도 어제 수술했는데 이렇게 멀쩡한데. 엄살이 대단하다, 대단해. 그분은 자궁을 제거한 당신의 수술이 자궁을 남긴 채 피를 많이 흘린 나의 수술과는 전혀 비슷하지도 않다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엄마는 내 손을 슬쩍 잡으며 괜찮다고 더 울라고 작게 말해 주었다. 옆 침대에 자궁암 수술을 받았다는 내 또래 젊은 엄마는 나중에 몰래 와서는 자궁수축제가 얼마나 아픈지 저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것이라며, 자기는 잘 안다며, 나 정도면 잘 버틴 편이라며 위로해 주었다.
실은 그런 말에 신경을 쓰거나 화를 낼 정신이 없을 정도로 아팠기 때문에 별 생각은 없었다. 그저 병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면서 주문처럼 되풀이했을 뿐이다. “아홉 시까지만 버텨 보자. 그때면 괜찮아질 거야.” “한 시간만 더 버티면 조금은 나아질 거야.”
결국 아파서 이를 갈면서 끅끅대다가,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지쳐 잠든 것은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실은 내가 겪지 못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상상하여 그 크기와 색채를 가늠하려고 노력하는 일에는 엄청난 기운이 든다. 그 아픔에 지나치게 공감한 나머지 오히려 당사자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안게 되는 일도 드물지 않을 것이다. 어느 때는 너무 지나치게 공감한 나머지 나조차 휩쓸리지 않도록, 상대의 아픔과 홀로 아플 권리를 존중해 주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상상력을 발휘하여 서로의 아픔을 이해한 다음 정확하지 않을지언정 그 대략의 아픔을 나누어 지고 가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서로 각자의 경험을 토대 삼아 상상을 곁들였을 뿐인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아픔이라 할지라도.
여름 감기로 앓아누워 2주를 아팠다. 온몸의 진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 속에서 문득 이십여 년 전 시끄러운 병실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다가와 살짝 손을 잡고 위로해 주던 그 사람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때는 잘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제대로 들렸다.